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초창기의 신해철. 스포츠서울DB

[스포츠서울] 먹먹하다. 갑작스런 이별에 마음의 준비조차 할 겨를이 없어서. 그래도 다행이다. 가수로 살아온 26년의 세월동안 많은 어록과 노랫말로 오래 오래 추억할 유산을 남겨 주었기에.

‘마왕’ 신해철이 떠났다. 사람은 떠났지만 생전에 남긴 족적은 대중의 소중한 유산으로 남는다. 최근의 그는 마흔 여섯 중년의 모습으로 익숙하지만, 날카로운 시대 비판과 깨어 있는 지성으로 정신만은 언제나 스무 살 청년이었다. 그렇게 ‘청년의 정신’으로 살아온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스포츠서울DB에 남겨진 가슴 뭉클한 데뷔 초의 앳된 모습을 돌이켜본다. 언제인가부터 신해철은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와 단호한 언변을 통해 ‘마왕’이란 닉네임으로 군림해왔지만, 1990년 전후의 솔로 활동 시절의 그는 마치 ‘순수 청년’의 모습으로 상반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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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과 현진영. 사진 | TV가이드

신해철은 데뷔 초 후배 가수 현진영과 닮은꼴 외모로 화제에 오르기도 했었다. 당시 TV 가이드와의 인터뷰에서도 ‘일란성 쌍둥이 같이 닮아 의형제를 맺었다’는 내용이 눈길을 끈다. 실제로 방송국 PD들과 동료 가수들도 외모가 닮은 두 사람을 이름을 바꿔 부르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신해철은 당시 인터뷰에서 “눈에 힘이 빠진 듯 보이는 것이 나만의 콤플렉스인 줄 알았는데, 그것까지 닮았으니 우리가 가수가 되어 만난 게 운명같아서 친동생처럼 잘 대해주고 싶다”며 다정한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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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과 현진영. 스포츠서울DB

TV가이드의 인터뷰를 위해 촬영된 사진의 또 다른 원본이다. 신해철의 비보를 접한 현진영의 심정은 어땠을까. 현진영은 28일 트위터를 통해 “해철이형 우리 어릴 때 둘이 닮았다고 인터뷰도 같이 하고 내가 사고치고 힘들어 할 때 빨리 재기하라고 아낌없이 격려해주고 집에 갈 때 차비하라고 내 손에 돈 꽉 쥐어주셨던 형 절대 잊지 못합니다”는 글을 남기며 고인의 죽음을 누구보다도 더욱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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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초창기의 신해철. 스포츠서울DB

문신과 귀걸이,가죽 장갑, 그리고 선글라스. 신해철은 요란한 장신구로 로커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데뷔 초만 해도 동그란 은테의 안경과 단정한 헤어스타일, 그리고 클래식한 재킷으로 도시적인 귀공자 스타일을 추구했었다. 서강대학교 철학과 출신이라는 이력 덕분에 소위 ‘딴따라’로 여겨지던 다른 가수들에 비해 지적 매력이 강했던 점도 그만의 개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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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취 초창기의 신해철. 스포츠서울DB

앞서 소개된 사진에서 안경만 벗은 모습이다. 갓 입사한 신입 사원처럼 단정한 스타일이 돋보인다. 오똑한 콧날과 뚜렷한 얼굴선도 남다르다. 특히 신해철 특유의 초점 없는 듯 느슨한 눈초리가 눈길을 끈다. 신해철은 당시 인터뷰에서 “스스로 잘 생겼다고 여긴 적은 한번도 없다. 하지만 개성 있는 얼굴이라고 자신한다”고 자평했었다.

데뷔 초의 신해철. 스포츠서울DB

1집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을 통해 솔로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의 모습이다. 당시만 해도 동그란 은테 안경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단정한 스타일로 눈을 지그시 감고 마이크를 쥔 그의 모습이 이후 넥스트를 통해 밴드 활동을 하던 시기와과는 상반된 느낌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가요대상에서의 신해철(왼쪽)과 조용필. 스포츠서울DB

신해철이 서울가요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며 조용필로부터 트로피를 건네받고 있다. 조용필은 신해철의 데뷔 무대였던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심사위원장을 맡았으며, 이같은 인연으로 1990년 신해철의 솔로 음반 제작을 지원하는 등 데뷔 초부터 남다른 관계를 맺어왔다. 최근 들어 외부 활동을 극히 자제해왔던 조용필은 지난 28일 신해철의 빈소를 찾는 이례적인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는 조문을 마친 뒤 “데뷔 때부터 아주 잘 알던 사이라서 갑작스럽게 변을 당해 너무 당황했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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