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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장강훈기자] “분투한 선수들의 노력과 팬들의 간절함을 퇴색시키지 말라.”

클린베이스볼 실현을 위해 야구팬이 발 벗고 나섰다. 이례적인 단체 행동인데, KBO리그를 향한 굵직한 메시지가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일명 ‘클린베이스볼을 지향하는 곰들의 모임’은 21일 한 통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요약하면 지난 7월 사상 초유의 리그 중단 사태가 한국야구위원회(KBO) 정지택 총재의 주도하에 특정구단의 이익을 위해 자행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데, 특혜를 받은 의심을 사고 있는 두산이 어떠한 입장 표명도 없이 침묵으로 일관해 팬이 직접 나선다는 얘기다. 정규시즌 막판부터 한국시리즈 진출까지 빼어난 경기력을 발휘한 선수단의 노력이 퇴색되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다.

[포토]우승팀 KT에 박수를 보내는 두산 선수단
두산 선수단이 18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1 KBO리그 두산과 KT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KT에 패한 뒤 우승을 차지한 KT 선수들을 향해 박수를 보내고 있다.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두산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면 팬들이 단체행동에 나섰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포스트시즌 일정이 단축되지 않았더라면 두산이 7연속시즌 한국시리즈 진출 대업을 달성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설득력이 있다. 이게 다 두산 선수들이 하필 가을에 야구를 잘했고, 이 과정에 하필 두산 구단주 대행 출신의 구단주가 리그 중단을 종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만일까.

팬들이 보낸 시위 문구를 보면, 공정과 투명성 담보를 향한 열망이 팀 성적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1등도 10등도 2군도 두산 베어스. 두산의 10번 타자들은 있는 그대로의 베어스를 원한다’는 외침은 프로야구를 소비하는 소비자의 눈높이를 대변하는 문구다. 돈없고, 야구 못하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해도 참을 수 있지만 불공정 게임에는 참을 수 없다는 게 소비자가 바라는 공정과 투명이다.

[포토]KBO 정지택 총재, \'한국시리즈 개막을 선언합니다!\'
KBO 정지택 총재가 14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1 KBO리그 KT와 두산의 한국시리즈 1차전에 앞서 한국시리즈 개막을 선언하고 있다.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물론 리그 중단을 총재가 두산의 이익을 위해 주도적으로 종용했다는 객관적인 증거는 없다. 일부 유출된 녹취록은 총재가 원활한 회의진행을 위해 ‘(2군선수를 동원해서라도)리그를 정상 진행하자는 안건은 제외하자’고 발언한 정도다. 수준 낮은 경기를 팬들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나름 합리적인 부연도 포함돼 있다. 그렇다더라도 안건 순서를 바꿔 상정한 것, 의사 진행을 중단쪽으로 몰아간 정황 등은 해석에 따라 총재가 리그 중단을 종용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전체 녹취록이 공개되지 않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보름 이상 판단을 내지 않고 있는 점 등은 향후 또다른 논란으로 번질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

어쨌든 팬은 분노했고, 단체행동으로 소비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나섰다. 한국시리즈가 막을 내린 지 사흘이 지났지만 KBO나 두산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납득할만한 설명이나 진정성 있는 사과가 있지 않으면 스토브리그는 불공정 리그에 대한 팬들의 분노로 점철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뿔난 팬들이 KBO 정관 제1조 ‘한국 야구 발전과 보급으로 국민 생활의 명랑화와 건전한 여가선용에 이바지하며, 야구를 통해 스포츠 진흥에 기여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책임 방기나 업무상 배임 여부를 따져 달라고 사법 당국을 찾아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팬들이 바라는 것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겨울마다 반복되는 부정적인 뉴스들은 리그 흥행에 악영향을 끼친다. 팬의 외면을 받는 프로리그는 프로의 가치를 상실하기 마련이다. 침묵이 때로는 독이된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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