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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장강훈기자] ‘그놈의 정 때문에 그런다. 니가 그리도 잘난 거냐, 내가 지지리 못난 거냐. 나는 도대체 잊을 수가 없구나.’

가황(歌皇) 나훈아가 부른 ‘간다 이거지?’의 노랫말이다. 프리에이전트(FA) 협상 과정에 이견을 좁히지 못한 KIA와 양현종을 떠올리게 한다. 양측은 지난 14일 만남에서 계약에 도달하지 못했다. 계약기간이나 총액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보장액을 두고 자존심 싸움을 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다년 계약을 앞둔 선수는 당연히 안정을 원한다. 어차피 받을 돈이라면, 옵션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기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에 집중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그러나 구단 입장에서는 위험 부담을 줄여야 한다. 돈은 돈대로 쓰고 성과는 나지 않으면, 실패한 조직이다. 이미 실패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렀다. 체질개선과 쇄신을 요구하는 그룹 의중을 고려하면, 성과 중심의 경영을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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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양현종이 지난해 정규시즌 최종전 등판 후 팬들에게 잠시 이별을 고하며 인사하고 있다. 제공=KIA 타이거즈

다 떠나서, 실력만 놓고 보자. 2014년 시즌 16승(8패) 평균자책점(ERA) 4.25로 정상급 투수로 올라선 양현종은 2020년까지 연평균 180이닝 이상 투구하며 15승을 따냈다. 7시즌 동안 꾸준히 에이스 지위를 이어온 투수는 KBO리그에서 찾아볼 수 없다. KIA가 양현종에게 4년 총액 110억원 대 계약을 제시한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적어도 정규시즌 중에는 팀을 위해 헌신했고, 에이스의 무게감을 온몸으로 버티며 투수진 리더로 고생했다.

그런데 2020년 이후 성적으로 범위를 좁히면, 이른바 에이징 커브 우려가 싹튼다. 31차례 마운드에 올라 172.1이닝을 소화하며 건강을 증명했지만, 11승 10패 ERA 4.70으로 최근 7년간 가장 저조한 성적을 냈다. 불펜 난조, 수비실책 등으로 승리를 날린 경우도 많았지만 큰 것 한 방으로 흐름을 빼앗긴 경기도 있었다. 당시 선발 삼총사로 마운드를 지킨 애런 브룩스(11승 4패) 드류 가뇽(11승 8패)과 같은 승수를 따냈지만 특별히 더 많은 이닝(브룩스 23경기 151.1이닝, 가뇽 28경기 159.2이닝)을 던졌거나 더 낮은 ERA(브룩스 2.50, 가뇽 4.34)를 기록하지는 못했다. 당시 브룩스는 계약금 포함 35억원, 가뇽은 10억원(대체 외국인)을 받았다.

양현종
KIA 양현종이 2020년 8월 11일 잠실 LG전에서 강판하며 팬들을 올려보며 박수를 보내고 있다.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미국에서 성적은 더 참담하다. 메이저와 마이너리그를 통털어 22경기에서 80.1이닝을 던졌고, 승리없이 6패 ERA 5.60을 기록했다. 계약이 늦어져 준비과정이 급박했다는 점 등을 고려해도 시즌 후반기에는 적어도 한 번은 인상적인 활약을 했어야 했다. 냉정하게 보면 2연속시즌 ‘대투수’ 답지 않은 성적을 냈으니, 30대 중반으로 접어드는 나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충분히 쉬었기 때문에 몸상태에 자신있다는 게 양현종측 주장인데, 그래서 KIA가 제시한 ‘기본급보다 높은 옵션’은 양현종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보인다.

양현종은 어쨌든 KIA에는 상징적인 존재다. KIA가 별다른 내색 없이 “기다리겠다”며 자세를 낮추는 것도 양현종의 상징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에이스를 아끼는 팬들의 마음을 또 져버릴 수 없다는 시각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양현종도 다른 팀으로 떠나기에는 부담이 크다. 30대 중반으로 접어드는 투수에게 총액 100억원 이상 대형 계약을 제시한 사실이 알려졌으니 팬심이 싸늘하게 식을 수도 있다.

구단과 FA간 협상은 철저히 비지니스 마인드로 접근해야 한다. 프로는 실력이 돈이다. 양측 모두 정(情) 떼고 냉정함을 찾을 필요가 있다. 지금의 냉각기가 오히려 약이 될 수도 있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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