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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틸리케 감독(가운데)이 24일 호주 시드니 코가라 오벌에서 독일 공영방송과 인터뷰하고 있다. 시드니 | 김현기기자


[스포츠서울]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은 지난 해 10월 한국 감독직에 오른 뒤 스페인어를 공식적으로 쓰고 있다. 독일 출신이지만 스페인어로 지시하고 인터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5년간 자신을 보좌하고 있는 아르헨티나 출신 카를로스 아르무아 수석코치가 스페인어를 쓰기 때문이다. 슈틸리케 감독 자신도 23살이던 1977년 스페인 명문 레알 마드리드에 건너가 선수 생활을 하는 등 스페인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한국에 오기 전 거주하던 곳도 스페인 마드리드였다고 한다.

슈틸리케 감독이 2015 아시안컵에서 쓰는 언어는 영어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이 대회 공식 언어로 영어를 사용하고 있어서다. 스페인어 만큼 유창하지는 않지만 외신과의 질의 응답에 문제가 없을 만큼의 영어 능력을 구사한다. 그는 프랑스어도 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카타르 프로 구단에서 감독 생활을 할 땐 아랍 선수들이 프랑스어에 익숙하다는 이유로 그렇게 했다. 결국 슈틸리케 감독은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조국 독일에서 쓰는 독일어가 아닌, 남의 나라 말을 쓰는 셈이다.

그런 그가 한국 감독직에 사인한 뒤 처음으로 독일어 인터뷰를 진행했다. 24일 시드니 코가라 오벌에서 열린 대표팀 훈련장에 독일 공영방송 ‘도이치 벨레’ 취재진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선수들을 지휘하던 슈틸리케 감독도 잠시 짬을 내 인터뷰에 응했다. 그가 쓴 언어는 당연히 독일어였다. 차두리나 손흥민 등 분데스리가 전.현직 선수들에게 독일어로 지시하는 모습이 눈에 띄곤 했지만 공식 인터뷰에서 독일어를 쓰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도이치 벨레’ 호주 통신원인 디터 하만은 “슈틸리케 감독이 스페인어나 영어를 하는 것은 봤어도 독일어를 하는 장면은 처음 본다”는 기자의 말에 “아, 그런가? 재미있다”며 웃었다. 이어 “슈틸리케는 아시안컵에 참가하고 있는 유일한 독일인이다. 조국에서도 그가 이끄는 한국 우승 여부에 관심을 갖고 있어 이렇게 왔다”고 소개했다. 기자회견에서 날카로운 표정을 짓던 슈틸리케 감독이 독일 사람을 만나자 다소 편안한 표정으로 답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은 기자 만의 느낌이었을까.

슈틸리케 감독은 ‘도이치 벨레’를 통해 특유의 솔직함을 코드로 답변을 이어나갔다. 재미있는 내용도 있었다. 그는 “지난 23일 멜버른을 떠나 시드니에 도착하면 바로 이란-이라크 준준결승이 열리는 캔버라에 가려고 했는데, 비행기가 기체 결함으로 멜버른 회항을 하는 바람에 이란-이라크전을 완전히 다 보지 못했다. 아직 우리 팀은 이라크 전술을 다 알지 못한다”고 전했다. 당시 비행기는 랜딩기어 이상으로 저공 비행하다 다시 멜버른에 내렸고, 결국 비행기를 바꾸는 바람에 예정보다 2시간 늦게 시드니에 왔다. 슈틸리케 감독은 부랴부랴 차량을 타고 3시간 걸리는 캔버라에 도착했지만 이란-이라크전 킥오프 시간을 못 맞췄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이런 가십 외엔 독일인 앞에서 한국 대표팀을 칭찬하고 한국 생활이 행복하다는 소견을 전반적으로 털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하만은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 선수들과 함께 있는 게 행복하고 한국에서 일하는 게 행복하다. 우승할 좋은 기회를 잡았고, 선수들은 동기부여가 잘 되어 있다’는 말을 하더라. 자신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을 정말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23살 때 스페인 구단으로 간 뒤 현역 은퇴할 때까지 독일로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은 이해가 가지 않지만, 당시엔 독일 대표급 선수가 스페인으로 가는 것을 ‘배신자’처럼 보는 시각이 강했다고 한다. 그가 독일어 대신 스페인어나 프랑스어를 쓰며 지도자 생활을 하는 배경엔 선수 때 받은 ‘이방인’ 취급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한국대표팀을 끝으로 지도자에서 은퇴하고 싶다”며 굳은 각오로 한국행을 결심한 슈틸리케 감독이 아시안컵 우승을 이끈다면, 조국 독일에서도 그의 존재가 다시 조명받지 않을까.
시드니 | 김현기기자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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