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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제공|JYP엔터테인먼트


[스포츠서울]박진영은 JYP엔터테인먼트의 대표 프로듀서이자 대주주이다. 오랫동안 회사를 실질적으로 이끌어왔다. 20여년간 JYP는 박진영이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회사로 인식돼 왔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러나 회사가 수차례 존폐 위기를 겪으며 JYP는 변하기 시작했다. 경영인과 아티스트 사이에서 ‘슈퍼맨’이 되길 바라는 듯 보였던 박진영은 최근 경영보다는 본인의 음악과 연예 활동에 좀 더 초점을 맞추는 모양새다.

업계 관계자들은 JYP가 20여년간 ‘빅3’로 불릴 정도로 성장한 원동력도, 숱한 위기와 악재를 겪은 이유도, 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힘도 모두 박진영이라고 분석한다. 그런 그가 이제 달라지고 있다. 박진영과 JYP가 ‘팀플레이’를 시작한 것이다. 이런 과정이 JYP 그리고 박진영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지 관심을 모은다.

◇‘기사회생’ JYP, 몇차례 전략-판단 착오 속에서도 ‘원맨쇼’로 버텨
JYP는 음반기획, 음반제작, 매니지먼트를 비롯한 스타마케팅, 디지털콘텐츠 사업을 펼치고 있는 음악전문 레이블로, 1997년 6월 태홍기획주식회사 법인으로 시작해 2001년 4월 현재의 법인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90년대 박진영은 가수로서 그야말로 승승장구한다. 94년 데뷔해 ‘날 떠나지마’ 이후 90년대 최고의 가수 중 한명이 됐고, 작곡가로서 히트곡 퍼레이드를 그치지 않았다. 제작자로서도 가요계에 한 획을 긋는다. 99년 지오디를 시작으로 비, 원더걸스, 투피엠, 미쓰에이 등 맡는 가수가 승승장구하는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빛이 찬란한 만큼 그림자도 짙었다. 2000년대 박진영이 이끄는 JYP는 겉으로는 화려해 보였지만 내부로는 끊임없이 위기를 겪었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들은 “JYP는 몇번을 망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만큼 숱한 위기를 겪었다”고 평가한다.

박진영은 다음커뮤니케이션과 2001년 손을 잡으며 회사 몸집을 키우는데 성공했다. 당시 다음은 JYP 지분 50%를 인수했다. 이후 겉보기엔 비, 노을, 별 등 제작하는 팀마다 1위를 만들었지만 자신이 가진 회사 지분율을 지키기 위해 적지 않게 마음고생을 했다는 후문이다. 양측은 2006년 2월 결별했다. 2000년대 초중반 JYP 매출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했던 비가 2007년 5월 계약이 만료되면서 박진영과 결별한 것은 당시 JYP에는 치명타였다. 회사를 문닫아도 이상하지 않은 지경에 내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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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제공|JYP엔터테인먼트


박진영과 JYP는 2007년과 2008년 걸그룹 원더걸스와 보이그룹 2PM을 데뷔시키며 기사회생했다. 그러나 국내 최고의 걸그룹으로 올라선 원더걸스가 2009년 미국 진출을 선언한 게 결과적으로 JYP에 패착이 됐다. 당시 SM이 정확한 시장 예측을 통해 일본, 중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때 JYP는 결과적으로 헛심을 쓴 꼴이 돼 버렸다. 원더걸스는 국내 가수 중에서는 처음으로 빌보드 싱글차트 ‘핫100’에 76위로 이름을 올렸지만 이후 현지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터지며 모든 마케팅 계획이 물거품이 되는 등 운도 따르지 않았다. 국내 활동이 없는 원더걸스는 같은 해 데뷔한 한류그룹 소녀시대, 카라 등에 밀리기 시작했다. 원더걸스는 전성기 때 팬클럽 회원수가 20만명에 이르렀다. 현재의 엑소 못지 않은 막강 팬덤이었다. 그러나 장기간 미국 활동에 주력하는 사이 팬덤은 와해되고 말았다.

