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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윤이 지난달 31일 수원시 권선구에 있는 프리즈프레임 스튜디오에서 화보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글·사진 | 이주상기자] “사회에 나오지 않으려는 장애인에게 힘을 주기 위해 피트니스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죠.”

김나윤(29)은 3년 전 까지만 해도 유능한 헤어디자이너였다. 뛰어난 실력은 물론 예쁘고 상냥해 인기 만점이었다. 주말 없이 일할 정도로 고객들의 요청이 쇄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심하고 회사에 하루 휴가를 내고 친구들과 춘천으로 놀러 갔다. 7월의 뜨거운 햇살을 벗 삼아 춘천 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차가 코너 길에서 균형을 잃으며 전복됐고 김나윤은 그대로 기절했다. 한쪽 팔이 절단되는 큰 사고를 당한 것이다.

구급차로 춘천에 있는 춘천 한림대학병원에 후송됐지만, 상처가 위중해 헬리콥터로 서울 송파구의 한 병원에서 접합수술을 했다. 하지만 수술 부위의 패혈증세가 심해 결국 절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의사의 ‘살기 위해서는 팔을 절단해야 한다’라는 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재수술 후 수많은 시간을 어둠 속에서 보냈다. 하지만 꽃 같은 청춘을 눈물 속에서 보낼 수만은 없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피트니스였다.

김나윤은 “다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재활에 가장 좋은 것이 피트니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건강을 되찾으면서 마음의 안정도 찾았고 자신감도 생겼다. 사회에는 나처럼 많은 장애인이 있다. 좀처럼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는 장애인들을 위해 대회에 출전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김나윤은 내년에 중앙대학교 체육학과에 진학한다. 살아남기 위해 배운 재활이 전공이 됐기 때문이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 찬란한 문을 활짝 열어젖힌 김나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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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윤이 지난달 31일 수원시 권선구에 있는 프리즈프레임 스튜디오에서 화보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 왼팔이 절단된 경위는?

3년 전에 춘천으로 놀러 가다가 차가 코너 길에서 미끄러졌다. 넘어져서 일어나려고 했었는데 몸이 일어나지지 않았다. 7월 중순이라 너무 더웠고 강한 햇빛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잠시 누워있었는데 친구가 오더니 ‘팔이 없다’라며 꺽꺽 울었다. 왼쪽 어깨가 아프긴 했지만 큰 느낌이 없었는데 친구 말을 듣고 움직이려고 했는데 정말 안 움직여졌다. 친구가 환부를 지혈한다고 누르고 있었는데 나는 팔을 찾아 달라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무섭긴 했지만, 비현실적이라 믿기지 않았다. 얼마 후 친구가 팔을 찾아와서 그때부터 실감이 났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울면 정신을 잃을 것 같아서 정말 꾹 참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사람이 살려고 하면 초인적인 힘이 나온다고 하는데 그때였다.

- 접합수술 후 왼팔을 잃었다.

접합수술을 마치고 몸에 계속 열이 있었다. 대수술로 마취 주사를 많이 맞아서 항상 몽롱했다. 경추부터 흉추까지 19군데에 골절이 있었기 때문에 허리 수술도 함께 했다. 허리 수술을 하는 날에 갑자기 39도까지 열이 올랐다. 그날 패혈증이 있어서 의사가 나에게 ‘죽는 것보다 팔을 절단하는 게 좋겠다’라고 했다. 이해는 되지만 내 입에서 쉽게 ‘네, 맞아요. 수술해주세요’라는 말이 나올 수 없었다. 하지만 의사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대신 바로 마취해달라고 했다. 왜냐하면 시간이 길어지면 여러 생각을 할 것 같아서였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고 거짓말처럼 절단 후에 몸 상태가 좋아졌다.

- 장애를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수술 후 처음 샤워할 때 내 몸을 거울로 비춰본 그 날이 잊히지 않는다. 병원에서 수술도 많이 했고 다리 근력도 없어서 거울을 볼 시간이 없었는데 그날은 수술 부위만 물에 닿지 않으면 된다고 해서 샤워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이상하고 기괴했다. 당연히 좌절했다. 하지만 장애를 받아드리려고 큰 노력을 했다. 많은 방법을 찾다 재활에 피트니스가 최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게 운동을 시작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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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윤이 지난달 31일 수원시 권선구에 있는 프리즈프레임 스튜디오에서 화보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 지난 9월에 열린 ‘WBC 피트니스 대회’를 휩쓸었다.

WBC 피트니스 장애인 부문 챔피언을 비롯해 비키니 쇼트 체급 1위, 미즈비키니 톨 체급 1위를 했다. 가장 큰 상인 오버롤(그랑프리)도 차지했다. 재활을 위해 쏟은 시간에 대합 보답 같아 너무 행복했다.

- 피트니스대회에 출전한 계기는?

단순히 상을 타기 위해 출전한 것은 아니다. 나처럼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싶어서였다. 많은 장애인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기피하고 있다. 처음엔 나도 그랬다. 그런 분들에게 사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출전했다. 꼭 피트니스 대회가 아니더라도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 장애를 알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다. 장애는 부끄러운 게 아니다. 장애인도 사회의 구성원이다. 사회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울러 많은 사람에게 장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싶어서 출전했다.

- 피트니스모델로서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 궁금하다.

외면뿐만 아니라 내면도 멋있고 아름다운 모델이 되고 싶다.

- 운동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충분한 휴식이라고 생각한다. 운동법과 식단관리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휴식이다. 휴식은 육체와 정신을 맑게 해주는 필수요소다. 육체와 정신이 맑아야 에너지를 올바르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 올해 계획은?

이번 연도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대조적인 계획이 있다. 첫째는 내년에 체육학과에 진학하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하기 위해 궁둥이 붙이고 앉아있는 연습하기다. 둘째는 내년엔 바쁠 것 같으니 올해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노는 것이다. (웃음)

- 삶의 모토는?

요새 나의 모토는 ‘놓치고 후회하지 않기’다. 지나가 버린 것을 후회한들 돌릴 수 없어서 현재에 온 정성을 다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때 할걸’, ‘저거 해볼걸’ 등 여러 후회를 하지 않도록 무엇이든 도전하려고 한다.

- 방송활동 계획은?

장애가 있고 난 뒤 나와 같은 장애인이 희망을 버리지 않았으면, 비장애인이 감사함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 개인 SNS에 글을 많이 올려놓았는데, 감사하게도 방송국에서 출연 제의가 들어와 몇몇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확실히 개인 SNS보다는 TV를 통해 보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다. 앞으로 나의 장점을 살려 유튜브나 TV 출연 등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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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윤이 지난달 31일 수원시 권선구에 있는 프리즈프레임 스튜디오에서 화보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이주상기자 rainbow@sportsseoul.com

rainbow@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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