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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황혜정기자]

“살아오면서 풍파와 결핍이 있었다. 그런 것들이 내 연기에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한다. 내 인생이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들어 즐길 여유가 생겼다. 재미를 느끼는 중이다.”

영화 ‘마약왕’, ‘극한직업’,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 ‘마인’, ‘구경이’, 최근에는 영화 ‘스텔라’까지.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강렬하고 독특한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 이중옥(43)은 요즘 가장 바쁜 스타 중 한명이다. 그런 그를 지난 7일 폐막한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경쟁 부문에 오른 영화 ‘파로호’의 첫 상영을 마치고 전주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한창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중옥은 “지금 촬영하는 게 있고, 영화도 하나 들어간다. 연극만 하다보니 처음에는 이런 과정들이 좀 힘들었다”면서도 “이젠 즐길 여유가 생겼다. 내 인생이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재미를 느끼는 중”이라고 말했다.

영화제를 위해 전주에 온 소감으로는 “붕 떠 있는 기분이고 다른 세상 같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을 못 만나던 시절이 있었는데 여기 전주 영화제에서는 그런게 없어서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 같고, 또 영화 때문에 와서 좋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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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파로호’는 노모의 실종 후 아들이 겪게 되는 일상의 파문과 숨막히는 서스펜스를 담은 심리 스릴러다. 영화는 주인공 ‘도우’(이중옥 분)와 관계된 세 인물 간 펼쳐지는 의심과 지배를 통해 섬뜩한 진실에 다가간다. 임상수 감독의 장편 영화 데뷔작이다.

지난 2000년 연극 ‘돼지사냥’으로 데뷔해 22년 동안 연기를 해온 이중옥의 첫 주연작이기도 하다. 그는 “상당히 부담됐다. 어떤 작품이든 상영될 때까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여기 전주영화제에 온다는 것 자체가 너무 기뻤다. (함께 출연한 배우)강말금 누나에게 물어봤더니 영화제에 오는 게 ‘쉽지 않은 거다’, ‘대단한 거다’라고 말해주셨다”고 전했다.

‘파로호’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이중옥은 “대본을 받고, 감독님과 미팅을 했다. 나는 이 작품을 너무 좋게 봤다. 그래서 미팅 끝나고 헤어질 때 ‘정말 좋은 배우 쓰시라’고. ‘인지도가 있고 극을 끌고 가는 배우가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근데 내가 하게 된 거다. 조금 당황스럽더라. 그만큼 작품이 너무 좋았다. 사실 너무 하고 싶었다. 분석도 많이 하고, 고민도 많이 하고, 노력을 많이 했다. 결국 여기까지 온 게 정말 꿈같다. 전형적인 표현일 수도 있지만. ‘비현실적’이다”라고 답했다.

이중옥은 드라마 ‘마인’(2021)에서도 그렇고, ‘파로호’에서도 미스터리한 캐릭터를 맡았다. 자신만의 마스크 매력이 무엇인 것 같냐는 질문에 “내 입으로 말하기 그렇지만 살아가면서 풍파가 좀 있었다고 생각한다. 결핍도 있고. 그런 것들이 연기에 많은 영향이 있지 않았나 한다”고 쑥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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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옥은 이날 첫 상영된 ‘파로호’ GV(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해 ‘도우’를 연기할 때 개인적인 경험을 참고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머니의 부재가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26년만에 어머니를 만났다. 나름의 원망이나 미움같은 것들이 반대로 이용을 했다. 엄마를 챙겨주는 것들이 많이 나오는데 사실 그런 걸 해본 적이 없어서 조금 힘들었다”고 담담해했다.

