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스포츠는 결과를 알 수 없어, 각본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반면 영화는 각본이 있는 장르다. 그 중에 스포츠 영화는 대개 실패와 좌절, 그리고 극복과 성공으로 이어지는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다. 결말이 보이는 대표적인 갈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스포츠 영화를 향해 틀에 박힌 전개라고 치부하는 이도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스포츠 영화에 열광한다. 흥미진진한 스포츠의 나열처럼 다이나믹한 장면이 나열되기 때문이다. 영원한 강자도 약자도 없는 승부의 세계지만, 굵은 땀방울은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는 스크린의 명제도 현실의 위안이다. 재미와 감동과 함께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묵짐함도 있다. 설을 맞아 손에 땀을 쥐고 볼 수 있는, 그리고 감동으로 다가오는 스키점프, 야구, 역도, 핸드볼, 씨름 등을 소재로 한 스포츠영화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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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년)
올림픽에 출전한 여자 핸드볼 국가 대표팀을 주제로 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최고의 명승부를 펼친 핸드볼 대표팀의 감동 실화인데 비인기 종목의 설움과 주부선수 등의 애환이 잘 녹아있다. 미숙(문소리)은 최고의 선수이고 올림픽 2연패의 주역이지만, 팀해체로 생계를 위해 대형마트에서 일하고 있다. 일본에서 감독 생활을 하던 혜경(김정은)이 돌아오며 올림픽을 앞두고 노장 선수들이 모인다. 미숙도 합류하며 4년에 한번 찾아오는 관심의 시기에 올라탄다. 마지막 결승전에서 미숙이 승부 던지기를 하는 순간, 카메라는 공이 아닌 선수들의 얼굴을 비춘다. 영화는 묻는다. 당신에게 생애 최고의 순간은 언제인지를. 최고가 되지 못해도 최선을 다하면 그 순간은 찾아온다. ‘우생순’이 대표선수들의 모습을 담았다면 ‘킹콩을 들다’(2009년)는 소녀들의 스포츠 성장기다. 국내 최초 역도영화로 고교 소녀들의 도전과 성장을 따뜻하게 조명하고 있다. 2000년 81회 전국체전에서 5명의 인원으로 출전한 한 시골 여고에서 무려 4명이 3관왕에 오르고 총 15개의 금메달 중에 14개의 금, 1개의 은을 수확하며 팀MVP를 석권한 실화가 바탕이다.
◇YMCA야구단(2002년)
국내 야구의 시작점을 유쾌하게 건드린다. 글 공부 보다 운동을 더 좋아하는 선비 이호창(송강호)이 우연히 YMCA회관에서 야구하는 신여성 민정림(김혜수)을 만나며 야구라 불리는 신문물에 빠져든다. 그를 중심으로 조선 최초의 야구단 YMCA야구단이 만들어진다. YMCA야구단은 연전 연승으로 최강의 야구단으로 자리 잡으며 황성 시민의 사랑을 받게 된다. 을사조약 이후 YMCA야구단은 일본군 클럽팀 성남 구락부와 자존심을 건 대결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 실제로 YMCA야구단은 기독교 청년회 간사였던 필립 질레트의 지도 아래 결성된 후 해체될 때까지 13년간 최강팀으로 군림했다. 영화는 코미디 형식을 빌렸지만, 한국야구의 역사를 담고 있다. 스크린을 통해 100년전 야구 장비 등을 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연출을 맡은 김현석 감독은 소문난 야구광으로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1998년)에서 야구를 소재로 한 각본을 썼고, ‘슈퍼스타 감사용’(2004년), ‘스카우트’(2007년)를 연출했다.