2PM도 국내 최고 남자 아이돌로 도약했지만 리더 박재범이 2010년 한국 비하 발언 논란에 이어 밝혀지지 않은 ‘치명적 잘못’을 이유로 팀에서 나간 뒤 주춤거렸다. 당시 JYP의 위기 관리 능력도 도마 위에 올랐다.

JYP는 비와 함께 2006년 5월 비의 2006~2007년 월드투어 콘서트 계약을 웰메이드스타엠과 맺었다가 2007년 미국 음반기획사가 ‘레인(RAIN)’이라는 이름에 대해 사용금지가처분 신청을 하면서 하와이 공연 등 16회 공연이 무산되며 미국 클릭엔터테인먼트로부터 약 800만달러의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이후 JYP-비는 국내에서 웰메이드와 6년여 동안 지리한 법정 공방을 벌였다. 현금 확보를 위해 2011~2013년 해외 콘서트 및 해외 콘서트 MD 상품 판권을 대기업에 통째로 넘기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회사 주요 성장 동력이 사라지는 부작용도 경험했다.

한 가요 관계자는 “예전 JYP 내에는 박진영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박진영을 보라. 못하는 게 없는, 너무 잘난 사람이다. 명문대를 나왔고, 집안이 좋다. 음악 잘하고, 누구와의 논쟁에서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언변이 탁월하다. 머리도 좋고, 아이디어도 많다. 매니저들의 자부심중 하나가 운전실력인데 박진영은 심지어 그들보다 운전까지 잘한다. 회사내 누구보다 잘난 사람이다. 이 게 장점일 수 있지만 독이 될 수도 있다. 원더걸스의 미국 진출 등 여러 패착을 한 것도, 그에게 조언할 만한 사람이나 견제 세력이 주위에 없었던 영향도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진영의 자기 과신이 주변인들에게 미친 악영향도 있었다. 한 관계자는 “과거 JYP에서 성공한 가수의 재계약율이 다른 큰 회사에 비해 떨어지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박진영의 ‘원맨쇼’가 있었기에 JYP가 숱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는 의견도 있다. 경영인, 사업가로서는 장점 만큼 단점이 뚜렷한 반면 가수, 작곡가로서 뛰어난 역량과 프로듀서로서의 감각과 판단력으로 위기를 돌파해 왔다는 의미다. 주력 아티스트가 여러 이유로 계속 이탈하는 과정 속에서도 계속해서 또다른 주력 아티스트를 키워내고, 체계적인 회사 시스템을 갖춘 것도 아닌데 회사 규모를 키워온 건 사실상 박진영의 힘이었다. 한 관계자는 “SM이 화려한 고급 레스토랑이라면 YG는 유명 셰프가 있는 전문 식당의 느낌이다. 그에 비하면 JYP는 허름하고 다른 건 볼 게 없는데 좋은 재료를 쓰고, 할머니의 손맛이 돋보이는 동네 단골 맛집 같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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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이 발굴한 슈퍼스타 비.제공|큐브DC


◇‘예술가’ 박진영, JYP 경영 참가 줄어...JYP 최근 상승세
연예 관계자들은 “박진영은 타고난 예술가”라고 평가한다. 20여년간 500곡 넘게 작곡을 했고, 매년 한해도 거르지 않고 1위곡을 배출해냈다. 가수로서도 그는 90년대 스타 중 몇 명 남지 않은 ‘현재 진행형 가수’다. 가요에 섹시 코드를 본격 도입하는 등 타고난 감각과 기획력으로 분명 가요계에 큰 획을 그었다. 음악 제작자로서 지오디, 비, 원더걸스, 2PM 등 무수한 스타를 키워내며 감각과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경영인으로서는 아티스트로서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그런데 최근 몇년 사이 박진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제왕적 리더십’ 대신 분업화-시스템화를 통해 자신은 아티스트 역할에 좀 더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박진영은 지난해 11월 가수 데뷔 20년을 맞이해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JYP를 박진영의 회사로 만들고 싶지 않아졌다. 회사 체질 개선에 3년을 더 매달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티브 잡스(1955∼2011)가 별세하고 애플의 위상이 급락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제2, 제3의 박진영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을 했다. 박진영과 JYP에 의미있는 변화가 이미 시작됐다는 선언이었다.

