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2011년 개봉한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부터 2017년 나온 ‘혹성탈출: 종의 전쟁’까지. 전세계에서 총 16억 8100만 달러를 벌어들인 프랜차이즈 ‘혹성탈출’은 유인원 리더 시저의 일대기였다.

세편의 시리즈는 유인원이 어떻게 언어와 지성을 획득했는지, 인간과 다른 종 사이에서 생존해 온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묘사했다. 생명 모두를 아우르는 시저의 철학은 ‘혹성탈출’ 시리즈를 관통하는 메시지였다.

지난 8일 개봉한 ‘혹성탈출: 새로운 시작’은 시저의 죽음 이후 300년 뒤에서 출발한다. 인간이 이룬 기술과 문명은 사라졌다. 진화한 유인원이 세상을 지배했고,퇴회한 인간은 원시인처럼 살아간다.

영화는 독수리와 어울려 지내는 독수리 부족장의 아들 노아(오웬 티그 분)의 시선으로 흘러간다. 노아 부족은 왕국을 세우고 싶은 또다른 유인원 리더 프록시무스(케빈 듀랜드 분)의 강탈로 터전을 잃는다.

프록시무스는 전쟁 무기를 활용할 수 있는 메이(프레야 앨런 분)를 쫓다 주변 부족까지 해치웠다. 인간에 대한 반감이 심한 프록시무스는 인간을 철저히 학살하려 했다.

메이와 손잡은 노아는 시저의 진정한 뜻을 기리는 장로 라카(피터 마콘 분)와 합류하며 성숙한 어른의 뜻을 깨우쳐 갔다. 거대 왕국을 세우고 싶은 프록시무스와 유인원과 인간의 공존, 화합을 요구하는 라카 사이에서 노아는 새로운 세계관을 갖춰갔다. 노아와 메이는 끝내 프록시무스의 뜻을 저지하는 데 성공하지만, 종이 다른 인간과 유인원의 공존은 멀기만 하다.

시작부터 절경이 펼쳐지는 ‘혹성탈출: 새로운 시작’은 볼거리가 화려하다. 제작진은 털 한 올마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모든 유인원과 동물, 자연이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화면을 만들었다. 유인원의 얼굴에서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전달되고 거세게 몰아치는 급류도 실감나게 표현됐다. 전 세계 최고 수준의 특수효과 기술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가치가 있다.

다만 이야기는 지루하게 흘러갔다. 영화는 로드무비의 형태를 띄고 노아의 여정을 따라간다.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경험하는 노아의 성장이 영화의 핵심이다. 노아가 점차 많은 것을 깨우치고 커 나가는 데 과정이 지루하게 그려졌다.

몇몇 긴박한 시퀀스도, 강렬하진 않다. 대사는 적고 전개는 예측 가능하다. 하이라이트까지 긴 시간을 버텨야 했다. 후반부 절정도 한 방이 부족하다.

영화는 인간과 유인원의 공존에 대한 간단한 질문을 놓고 헤맨다. 프록시무스가 왜 그렇게 인간을 혐오하고 신뢰하지 않는지, 인간과 유인원의 공존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자세한 설명은 없다.

거대 담론을 던져놓고 숨은 그림찾기처럼 애써 찾아야만 하는 양상이다. 인간과 유인원 사이의 갈등이 예상되는 엔딩으로 마무리되는데, 기획 의도가 직관적으로 전달되지 않았다.

볼거리와 이야기 사이에서 볼거리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은 인상이다. 기술이 발전한 사이 이야기와 메시지에 대한 고민은 성장하지 않은 듯 했다. 새 부대에 헌 술을 담은 듯한 뻔한 담론이 아쉽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