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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장강훈기자] “마치 멜로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다.”

지난 14일 KT와 두산의 한국시리즈(KS) 1차전 9회초에 나온 장면을 본 한 야구 관계자의 해석이다. KT 3루수 황재균이 얕은 플라이를 잡으려다 타구가 조명탑에 들어가는 바람에 고개를 돌렸는데, 때마침 낙담한 두산 박세혁이 허탈이 더그아웃으로 몸을 돌린 찰나의 순간을 보고 “멜로 드라마 주인공 같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양팀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 장면으로, 이들을 어떤 프레임에 담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코멘터리’다.

[포토]조명 탓에 타구 놓치는 황재균
KT 3루수 황재균이 14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1 KBO리그 KT와 두산의 한국시리즈 1차전 8회초 1사 두산 박세혁의 내야 뜬공을 잡으려다 타구가 조명에 들어가면서 놓치고 있다. 고척 |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올해 KS에서는 황재균과 박세혁의 이별(?) 못지 않게 다양한 호수비가 야구팬의 눈을 즐겁게 했다. KS 1차전에서 두산 정수빈의 슈퍼캐치, 2차전에서 박경수의 다이빙캐치에 이은 세리머니 등은 프로야구가 콘텐츠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준 장면이다. 다이빙캐치 장면을 어떻게 편집하느냐에 따라 야구를 잘 모르는 새로운 팬을 유입할 수 있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플랫폼 삼아 10~15초짜리 짧은 동영상이 MZ세대에게 끼치는 파급력은 상상 이상이다.

아쉽게도 KBO리그는 정규시즌뿐만 아니라 포스트시즌에서도 이른바 ‘짤방’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메이저리그나 미국프로농구(NBA), 일본프로야구는 짤방을 통해 수많은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중계방송사, 언론사 등이 만들어낸 SNS용 짤방은 순식간에 전세계로 퍼져나갔고, 야구팬을 포함한 대중들의 손에 다양한 형태의 패러디로 재생산됐다. 일각에서는 스포츠를 지나치게 희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하지만, 팬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스포츠의 콘텐츠화는 지향해야 할 문화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접근해도 ‘서비스 산업’인 프로스포츠는 팬의 눈과 귀를 자극해 즐거움을 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

[포토]호수비로 병살 만들어낸 KT 2루수 박경수
KT 박경수가 15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1 KBO리그 KT와 두산의 한국시리즈 2차전 1회초 무사 1,2루 상황에서 두산 페르난데스의 타구를 호수비로 잡아 병살로 연결한 박경수가 유격수 심우준을 가리키고 있다. 고척 |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 2019년 유무선(뉴미디어) 중계권을 네이버, 카카오 등 양대 포털과 컨소시엄을 맺은 이동통신 3사(KT, LG U+, SK브로드밴드)에 내줬다. 5년 총액 1100억원(연평균 220억원) 수준으로 사상 최대규모였다. 뉴미디어 중계권료로 연평균 100억원이 채 안되는 액수를 받던 10개구단 입장에서는 매년 10억원 이상 추가 수익이 생기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KBO 내부에서는 유튜브를 포함한 SNS 플랫폼을 활용해야 신규 팬 유입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개진했지만, 실행위원회(단장회의) 이사회(사장회의)의 결정을 막을 힘이 없었다. 연평균 22억원의 뉴미디어 중계권 수익을 얻기 위해 화제성, 이슈몰이로 얻을 수 있는 팬의 관심을 놓친 꼴이다.

가을잔치 기간에 내용이 일부 유출돼 논란이 일고 있는 지난 7월 긴급 이사회 녹취록을 살펴보면, KBO 총재를 포함한 사장단 대다수는 야구발전에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수도권 A구단 대표는 “파트너사와 계약 내용이 144경기를 담보로 하고 있기 때문에 경기수만 담보되면 리그 중단이든 아니든 상관없다”고 강변했다. 이사회 흐름이 144경기 체제 고수쪽으로 흐르자 KBO 정지택 총재는 “그럼 144경기 진행에 초점을 맞추고, NC와 두산이 2군을 동원해서라도 경기를 치러야 한다는 안건은 4(찬성)대 6(반대) 다수결로 부결된 것으로 결론을 내리겠다”고 정리했다. 방역수칙 위반에 대한 시태의 심각성이나, 신뢰 잃은 팬에 대한 사과 등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포토]야구팬들을 향해 인사하는 정지택 총재
KBO 정지택 총재가 14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1 KBO리그 KT와 두산의 한국시리즈 1차전에 앞서 개막 선언을 위해 그라운드에 나온 뒤 관중을 향해 인사를 하고 있다.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야구 인기야 어떻게 되든 구단 수익은 담보돼야 하고, 팀 성적에도 피해를 입지 않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야구단을 운영하는 게 KBO리그의 현실이다. 일부 야구팬은 총재 사퇴를 촉구하는 문구가 담긴 트럭을 동원해 팬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시위 중이라고 한다. KBO와 10인의 이사들은 프로야구의 근간인 팬의 외침에 귀를 귀울여야 한다. 이들은 공정과 투명을 외치고 있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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