‘파로호’는 이중옥, 강말금, 공민정 등 요즘 가장 바쁜 배우들의 출연에 대한 기대감 때문일까. 영화는 티켓 오픈 3분 만에 전 회차 매진됐다. 이에 그는 “전혀 몰랐다. 지금 기분이 너무 좋다. 저희끼리 이야기한 게 ‘누구라도 영화를 봐줬으면 좋겠다’였다. 그런데 이렇게 많이 보러 오셨다니 기분이 오묘하고 좋다”고 미소지었다. 그는 관객들이 ‘파로호’를 “재밌게 봤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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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옥은 ‘파로호’에서 드라마와 영화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연기파 배우 강말금, 공민정 등과 함께한 시간들도 회상했다. “인성이 너무 훌륭한 분들이라. 연기는 내가 지적할 것도 없고. 내가 다가가려고 많이 노력했다. 술 한잔이라도 기울이고 최대한 가깝게 지내려 했다. ”

또한 그는 “(tvN ‘방법’을 함께 출연한)조민수 선배님께 조언을 많이 구했다. 선배님이 ‘사람들한테 잘 해라’라고 조언해주셨다. 함께한 배우들이 너무 좋으신 분들이라 재밌게 잘 놀았다”고 만족해했다.

앞서 열린 GV 현장에서 호승 역을 맡은 김대건이 ‘파로호’ 현장이 즐거웠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그는 “합이 잘 맞았다. 쉬는 날엔 다같이 레일바이크도 같이 타러가고 동물원도 같이 갔다. 동생들이니까 또 잘 따라주더라. 연기 이야기를 하면서 가깝게 지냈다”고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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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작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나 작품으로 이중옥은 “모든 작품이 그렇긴 한데, 처음 매체 연기를 하게 되며 알려지게 된 계기가 영화 ‘마약왕’이다. 애착이 가장 크다. 나름 큰 역할이었다”고 꼽았다.

그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화 ‘박하사탕’, ‘밀양’, ‘시’, ‘버닝’ 등을 만든 거장 이창동 감독의 친조카다. 이 감독은 이중옥의 작은 아버지다.

이중옥은 “사실 (이창동 감독과)만나면 연기 이야기나 영화 이야기는 거의 안 한다. 아주 사적인, 다른 이야기를 한다”며 “영화계 거장이라고 직접적으로 내게 도움을 주시는 분이 절대 아니다. 나도 그걸 바라지도 않는다”고 조심스러워했다.

이어 “‘존재’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된다. 감독님 조카이기 때문에 행동도 조심스러워야 하고, 다른 배우들보다 나름 공부를 하게 되는 경우가 생겨서 좋다”고 덧붙였다.

전주국제영화제 참석한 배우 이중옥
전주국제영화제 참석한 ‘파로호’ 임상수 감독과 배우 이중옥. 연합뉴스

배우 공민정-김대건-김연교 \'영화제 나들이\'
전주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 선 ‘파로호’ 배우 공민정, 김대건, 김연교. 연합뉴스

22년 차 배우의 첫 연기 시작점은 무엇이었을까. “처음에 웹 디자인을 했다. 포스터도 만들고 잡지 같은 것도 만들고.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조금 더 공부를 하고 싶어 서울로 왔는데 잘 안 됐다. 반항 삼아 ‘연극을 하겠다’ 했다. 그런데 혼날 줄 알았는데 아주 쿨하게 ‘해라’ 라고 하셨다. 한달 뒤 첫 공연을 했는데 다들 내 말에 반응을 해주고, 감동도 해주며, 박수를 쳐주니까 그때부터는 이 맛에 들려서 지금까지 하게 됐다.”

이중옥은 오는 6월 MBC 예능 ‘악카펠라’의 첫 방송을 앞두고 있다. 이중옥과 ‘악카펠라’ 팀원들은 이번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 무대에 올라 축하공연도 선보였다. 그는 “사실 노래를 하면 안 되는 분들이 많다. 다들 잘 못한다”며 “노래 연습을 본업보다 많이 매달렸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다들 엄청 노력했다”고 말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어 “개막식 무대는 연극 무대에 처음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엄청 떨리고 흥분됐다. 2300명 앞에서 우리가 연기도 아니고 노래를 해야 하니까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런데 끝나고 무대에 내려오면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코로나 시기를 넘어 다시 사람들과 만나고 축제를 즐길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호응도 많이 해주셔서 기분 좋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마지막으로 배우로서 이중옥은 어떤 시기를 보내고 있을까. 그는 “식상하지 않는 연기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시기”라고 답했다.

한편 ‘파로호’는 오는 6월 개봉한다.

et16@sportsseoul.com

사진 | 지킴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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