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진 \'보크어필\'로 퇴장당하는 허삼영 감독[포토]
삼성 허삼영 감독이 22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2프로야구 키움히어로즈와 삼성라이온즈의 경기 7회초 무사 1루 강민호 타석때 양현의 견제구에 1루주자 박승규가 태그아웃되자 투수보크를 주장하며 심판에 어필했다. 어필이 길어지며 허삼영 감독은 퇴장 조치를 당했다.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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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장강훈기자] 온통 무덤이다. 주로 감독들이 주인이다. 종종 거포 유망주나 화려한 이력을 가진 외국인 선수가 포함되기도 한다. 눈에 띄지 않을 뿐, KBO리그는 무덤과 공존하고 있다.

프로야구 감독은 ‘파리 목숨’이라고 한다. 성적부진으로 지휘봉을 내려놓는 경우가 꽤 잦다. 2018년부터 올해까지로 범위를 축소해도, 두산과 LG, KT를 제외한 8개 구단이 대행체제를 경험했다. 2020년에는 세 명의 감독대행이 대리청정했고, 올해도 두 명의 대행이 지휘봉을 잡고 있다. 올시즌 후 네 명의 감독이 계약 만료다. 세 팀은 상위권에 포진해 있지만, 재계약 보장이라고 선뜻 말하기 어렵다. 구단주의 선택에 성적을 내고도 해임된 전례가 있는 팀들이라 어떤 변수가 있을지 예단할 수 없다. ‘감독들의 무덤’이 더 넓어지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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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홍준학 단장(왼쪽)이 지난 2월 경산 삼성라이온즈 볼파크에서 시작한 스프링캠프에서 허삼영 전 감독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 | 삼성라이온즈

지난달 31일 사임한 삼성 허삼영 전감독은 우려와 기대를 한몸에 받던 지도자다. 투수로 입단해 짧은 선수생활을 마치고 전력분석원으로 전환, 2000년대 중후반 3(三)대장으로 시대를 풍미했다. 30년 동안 한 팀에 몸담으며 지켜본 감독만 9명이다. 김성근 백인천 김응용 등 원로 감독뿐만 아니라 우용득 김용희 등 프로야구 1세대 사령탑과 선동열 류중일 등 스타플레이어 출신 감독을 보좌했다.

삼성 홍준학 단장은 2019년 시즌 후 김한수 전감독과 재계약 대신 허 전감독을 선임하면서 “백네트 뒤에서 하던 업무를 더그아웃에서 하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라며 “누구보다 선수들의 장단점을 잘 파악하고 있는 인물인데다, 수많은 감독, 코치들과 소통하며 체득한 노하우가 상당하다. 팀을 재건하고 새롭게 도약시킬 적임자”라고 치켜세웠다.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직원을 현장으로 끌어낸 인물이 구단 경영진들이라는 뜻이다.

스케치북 검열에 뿔난 삼성 팬들
삼성 팬들이 지난 2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 앞에서 관중들에게 스케치북과 건전지로 작동하는 초를 나눠주고 있다. 연합뉴스

여론 압박에 감독이 버티지 못한 모양새이지만, 구단의 책임도 있다. 이른바 스케치북 검열 논란은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고, 주축들의 줄부상과 팀내 불화 등에 사실상 손놓고 방관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구단이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지만, 화난 팬들에게 ‘선수단 부상 등으로 정상전력이 아니어서 재건에 힘쓰고 있다. 기다려달라’는 설명은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2위나 꼴찌나 실패한 것은 마찬가지”라는 주장으로 주축선수들이 재기할 시간을 벌어주고, 단계적 리빌딩에 힘쓴 선동열 전 감독을 사실상 경질한 구단이니 “팀을 추스를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읍소할 명분이 약했던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당시에는 선 전 감독의 인내심 덕분에 이른바 ‘지키는 야구’를 완벽히 재현했다. 전임감독의 인내와 ‘순혈주의로 회귀’를 선언한 구단 기조로 취임한 류중일 전 감독은 ‘삼성 왕조’를 구축한 사령탑으로 명장 반열에 올랐다.

[포토] LG-KIA전 지켜보는 선동열-김응용-허구연 총재
선동열, 김응용 전 삼성 감독이 허구연 KBO총재와 12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KBO리그 LG와 KIA와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5연속시즌 정규시즌 우승에 통합 4연패를 일군 감독을 내친 뒤 삼성은 ‘못해도 4강’이라는 전통과도 작별했다. 이면에는 국정농단 가담으로 쑥대밭이된 모기업의 사정이 큰 몫을 차지했다. 당사자는 지난달 29일 형기가 만료됐지만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5년간 취업이 제한된다. 5년간 기업 총수로 돌아올 수 없으니 ‘광복절 특사’로 사면·복권을 기다리는 신세다. 스포츠단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신경쓸 여력이 없다는 뜻이다.

호랑이가 없으면 여우가 왕 노릇(호가호위·狐假虎威)을 한다. 그 속에 희생되는 것은 언제나 현장 수장인 감독이다. 구단은 늘 그렇듯 새로운 희생양을 찾는다. ‘대한민국에 단 10명뿐인 직종’이라는 감언이설로 새로운 욕받이를 옹립(?)한다. ‘감독들의 무덤’을 ‘명장의 요람’으로 바꾸는 건 구단의 몫이다. 출범 40주년. MZ세대를 끌어들이는 것보다 공동묘지의 용도변경이 더 시급한 KBO리그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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