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배구팀 현대
2000년 현대 시절의 한유미(오른쪽 두 번째) 해설위원. 맨 오른쪽이 세터 강혜미.스포츠서울 DB

겨울을 대표하는 종목으로 떠오른 여자배구는 대중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더 나은 미래와 도약을 위해 한유미 KBSN 해설위원이 자신만의 배구생각을 이야기한다. V리그 출범부터 함께했던 레전드의 시선으로 여자배구를 다양하고 깊이 있게 살펴보자. <편집자주>

실업리그에 들어와 처음으로 만난 세터는 강혜미 언니였다. 입단 당시에도 언니는 베테랑 세터였다. 언니는 공격수들의 특징을 잘 파악하고 스타일에 맞춰 올려주는 세터였다. 내가 대각을 때려야 할 것 같으면 일부러 공을 짧게 줬고, 직선을 때려야 하는 상황에서는 길게 주는 식이었다. 미들블로커들에 맞춰주는 토스도 좋았다. 선수의 스피드와 스텝에 정확히 맞춰 공을 올렸다. 공격수의 공격 코스를 스스로 유도하는 선수였다. 나는 처음부터 너무 유능한 세터를 만난 탓에 다음에 만난 세터들에 적응하는 데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세터마다 다 특색이 있다. 어떤 세터는 곱게 잘 올려주기도 하고, 어떤 세터는 공의 스피드가 좋아 자연스럽게 스윙의 속도가 빨라지게 한다. 상대 블로킹을 잘 보는 세터도 있고 약속한 위치에 공을 정확히 올려놓는 세터도 있다.

스타일을 떠나 최근 우리나라 배구계에서는 세터 기근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표현이 있는 것을 고려하면 세터 부족 문제는 경기의 질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다.

과거와 비교하면 현재 우리나라 배구 스타일은 달라진 면이 있다. 공격수들의 키가 커져 높은 타점에 스피드 있는 토스를 선호하는 경향으로 변화했다. 서브도 훨씬 강해졌기 때문에 리시브가 불안해졌고, 안정적인 자세에서 완벽하게 토스를 하기도 어려워졌다. 공의 재질이 바뀐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세터 출신 지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최근 프로에 올라오는 세터들은 프로 적응에 애를 먹는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와 전혀 다른 스타일의 토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프로에서 가르치는 것들을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아 사실상 하나부터 열까지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젊은 세터들 중 두각을 드러내는 선수들이 많지 않다. 프로와 아마추어 무대를 연계할 수 있는 지도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프로 지도자들이 가르치는 스타일을 학교에서 도입한다면 세터들이 프로 무대에 적응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옆에서 보면 세터는 정말 어려운 포지션이다. 경기를 리드해야 하기 때문에 늘 침착하고 냉정해야 한다. 일희일비 하면 안 되고 늘 다음을 생각하고 여러 계획을 세워놓고 경기를 뛰어야 한다. 우리 선수 전체와 상대 블로커 라인, 수비 위치까지 한 번에 파악해야 하는 한다. 철저한 분석, 엄청난 훈련량, 넓은 시야, 만 가지의 수를 갖지 않으면 좋은 세터가 되기 어렵다. 정말이지 머리 아픈 포지션이다. 섬세해야 하고 예민해야 하는 면들을 보면 타고난 기질도 세터에게 필요한 요건인 것 같다.

최근에는 국제 배구 흐름에 따라 장신 세터를 키워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전위 블로킹에 가담해야 하고 키가 클수록 타점 잡는 데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질이나 재능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키 큰 세터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칫 선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혀 선수 생활을 단축시킬 수 있다. 지도자의 안목이 중요한 이유다.

사실 세터는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좋은 포지션이다. 선수에 따라 늦게 자리잡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여자부에선 이숙자 KGC인삼공사 코치, 이효희 한국도로공사 코치 등이 베테랑이 된 후 더 좋은 경기력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한 번 자리잡으면 롱런할 수 있는 포지션이기도 하다.

모든 포지션에서 그렇지만 완벽한 선수는 없다. 누구나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다. 프로선수는 결국 그 단점을 넘어서는 장점을 살리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세터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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