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에서 반짝반짝 빙상 국대
축제는 끝났어도 감동은 여전하다. 태극전사들은 ‘빙상 강국’ 코리아의 위상을 한껏 보여줬다.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들. 위로부터 쇼트트랙 남자 1500m 금메달 황대헌, 쇼트트랙 여자 1500m 금메달·1000m 은메달 최민정,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은메달 차민규, 스피드스케이팅 매스스타트 남자부 은메달 정재원-동메달 이승훈,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500m 동메달 김민석, 쇼트트랙 남자 5000m 계주 은메달 곽윤기-박장혁-황대헌-이준서-김동욱,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은메달 최민정-김아랑-이유빈-서휘민. 베이징|연합뉴스

[스포츠서울 | 김경무전문기자] 지난 4일부터 지구촌을 뜨겁게 달궜던 ‘눈과 얼음의 축제’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이 20일 저녁 폐회식을 끝으로 17일 동안의 열전을 마무리했다.

대한민국 선수단은 빙상(스피드 및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에서만 금메달 2개, 은메달 5개, 동메달 2개(종합순위 14위)를 획득하는 등 빛나는 성과를 올렸다. 국민들에게 불굴의 투혼과 감동, 환희, 그리고 뜨거운 눈물까지 선사했던 태극전사들. 그들이 빙판 위에서 만들어낸 드라마는 팬들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듯 하다.

◇“세번의 좌절은 없다”...슐팅 잡고 ‘올림픽 2연패’ 최민정
여자 1000m 은메달 눈물흘리는 최민정
최민정이 지난 11일 쇼트트랙 여자 1000m 파이널A에서 은메달을 확정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수잔 슐팅(네덜란드)에 아쉽게 뒤졌으나 자신의 베이징동계올림픽 첫 메달이었기에 감정이 복받쳤다. 베이징|연합뉴스

결승선을 남기고 악착같이 따라붙었지만 수잔 슐팅(25·네덜란드)에 한끗이 모자랐다(여자 1000m 은메달). 여자 3000m 계주에서도 마지막 주자로 역주했으나 또한번 슐팅에 이어 2위로 골인. 그러나 굴하지 않았다. 쇼트트랙 종목 마지막 경기인 여자 1500m에서 초반부터 1위로 나서더니 기어코 슐팅의 거센 추격을 따돌리고 맨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며 환하게 웃었다.

시상대 높은 곳에 오른 최민정
최민정이 16일 여자 1500m 금메달 획득 뒤시상대에서 빙둔둔을 들고 웃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세계 최강의 쇼트트랙 스타 최민정(24·성남시청). 그는 경기 뒤 “간절하게 준비한 만큼 행복하다. 애국가를 외국에서 꼭 듣고 싶었다. 뿌듯하다”고 좋아했다. “‘쇼트트랙은 대한민국’이라는 말을 듣겠다”고 했던 최민정. 그가 여자 1500m 결승선을 1위로 통과해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하면서 터뜨린 웃음은 두고두고 팬들의 기억에 살아 있을 감동의 장면이다.

◇‘대인배’ 황대헌...조던 글귀 되새기면 남자 1500m 금
황대헌 태극기 휘날리며
황대헌이 지난 9일 쇼트트랙 남자 1500m 파이널A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태극기를 휘날리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남자 1000m 세미파이널 조 1위를 하고도 심판이 어이없는 실격 판정으로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NBA 레전드 마이클 조던의 “벽을 넘어서라” 라는 말을 되새기며 다시 칼날을 갈았다. 그리고 기어코 남자 1500m 파이널A에 올라 압도적 질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국민들은 그의 대범함에 박수를 보냈다.

황대헌의 막판 스퍼트
황대헌이 남자 1500m 파이널A에서 막판 스퍼트를 하고 있다.베이징|연합뉴스

황대헌(23·강원도청)은 4년 전 2018 평창동계올림픽 때는 남자 1500m 파이널A, 1000m 쿼터파이널에서 두 번씩이나 넘어져 메달을 따내지 못한 아픔이 있다. 남자 500m는 은메달. 마침내 1500m에서 첫 금메달을 차지한 황대헌은 “평창에서 겪은 두 번의 아픔이 있었기에 이번에 실격을 당한 뒤에도 마음을 잡을 수 있었다. 평창올림픽은 내가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고 말했다.