◇비상(2006년)
비상은 K리그를 소재로 한 첫 영화다. 인천 유나이티드가 파란을 일으켰던 2005년 시즌이 배경이다. 2004년 K리그에 참가한 신생팀 인천은 그해 13개 팀 중 12위에 그친다. 그러나 2년차인 2005년 준우승을 하는 파란을 일으킨다. 영화 같은 꼴찌팀의 기적이다. 기업 후원이 없는 시민구단에 무명선수들이 주축이지만, 결승전까지 비상하는 이변을 만들어낸다. 영화는 그라운드 밖 모습까지도 생생하게 전한다. 장외룡 감독과 선수들간의 일상, 말썽꾸러기 용병 라돈치치, 안종복 단장과 에이전트의 연봉협상 중 다툼 등이 가림막 없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비상’을 만든 임유철 감독은 유소년 축구단 희망FC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누구에게나 찬란한’(2014년)도 내놓았다. 팀의 탄생과 대회출전까지 6년간의 시간이 담겨 있는 이 영화는 자발적인 후원금으로 팀이 만들어지고 아이들이 책임과 협동심을 배우며 성장하는 6년간의 긴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야구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갈매기’(2009년)가 있다. 갈매기는 롯데 자이언츠의 또다른 이름이다. 롯데는 2000년 이후 하위권을 맴돌며 부진을 거듭한다. 8888577(2001~2007년 순위). 그러나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부임한 2008년을 기점으로 재도약의 불씨를 당긴다. 그리고 2009년 시즌이 시작되지만, 선수들의 악재와 부상이 겹치며 다시 부진의 늪으로 향한다. 그러나 구도 부산팬들의 끝없는 응원은 롯데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대호, 강민호, 조성환 등 롯데 선수들의 드러나지 않은 일상도 영화를 보는 재미다. 이대호는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블록버스터 영화 ‘해운대’(2009년)에 카메오로 출연하며 영화배우로의 인기도 과시했다. 한편 다큐멘터리 스포츠 영화로는 100년 전통의 일본고교팀을 잇달아 제압하는 오사카 조선고교 럭비부의 전국대회 도전기를 그린 ‘60만번의 트라이’(2013년)도 빼놓을 수 없다. 재일동포 사회 뿐 아니라 일본 전역을 흔든 울림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미스터 3000(2004년)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다. 그 기록에 목숨 건 한 남자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스탠 로스는 메이저리그에서 3000개의 안타를 치고 화려하게 은퇴했다. 3000개를 채운 그날 바로 유니폼을 화끈하게 벗어버렸다. 그런데 들려온 황당한 소식. 명예의 전당 가입을 위해 심사를 해보니, 3000개에서 3개가 모자란 2997개라는 것. 이미 은퇴한지는 9년이 지났고 그의 나이는 47세. 그러나 기록은 영원한 법. 미스터 2997로 만족하지 못하는 로스는 나이 50이 다되어 현역으로 복귀한다. 현역시절 시건방의 절정이었던 그는 3개의 안타를 더 치기 위해 팬과 어린 동료들의 냉담에도 꿋꿋하게 버틴다. 그리고 2999개의 안타를 치고 맞은 마지막 경기. 0-0으로 맞선 9회 주자 2루 상황에서 그는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고 희생번트를 댄다. 3000안타를 기대한 관객에겐 배신하는 설정이지만, 개인이 아닌 팀을 위해 마지막 안타를 포기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미스터 고(2013년)
영화는 고릴라가 야구를 하는 기발한 발상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무너져가는 룡파 서커스 단을 살리기 위한 15세 중국소녀 웨이웨이가 있다. 그녀의 유일한 친구는 태어날때 부터 함께한 45세의 나이든 고릴라 링링 뿐. 야구광이었던 웨이웨이의 할아버지 덕분에 고릴라 링링은 야구를 잘 했고 그 소식은 한국에서 화제가 된다. 악명 높은 에이전트 성충수(성동일)는 큰 돈을 벌게 해 주겠다며 웨이웨이와 링링의 한국행을 성사시킨다. 서커스 단을 위해 한국프로야구에 정식으로 데뷔한 링링은 타고난 힘과 스피드, 정확성으로 전국민의 사랑을 받는 스타가 된다. 그러나 상대팀에서 또다른 고약한 고릴라를 선수로 영입하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몸무게가 300kg에 달하고 사람의 20배가 넘는 힘을 자랑하는 고릴라의 CG는 할리우드 못지 않게 자연스럽다. 극 중 웨이웨이의 대사 “야구는 집에서 시작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경기”라는데서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다.
