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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장강훈기자] 관건은 표결에 참여한 행위가 아닌 안건 상정 당시 분위기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사상 초유의 리그 중단 사태를 야기한 당사자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려면, 안건 상정 당시 분위기를 들여다봐야 한다. 앞 뒤 생략하고 ‘총재는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리그 중단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식의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또다른 짬짜미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와일드카트결정전 찾은 황희 문체부장관[포토]
문화체육관광부 황희 장관(왼쪽)이 지난 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KBO리그 포스트시즌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에서 KBO 정지택 총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강영조기자 kanjo@sportsseoul.com

KBO가 지난 5일 문화체육관광부에 이사회 녹취록을 제출했다. 리그 중단 결정을 내린 지난 7월 12일 긴급 이사회에서 어떤 절차로 의사 결정이 이뤄졌는지가 담긴 녹취록이다. KBO의 주장은 ‘리그 중단 결정 과정에 정지택 총재는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았다’이다. 한 온라인 매체가 이사회 안건을 담은 문서까지 공개하며 ‘정 총재가 두산의 이익을 위해 규약을 어기면서까지 리그를 중단했다’고 의혹을 제기하자, KBO는 이례적으로 반박문을 내며 ‘엄정 대응하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주무 기관인 문체부에 녹취록을 제출해 심판을 맡겼다. 이 역시 이례적인 조치로, KBO 출범 40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리그 중단은 총재 개인을 향한 공격이어서는 안된다. KBO리그는 10개구단이 함께 이끌고 있다. 규약과 규정 개정 등 KBO리그의 주요 의사 결정 과정은 실행위원회(단장회의)와 이사회를 통해 이뤄진다. KBO 총재는 이사회 의장으로 사실상 사회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의결권이 있지만, 11분의 1일뿐이라, 크게 영향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더구나 이사회 의결 사항은 ‘만장일치’가 관례처럼 굳어졌다. 총재의 의지에 사장단이 휘둘리는 시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포토] 정지택 KBO 신임 총재 취임
KBO 정지택 총재 취임식에 참석한 각 구단 대표이사.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그런데 유독 리그 중단을 두고는 뒷말이 많았다. 리그 중단 결정을 한 7월 12일을 기준으로 팀 순위를 살펴보면 KT가 2경기 차 단독 선두를, LG와 삼성이 승차없는 2, 3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 뒤를 1.5경기 차로 SSG(승률 0.538)가 따랐고, NC(0.514·6위) 키움(0.513·7위)이 5위 싸움 중이었다. 두산은 승률 0.480으로 7위로, 4위와는 3.5경기 차였다. 리그 중단을 두고 각 구단이 계산기를 두드릴 만한 순위싸움이었다.

실행위원회에서 리그 중단 가능성이 불거졌기 때문에 KBO도 세 가지 안을 갖고 이사회를 개최했다. 안건 상정을 하면 통상 사회자도 의견을 개진하게 된다. 이 때 정 총재의 뉘앙스에 따라 이른바 ‘중립 노선’을 타고 있던 팀을 움직였을 가능성이 있다. 총재가 한 장의 의결권을 갖고 있다더라도, 재계 원로라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만약 ‘리그 중단이 확산하는 코로나 기세와 올림픽 준비 등을 고려해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면, 표결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도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문체부가 풀어야 할 핵심 포인트는 ‘총재의 표결 행위’가 아닌 ‘리그 중단 도출 과정상 발언’이어야 하는 이유다. 더불어 ‘리그 중단 결정 사유’도 함께 공개해야 한다.

[포토]100% 관중 입장 허용된 KBO리그 포스트시즌
관중석을 가득 채운 야구팬.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리얼미터가 최근 전국 성인 500명에게 받은 ‘2021시즌 KBO리그 기억에 남는 순간’ 설문조사에서 방역규칙 위반 음주 사태로 인한 KBO리그 중단이 1위(29.5%)였다. 2위에 오른 ‘도쿄올림픽 메달 획득 실패’(18.3%)까지 합치면 절반에 가까운 47.8%가 부정적인 뉴스로 장식했다. 팬 없는 프로스포츠는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 KBO가 이례적으로 녹취록까지 공개해 리그 중단 책임에서 면죄부를 받기를 원한다면, 리그 파행을 야기한 책임자를 반드시 가려내 책임을 물어야 한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담보해야 KBO리그가 잃었던 신뢰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체부의 역할이 작지 않은 이유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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