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하
학교 폭력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재판 중인 두산 이영하가 9일 서울 서부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장강훈기자 zzang@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 장강훈기자] 학교 폭력 가해자로 지목돼 재판 중인 두산 투수 이영하(26)는 스프링캠프를 팀과 함께 소화할 가능성이 작아 보인다. 피해자 진술이 객관적이라는 것을 증명할 증거가 없으니 증인 신문으로 사실을 파악해야 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이영하와 김대현은 무죄 선고를 받을 수도 있다. 피해자의 기억과 사실 사이에 오류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 못하면, 자칫 피해자들이 2차 가해를 당할 수도 있다.

결과를 떠나 두 차례 공판을 지켜보면서 몇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우선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A씨는 실제로 적지 않은 고통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가해자가 누구였든 간에 이른바 왕따를 당하고, 한두 살 많은 형들에게서 가혹행위를 당한 듯하다. 시점과 기억의 오류는 있지만, 진술이 꽤 구체적이고 상세했다.

[포토]팬들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는 두산 김유성
‘학폭 논란’을 일으켰던 두산 신인 김유성(오른쪽)이 20일 잠실구장에서 진행된 ‘곰들의 대화’ 행사에서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A의 성토는 야구부 감독 코치진에게 향했다. 그는 “감독이라는 사람이 학생에게 수능을 볼 기회를 빼앗아버렸다”는 얘기를 하며 격앙된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전력외로 분류돼 경기 출전기회 자체를 박탈당한 A가 받았을 고통이 작지 않다는 게 그의 떨림으로 전해졌다. 전력외로 분류된 학생선수는 주축선수들의 화풀이 대상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증인석에 선 또다른 피해자 B는 “A는 체형이 독특했다. 선배들이 신체적 특징으로 자주 놀렸다. A가 대화하는 방식이나 사람을 대하는 게 서툴러서 왕따당하고 놀림받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누군가의 외모를 놀림의 대상으로 삼는건 파렴치한 행위다. 문제는 이런 행위를 ‘잘못된 일’로 인식하는 문화가 형성되지 않은 데 있다. B조차도 “당시에 기분은 나빴지만, 장난이나 놀이, 당연한 일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5회까지 삼진이 무려 9개, 안우진 [포토]
키움 선발투수 안우진이 16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2KBO리그 준플레이오프 1차전 키움히어로즈와 KT위즈의 경기 5회초 이닝을 준비하고 있다.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1980~1990년대에는 거수경례하고, 선배로부터 얼차려 받는 게 당연했다. 교사의 체벌은 ‘사랑의 매’로 불렸고, 선배들의 얼차려는 ‘질서확립’으로 통했다. 일제강점기와 군부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고착화한 군사문화는 기득권 세력의 편의주의적 발상 탓에 근절되지 않고 있다. 학생들은 부모나 교사, 선배들로부터 이런 문화에 자연스레 젖어든다.

B는 “고교 1학년 때부터 선배들에게 기합받거나 맞았다. 지시를 거부하면 폭행이나 폭언을 당했다. 야구부 내 분위기가 그랬다”며 “3학년 성적이 좋으니 2학년들은 대부분 시키는대로 했다. 반발할 분위기도 아니었다”고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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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하 재판이 열린 서울서부지방법원 출입문에 셔터가 내려져 있다. 장강훈기자 zzang@sportsseoul.com

프로야구팀에서도 2000년대 후반까지 ‘매맞는 후배’가 있었다. 여전히 각 팀에 ‘군기반장’이 있고 ‘단체생활은 상명하복이 기본’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선배 말에 반박하면 “후배가 토를 단다”는 핀잔이 돌아오고 “(군기가)빠졌다”는 비아냥이 뒤를 잇는다. 손찌검은 줄었지만, 폭언이나 강요 행위로 후배들을 통제하려든다. 누가 가르쳐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체득한 탓이다. 전적으로 어른들의 책임이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하다. 지금은 개인의 존엄과 다양성이 존중받는 시대다. 대화로 서로를 이해하고,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유소년 때부터 권리와 의무, 자유와 책임은 동의어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도록 끌어줘야 한다. 성인이 된 후에도 고교시절 상처에 몸을 떠는 A,B의 트라우마는 어른들이 만든 성과주의라는 괴물을 향한 외침이다.

마침 전국 대학교수 935명은 11일 올해 한국사회를 표현한 사자성어로 ‘과이불개(過而不改·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를 꼽았다. 체육계도 되새겨봐야 할 격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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