◇밀리엄 달러 암(2014년)
피츠버그와 계약하며 사상 첫 인도인 메이저리그가 된 린쿠 싱과 디나쉬 파텔의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다. 거물급 선수와의 에이전트 계약에 실패해 실의에 빠진 스포츠 에이전트 존 햄은 우연히 TV를 보다 크리켓 하는 인도 선수들의 경기 장면을 보면서 영감을 얻는다. 존 햄은 인도에서 빠른 공을 던지는 사람을 뽑는 리얼리티 쇼를 기획하고 진행한다. 일명 ‘밀리엄 달러 암(Million Dollar Arm) 콘테스트’. 인도 전역을 돌며 이 쇼를 진행해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인도 청년 2명을 뽑아 미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USC의 투수코치 탐에게 이들을 맡겨 투수로 조련한다. 운전기사와 투창선수인 이들이 1년 만에 메이저리그 투수가 되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는 실화다. 배우들의 개성이 잘 표현되고 온 가족이 즐겁게 볼 수 있는 오락 영화면서도 짜임새 있는 연출과 세심한 손길이 묻어난다. 디즈니에서 제작해 안정적인 전개속에서 단순하지만 유쾌한 재미를 선사한다. 에이전트에 관한 대표적인 영화로는 ‘제리 맥과이어’(1996년)가 있다. 잘나가던 에이전트 맥과이어는 괘씸죄에 걸려 해고를 통보받고 그의 곁엔 마지막 고객인 퇴물 미식축구 선수 로드 티드웰만 남는다. 절망의 끝에서 그는 인간적인 끈을 놓지 않는 소신으로 일과 사랑, 성공을 모두 손에 쥐게 된다. 그는 영화도입부에서 에이전트에 대해 “여기는 미국. 스포츠에 살고 스포츠에 죽는 나라. 난 겉으로 드러나는 사람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니깐. 스포츠 에이전트다”라고 설명한다.
◇국가대표(2009년)
스키점프가 뭔지 잘 모르지만, 스키 좀 탔다는 이유로 대한민국 최초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이 만들어진다. 제대로 된 지도자와 선수, 장비가 없는 상황에서 올림픽 출전과정은 험난할 수밖에 없다. 연습장이 없어 점프대 공사장을 전전하고 보호장구가 없어 오토바이 헬멧을 사용한다. 영화는 그 과정을 비애가 아닌 웃음을 조미료로 사용한다. 급조된 대표팀은 오버스트도르프 월드컵에 출전하지만, 외국선수의 비웃음 속에 결과는 낙방. 그러나 엉겁결에 나가노 동계 올림픽 출전자격을 취득하게된다. 그렇다고 해피엔딩일까. 한국은 동계올림픽 개최지에서 끝내 탈락하고 스키점프 대표팀은 해체 위기에 처한다. ‘국가대표’는 역경을 헤치고 불가능에 당당히 도전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영화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현실과 이상을 비교해 볼만하다. 더운 나라 자메이카 봅슬레이팀의 동계올림픽 출전 실화를 영화로 옮긴 ‘쿨 러닝’(1993년)과 비교해 보는 재미도 각별하다. 쿨 러닝도 비인기 종목의 어려움 속에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스포츠 영화다. 한편 ‘국가대표’를 보면, OST로 삽입된 러브홀릭스의 ‘버터플라이’가 한동안 귓가에 맴돌게 된다. ‘어리석은 세상은 너를 몰라 누에 속에 감춰진 너를 못 봐 그토록 찬란한 너의 날개 겁내지 마 할 수 있어 뜨겁게 꿈틀거리는 날개를 펴 날아올라 세상 위로 태양처럼 빛을 내는 그대여 세상이 볼 수 있게 날아 저~멀리.’
