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해

[스포츠서울|조은별기자]8일 강남구 도곡동 자택에서 숨진 고 송해(95)는 30여년간 KBS1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한 서민의 친구다.

고인은 1927년 황해도 재령군 출신으로 본명은 송복희다. 황해도 해주예술전문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후 월남, 1955년 창공악극단에서 가수로 연예계에 입문했다.

빼어난 화술과 재기를 지닌 그는 동아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스무고개’, MBC 라디오 ‘오색의 화원’에서 특유의 입담을 과시했다. 국내 TV 시대가 열리면서 1960년대부터 70년대를 주름잡은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 ‘코미디 하이웨이’, ‘고전 유머극장’ 등에 출연하며 가수와 희극인의 길을 함께 걸었다. 1974년 동양방송 라디오 채널 ‘가로수를 누비며’를 통해 진행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1986년 장남 창진 군의 사망 이후에는 희극무대보다 진행자로 주로 활동했다. 1988년부터 약 34년간 마이크를 잡은 KBS1 ‘전국노래자랑’으로 전국 팔도를 누비며 서민의 친구로 거듭났다. “전국! 노래자랑”이라고 송해가 외치는 구호는 프로그램의 트레이드마크다. 1994년 5월 잠시 하차했지만 그 해 10월 복귀 후 꾸준히 ‘일요일의 남자’로 시청자들 곁을 지켰다.

가수 김혜연, 박상철, 송가인, 임영웅, 이찬원, 정동원 등 최고의 트로트 스타들이 ‘전국노래자랑’을 거쳐갔다. 송해가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사람만 1000만명으로 추산된다.

고인은 종로구 낙원동에 ‘연예인 상록회’라는 원로 연예인들의 사무실을 차리기도 했다. 평소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고 걷기가 습관이었던 그는 종로의 시민들과 부대끼며 생활한 덕분에 2016년 일대 거리가 ‘송해길’로 지정되기도 했다. 종로 2가에서 낙원동에 이르는 송해길에는 송해의 단골 목욕탕, 국밥집, 치과 등이 있다.

악극단 가수 출신인 고인은 1987년 ‘송해 옛노래 1집’이라는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백마야 우지마라’, ‘아주까리 등불’ 등이 수록됐다. 지난 2011년 ‘나팔꽃 인생 60년-송해 빅쇼’라는 타이틀로 투어 공연을 다녔고 2015년, 88세의 나이에 ‘유랑청춘’이라는 싱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고인은 생전 방송을 통해 고향인 황해도를 향한 애틋함을 종종 드러냈다. 2003년 8월에는 ‘전국노래자랑’ 광복절 특집으로 평양 모란봉공원 야외무대에서 북한 진행자 전성희와 공동사회를 보기도 했다. 당시 송해는 북한에 머물고 있는 누이를 위해 선물을 준비했지만 끝내 전달하지 못한 채 펑펑 울며 돌아왔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고인은 사망 전까지 ‘전국노래자랑’의 마지막 방송을 고향인 재령군이나 학창시절을 보낸 해주에서 하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지만 끝내 이루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평생을 서민의 곁에서 웃음을 주고 눈물을 닦아줬던 공을 인정받아 2003년 보관문화훈장, 2014년 은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 지난 2020년에는 고인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송해 1927’(윤재호 감독)가 부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기도 했다. 한 세기 가깝게 서민과 호흡한 고인의 부재에 시민들도 애도를 표하고 있다. 유족으로는 두 딸과 손주가 있다.

mulgae@sportsseoul.com

사진|스포츠서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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