JYP엔터 관계자는 “현재 JYP는 전문 경영인 체제가 확고하다. 이제 박진영은 경영 관련 내부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심지어 박진영은 JYP내에서 신인이나 연습생 계약을 맺기 전 과정인 오디션 영상 주간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는다. 좋은 의미에서 사내 입지가 좁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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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P네이션 코리아 2014 ‘원 마이크’. 제공 | JYP엔터테인먼트


예전 JYP에서 나오는 가수들의 히트곡은 모두 박진영이 만들었지만 최근엔 다르다. 박진영은 ‘JYP퍼블리싱’을 설립해 작곡가 30명을 관리하고 있는데, 사내에서 새로 나올 가수의 타이틀곡을 놓고 다른 작곡가들과 경쟁해야 하는 위치가 됐다. 회사 임원진을 비롯한 30여명의 내부 모니터 요원들이 소속 아티스트의 타이틀곡이나 앨범 수록곡을 결정하는 시스템이 최근 몇년간 확고해졌다. 박진영이 자신의 곡을 소속 가수의 타이틀곡으로 넣고 싶어도 이제는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지난해 9월 2PM은 새 앨범 ‘미친 거 아니야’ 발표 당시 기자 간담회에서 팀 멤버 준케이의 자작곡이 타이틀곡으로 선정된 과정에 대해 “타이틀곡 수집 기간에 (박)진영 형도 두세곡을 써왔고, 다른 작곡가들의 곡도 있었다. 준케이는 마감날 오전 즉석에서 곡을 만들었는데 모니터 요원들에게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진영 형은 자기 노래에 대한 반응이 안좋은데, 준케이의 노래 반응이 좋으니 표정이 별로 안좋아지더라”는 일화를 공개하며 웃었다. 지난해 앨범을 출시한 JYP 소속팀은 선미, 핫펠트 예은, 2PM, 2AM, 버나드 박, 15&, 갓세븐 등인데 이중 박진영이 만든 노래를 타이틀곡으로 삼은 팀은 15&, 갓세븐 뿐이다.

오랫동안 침체기를 겪는 듯 보였던 JYP와 박진영은 최근 부활의 기운을 보이고 있다. 박진영은 1년 7개월 만에 발표한 싱글 앨범 ‘어머님이 누구니’로 최근 멜론, 네이버 뮤직, 몽키 등 주요 음원 사이트에서 1위를 기록 중이다. 엑소, 소녀시대, 프라이머리, 지누션 등 엄청난 팀을 상대로 거둔 성과다. 이 곡으로 박진영은 자신이 여전히 일급 작곡가이며 핫한 가수라는 점을 입증했다. 공교롭게 같은 시기 각종 음원차트에서 박진영의 가장 강력한 대항마로 떠오른 팀은 JYP의 미쓰에이다. 미쓰에이의 새 앨범 타이틀곡 ‘다른 남자 말고 너’는 박진영의 작품이 아니다.

박진영과 미쓰에이가 같은 시기에 음원을 내며 서로의 성적을 방해하는 듯한 현상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지만 JYP가 ‘박진영 의존도’를 줄이는 과정에서 나온 긍정적인 신호이자 시너지 효과로 읽는 이도 있다. 박진영과 미쓰에이가 음원 차트 상위권에 나란히 올라있음으로 해서 JYP 회사 전체의 기세가 올라가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JYP 소속 가수가 주요 음원차트 1위에 오른 것은 2012년 6월 원더걸스의 ‘라이크 디스’ 이후 거의 3년여 만이다.
이지석기자 monami153@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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