◇풍운아 박장혁 ‘11바늘’ 부상 투혼...남자계주 은 합작
넘어지는 박장혁
박장혁이 지난 7일 쇼트트랙 남자 1000m 쿼터파이널 1조 경기에서 뒤따라오던 우다징(중국)에 걸려 부상을 당하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박장혁(24·스포츠토토)은 남자 1000m 쿼터파이널에서 선전하고도 중국의 우다징의 스케이트날에 왼손을 크게 다쳤고, 병원에 실려갔다. 그는 왼 손등에 무려 11바늘을 꿰매는 와중에도 다음 경기 출전의지를 불태웠다. 그리고 남자 1500m에서는 황대헌·이준서와 함께 파이널A까지 진출했고 10명 중 아쉽게 7위로 마쳤다.

11바늘 꿰맨 박장혁
11바늘 꿰맨 박장혁의 완손. 쇼트트랙 대표팀 제공

남자 5000m 계주 파이널A에서는 1번 주자로 나서 한국팀의 12년 만의 메달(은) 합작에 기여했다. 금메달을 노렸으나 캐나다 선수들에게 다소 역부족이었다. 경기 뒤 박장혁은 “은메달은 값지지만, 1번 포지션에서 100% 역할을 못해 죄송하다”고 동료들에 죄송한 마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장혁의 불굴의 투혼은 분명 귀감이 될 만했다.

◇차민규 남자 500m 2연속 은메달...빙속 최고의 메달
차민규 빙속 남자 500m 역주
차민규가 지난 12일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경기에서 역주하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육상으로 치면 남자 100m에서 쟁쟁한 세계적 스타들을 제치고 은메달을 따낸 격이다. 그 주인공은 차민규(29·의정부시청)다. 그는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34초39의 빛나는 기록을 세우며 2018평창에 이어 값진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날 올림픽기록(34초32)을 세우며 금메달을 차지한 중국의 가오팅위(25)에 불과 0.07초 밖에 뒤지지 않았다.

이번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서 한국이 따낸 가장 값진 메달이라 할 수 있다. 차민규는 “아쉽지만 만족한다”고 했다. 그는 4년 전에도 당시 34초42의 올림픽 기록을 세워 금메달을 눈앞에 뒀지만, 뒤이어 뛴 노르웨이의 호바르 홀메피오르 로렌첸(34초41)이 기록을 깨면서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당시 불과 0.01초 차였다.

◇21살 정재원의 아름다운 ‘비상’...매스스타트 은메달
매스스타트 남자 은메달 정재원
정재원이 지난 19일 스피드스케이팅 매스스타트 남자부 은메달을 받은 뒤 박수를 치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4년 전에는 앳된 10대였다. 대선배가 금메달을 따내는 데 페이스메이커로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엔 그가 주연이었다. 스피드스케이팅 매스스타트 남자부 결승에서 값진 은메달을 따낸 정재원(21·의정부시청)은 “(이)승훈이 형과 함께 시상대에 올라 더 기쁘다”고 말했다.

정재원은 “이 종목의 레전드인 승훈이 형이 그동안 조언을 많이 해줬다. 그 덕에 매스스타트에 필요한 전략을 풍부하게 배울 수 있었다”며 대선배에게 공을 돌렸다. 아직 20대 초반인 정재원은 4년 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는 금메달 따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보름 ‘왕따 주행’ 논란 딛고 5위...“메달 못딴 지금이 더 행복”
더는 눈물은 없다 김보름
김보름이 19일 스피드스케이팅 매스스타트 여자부 결승에서 5위로 경기를 마친 뒤 전광판을 바라보며 아쉬워 하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4년 전 그를 지옥으로 빠뜨렸던 ‘왕따 주행’ 논란에서 벗어난 그는 경기 하루 전 밝게 웃으며 훈련에 임했다. 그리고 매스스타트 여자부 세미파이널을 가볍게 통과한 뒤 결승에 올랐다. 그러나 힘이 달려 5위로 아쉽게 마감했다. 김보름(29·강원도청) 이야기다.

김보름, 매스스타트 5위
김보름이 5위로 결승선을 지난 뒤 아쉬운 듯 링크를 돌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지옥같은 터널에서 벗어난 김보름은 “응원을 받는다는 것이 이런 기분이라는 것을 느낀 지금이 메달을 땄을 때보다 더 행복한 것 같다”고 울컥했다. 그는 “‘아무도 응원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이 들었다. 응원 한마디, 한마디가 힘이 됐다”고 했다. kkm100@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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