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야구는 기다림의 스포츠다. 타자는 치기 좋은 공을 기다리고 야수는 타구를 기다린다. 투수는 결정구를 선택하기 위한 포수의 사인을 기다린다. 그래서 야구경기는 공으로 플레이하는 시간보다 공이 없는 시간이 더 길다. 올시즌 프로야구에서는 이러한 기다림의 시간을 줄이려 노력하고 있다. 투수들의 인터벌(공을 던지는 시간의 간격·피치 페이스)이 대표적이다. 현장은 전력향상과 집중력 향상을 위해 투수들의 인터벌이 짧아져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현장은 왜 ‘기다림’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일까?

[SS포토]NC 해커, 내가 지금 무슨 생각하지
[스포츠서울]NC 에릭 해커/최재원선임기자shine@sportsseoul.com

◇보이지 않는 기다림의 시간, 팀 전력에 영향 미친다

투수들은 다양한 투구 습관을 갖고 있다. 마운드에 섰을 때, 공을 던지는 과정이 대부분 다르다. 어떤 선수는 습관적으로 로진백을 만진다. 또 어떤 선수는 투구판을 밟은 뒤 12초를 꽉 채우며 상념에 젖는다. 또 어떤 선수는 군더더기 없이 빨리빨리 공을 던진다. 이러한 투수들의 습관은 동료 선수들의 피로도에 영향을 미친다. NC 김경문 감독은 “수비수들은 허리를 굽힌 채 (경기 시간의 절반인)1시간 30분 이상을 버텨야 한다. 투수들의 인터벌이 길어지면 수비의 집중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투수들에게 인터벌을 줄이라고 지시했다. 대표적인 투수가 외국인 투수 에릭 해커다. 해커는 국내 프로야구 첫 번째 시즌이던 2013년, 자신만의 습관을 고집해 팀내 분위기에 악영향을 미쳤다. 특히 불필요한 투구 준비 과정을 펼치며 인터벌을 길게 가져갔다. 야수들은 피로감이 쌓여갔다. 김경문 감독은 당시 해커를 2군으로 내려보내며 “팀을 생각하지 않은 투수는 필요없다”며 강경한 모습을 보였다. 해커는 달라졌다. 조금씩 자기 습관을 버렸다. 인터벌이 짧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올시즌엔 지난해보다 눈에 띄게 공을 던지는 간격이 짧아졌다. 김 감독은 “해커의 변화된 모습이 보인다. 팀으로선 매우 고마운 변화”라고 말했다.
해커는 2013년 27경기에서 퀄리티스타트(6이닝 3자책점 이하) 23회를 기록하면서 방어율 3.63의 특급피칭을 했지만 승리는 고작 4승(11패)을 거두는데 그쳤다. 올시즌 해커는 두 번 선발 등판해 모두 승리 투수가 됐다.

[SS포토]새사령탑김기태감독,조계현코치와작전회의중'
[스포츠서울]KIA 김기태(오른쪽) 감독과 조계현 수석 코치 /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인터벌과의 사투, ‘투수는 등을 보이면 안된다’

인터벌을 줄이기 위해 투수들의 행동에 제약을 거는 팀도 있다. 젊은 투수가 많은 KIA다. KIA는 지난 스프링캠프에서 투수들의 인터벌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지시사항을 내렸다. 대표적인 것이 ‘뒷걸음질’이다. 많은 투수들은 투구를 한 뒤 몸을 돌려 마운드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런 동작은 투구 사이의 시간을 늘리는 주범이다. KIA 조계현 수석코치는 “현역 시절, 인터벌을 줄이기 위해 투구 이후 절대 몸을 돌리지 않았다. 뒷걸음질을 쳐 마운드로 돌아갔다. 이런 사소한 동작은 인터벌을 줄이는데 상당한 도움을 주고, 동료 선수들이 집중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조 코치는 “인터벌이 짧을 수록 무조건 수비팀에게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KIA는 마운드 위에서의 잔 움직임을 줄이려고 노력했다. KIA에서 인터벌이 짧아진 대표적인 투수는 임준혁 임준섭 홍건희다. KIA는 8일 경기까지 팀 방어율 3.50을 기록 중이다. 전체 2위다. 지난해 KIA 팀 방어율은 5.82였다. KIA의 팀 방어율 변화의 핵심적인 이유는 전반적인 선수들의 기량 향상에 있겠지만, 인터벌 교정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SS포토] 류현진의  'Always October', 올해도 가을의
LA 다저스 류현진 / 스포츠서울 DB

◇ML에선 인터벌이 투수의 능력

미국 메이저리그(ML)는 투수들의 인터벌을 계량화해 능력치의 하나로 분석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한다. 수 많은 현지 통계사이트는 2008년부터 각 투수들의 인터벌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팬그래프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ML에서 인터벌이 가장 짧았던 선수는 토론토의 마크 벌리로 투구 간격이 17.3초에 불과했다. 그는 지난해 13승 10패 방어율 3.39을 기록했다. 그는 15년 연속 10승 이상을 거둔 ML의 대표적인 철완이다. 2위는 토론토 R.A.디키로 18.3초를 기록했다. 그는 지난해 14승 13패 방어율 3.71을 마크했다. ML에서는 인터벌이 짧은 투수가 대체적으로 개인성적이 좋다는 것이 정설이다.
LA 다저스 류현진과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도 인터벌이 짧기로 유명하다. 류현진은 2013년 19.7초를 기록했고 지난해엔 20.8초를 마크했다. 지난해 류현진은 150이닝 이상 던진 ML 투수 102명 중 21번째로 인터벌이 짧았다. 박찬호는 인터벌을 집계한 2008년 이후 3시즌에서 평균 21.9초를 기록했다.
김경윤기자 bicycl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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