◇슈거(2008년)
현실적인 야구 영화다. 미국프로야구에는 빅리그 진출을 위한 다단계가 존재한다. 많은 선수들이 루키리그 부터 시작해 트리플A를 거쳐 메이저리그로 올라가는 꿈을 꾼다. 도미니카공화국은 미국야구의 젖줄 중 하나다. 그들은 재능이 있다면 미국에서 야구선수를 꿈꾼다. 슈거 역시 싱글A에서 빅리거를 꿈꾼다. 그러나 빠른 직구에 허술한 변화구. 스카우트에게 배운 너클커브가 전부다. 그가 프로선수로 성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현실처럼 말이다. 약관의 슈거는 코치에게 “죽어라 야구를 해도 야구를 못한다”고 넋두리 한다. 영화 속 슈거는 단순한 구종 때문에 주목받지 못하는 한 선수에 불과하다. 여러 벽에 갇힌 우리 청춘의 자화상이다. 스포츠 영화는 고된 훈련을 통해 성공하는 전형적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슈거에게 인생은 달지 않다. 빛나는 스타는 극소수에 한정된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 슈거가 친구들과 순수하게 야구를 즐기는 모습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머니볼(2011년)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머니볼’(Moneyball)은 선수단 구성을 책임지는 프로구단 단장의 이야기다. 야구 자체를 몰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내용이며 2003년 발간된 마이클 루이스의 원작에 기반을 두고 만들었다. 미국 메이저리그 오클랜드의 단장 빌리 빈은 가난한 구단 살림에 좋은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과학적인 세이버 매트릭스를 이용한다. 기존의 생각과 판단의 틀을 뛰어넘는 혁신과 저평가된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은 약팀이 강팀으로 변모하는 과정과 세밀하게 오버랩된다. 그렇다고 약체팀의 감동 실화를 기대하면 안된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가 창출하는 냉정한 경영 전략가의 모습이 머니볼의 기본이다. 미식축구 단장의 이야기로는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드래프트’(2014년)가 있다. 미국 최대스포츠인 미식 축구의 빅이벤트 ‘드래프트 데이’가 주제다. 팀 운명을 결정지을 신인선수 선발전을 앞두고 각 팀마다 최고의 선수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물밑작업과 고도의 심리전이 펼쳐지는데, 1순위 지명권을 우여곡절 끝에 손에 넣은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의 단장은 의외의 선택을 하게 된다. ‘드래프트’에 액션은 없지만 긴장감은 압권이다. 야구선수 출신인 케빈 코스트너는 ‘19번째 남자’(1988년), ‘꿈의 구장’(1989년), ‘사랑을 위하여’(1999년)에 주연으로 출연하며 ‘케빈표’ 야구 3부작을 찍기도 했다. 선수출신답게 폼이 정확한게 특징이다. 할리우드는 스포츠 영화를 즐겨 만는데 대부분 야구 영화가 많은 편이다. 야구는 호흡이 길고 경기 중에 여백이 많아 그 속에 복잡한 연결고리와 의미를 담을 수 있어 영화소재로 적합하다.
◇슈퍼스타 감사용(2004년)
꿈을 던진 패전 투수가 있었다. 프로야구 초창기에 삼미는 만년 꼴찌팀이었다. 꼴찌 속에서도 꼴찌인 패전 처리 전문투수의 이야기가 슈퍼스타 감사용이다. 영화 포스터에는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당신의 1승. 이제는 온 국민이 당신을 응원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감사용은 평범한 투수였다. 그러나 왼손잡이라는 이유 하나로 프로야구 삼미의 유니폼을 입게 된다. 5시즌 동안의 기록은 1승 1무 15패로, 딱 한번의 승리를 맛보았다. 상대팀은 그의 등장에 승리를 장담하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고 방송은 중계를 끊기 일쑤였다. 불같은 강속구도, 날카롭운 변화구와 제구력도 없지만, 영화는 평범한 재능을 가진 투수의 꿈과 희망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박민규의 소설 ‘삼미 슈퍼 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원작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국내스포츠 영화로는 앞서 소개한 ‘우생순’ ‘국가대표’ ‘킹콩을 들다’ 외에 남북 탁구영화 ‘코리아’(2012년), 자폐아의 마라톤 도전기 ‘말아톤’(2005년), 마돈나처러 멋진 여자를 꿈구는 소년의 씨름 이야기 ‘천하장사 마돈나’(2006년), 동티모르에서 시작된 1달러 짝퉁 축구화의 기적 ‘맨발의 꿈’(2010년), 청각장애 야구부 충주성심학교의 1승을 그린 ‘글러브’(2011년), 엄마를 위해 달리는 ‘맨발의 기봉이’(2006년), 최동원과 선동열의 대결을 그린 ‘퍼펙트게임’(2011년) 등이 있다.
배우근기자 kenn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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