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날카로운 질문엔 감정도 묻어난다. 회사 경영진은 주주들의 쓴소리에 진땀을 흘렸다.

삼성전자는 20일 경기도 수원시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제55기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했다.

매년 치르는 주주총회지만, 이날은 특별했다. 삼성전자가 올해 처음으로 경영진과 주주들 간 소통을 위한 자리를 마련한 것. 이날 현장을 찾은 주주, 기관투자자, 경영진 등 600여 명은 ‘주주와의 만남’을 통해 허심탄회하게 속사정을 털어놨다.

◇ 깊은 한숨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요?”

이날 삼성전자 ‘주가’가 주주총회 내내 반복 거론됐다. 7만원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 주주들의 분통이 터진 것이다. ‘지지부진(遲遲不進)’이 여러 차례 들렸다.

삼성전자는 최근 주자가 지속 상승하고 있는 SK하이닉스와 비교당하기도 했다. 인공지능(AI) 대비 대신 선택한 HBM 사업에 대한 지적도 피하지 못했다.

주주들을 홀대하는 것 같다는 불만도 있었다. 한 주주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가”라고 하소연도 했다.

삼성전자 경영진들은 이러한 반응에 변명하진 않았다.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부회장은 “주가가 주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경영진의 한 사람으로서 사과드린다”라고 고개 숙였다.

경계현 DS부문장·사장도 “근원적 경쟁력이 있었으면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잘 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올해 회복해서 시장 영향 덜 타는 데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 작심 발언 “사퇴할 생각 없어요?”

지난해 삼성전자의 실적과 주가 하락은 고(故) 이병철 삼성전자 창업회장까지 소환했다. 주주들의 돌직구가 날아들었다.

한 주주는 “실적 위주 경영을 해온 이병철 회장이 계셨다면 지금의 경영진들이 앞에 앉아있을 수 있었을까”라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신임했다고 믿겠지만, 주주들은 피눈물을 흘린다”라고 직격타를 날렸다.

이어 “주주가 지난해 대비 100만명이 떠났다”라며 “임원들은 사퇴할 생각이 없느냐”고 직설 질문을 던졌다.

한 부회장은 “임직원 전체가 노력하고 있다. 주주들의 꾸준한 관심과 응원 부탁드린다”라고 짧게 답변했다.

◇ 차별금지 “왜 S23은 되고 S22는 안 돼요?”

삼성전자 갤럭시 S24 시리즈는 온디바이스 AI 탑재로 세계 최초 AI폰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특히 △실시간 대화·문장을 통·번역하는 ‘채팅 어시스트’ △번역·요약·포매팅 가능 ‘자동 카테고리 설정’ △AI가 최적화 답을 제공하는 ‘써클투서치’ △줌·나이토그래피 화질 개선 등이 화제를 모으며 출시 28일 만에 국내 100만대 판매를 돌파했다. 역대 갤럭시 S 시리즈 중 최단기간 기록이다.

갤럭시 AI 인기에 힘입어 삼성전자는 지난해 출시한 주요 제품에도 이 기능을 지원해 모바일 AI의 글로벌 확산에 박차를 가한다고 전했다.

이번 달 말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앞두고 한 주주는 “S24 AI 기능이 왜 S23은 되면서 그 아래 모델에는 적용이 안 되는 것이냐”며 갤럭시 S22에 대한 AI 업데이트 여부를 물었다.

노태문 MX사업부장은 “갤럭시 AI는 클라우드 AI와 온디바이스 AI 결합의 하이브리드 AI”라며 “S23 이전 모델에 대해서는 검토 중”이라며 “하드웨어 성능을 고려해 제대로 된 갤럭시 AI 경험 지원이 가능하다고 판단할 때 결정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 미소와 함께 절제! “유인물에 있어요~”

이날 삼성전자는 한 부회장의 진행으로 △감사보고 △영업보고 △내부회계관리제도 운영실태 보고 등을 전하면서 길고 복잡한 내용은 사전 지급한 보고서를 참조하라고 했다.

이어 각 부문에 대한 질의응답 때 한 주주가 “평가보고서는 안 보인다”라며 “배당 성향이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올해 기말 배당금의 주당배당금이 보통주 기준 361원으로 지난해와 같고, 순이익의 35%에 그친다며 “경영진이 주주들을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다이내믹한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한 부사장은 “운영실태보고서는 유인물에 있다”라고 맞받아친 후 “감사위원회의 독립적 점검 및 현장 조사 등을 펼친 결과, 결부되는 내용은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주주환원과 관련해서는 “전례 없는 메모리 업황이 악화에 따른 보유금이나 현금 절감 및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 등에 경영 여건이 여전히 어렵다”라며 “중장기 지속 성장을 위해 필요한 설비 투자 및 연구·개발, 미래 성장 동력 확보 등을 지속 나아가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 얼음장 녹인 봄날의 햇살

질문자 혹은 의견을 제시한 지지자 중 다수가 불평·불만을 털어놨다. 어떤 이는 인신공격에 가까운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점점 분위기가 ‘막말 향연’으로 빠져갈 때마다 주주 중 누군가가 손을 들어 주주총회의 본질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았다.

그들은 “나는 삼성전자를 지지한다. 앞으로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더 노력해달라”라고 다음 섹션으로 이동을 유도했다.

긍정적 내용이든 부정적이든 발언하기 전 “이야기 잘 들었다. 한 해 동안 고생했다”라고 격려하는 이들도 간혹 보였다. gioi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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