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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배우근기자]아뿔사~ 호잉(KT)이 평범한 외야타구를 놓쳤다. 정규시즌 1위 결정전(10/31)에서 나온 실책이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지만 달구벌의 태양에 아차했다.
다행히 오재일(삼성)이 2루까지 달리다 아웃됐고, 호잉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한국시리즈 못지 않은 중요한 경기였는데, 하마터면 자신의 수비 실책 하나로 역전주자까지 내보낼 뻔 했다.
호잉 뿐 아니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의 양팀 야수들은 태양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수비했다. 반면 외야를 제외한 관중은 그늘에서 경기를 관전했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푸른빛의 대구라이온즈파크는 전체적으로 보기 좋았다. 이전 왕조시절 대구시민구장의 흑역사를 말끔히 털어낼 정도였다. 이전 시민구장은 붕괴의 위험 때문에 선수들이 오가는 통로에 철제빔을 설치해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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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전이 열리는 라이온즈파크의 자태를 보며 격세지감을 느꼈는데, 호감이 간 부분은 따로 있다. 관중은 태양을 등지고 관전했고, 투수를 포함한 수비수는 태양을 마주하고 플레이했다. 이런 구장에선 좌완투수가 사우스포(South paw)가 된다. 공을 던지는 왼손이 남쪽(1루측)에서 나오기 때문에 사우스포라고 부른다. 19세기 후반 시카고 뉴스의 기자인 피터 댄, 또는 헤럴드의 찰스 시모어가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미국의 야구장은 시카고 구장 뿐 아니라 대부분 홈베이스가 서쪽 또는 서남쪽에 위치한다. 야구장을 그렇게 지은 이유가 있다. 조명시설이 없던 시절 야구경기는 주로 오후에 열렸는데, 경기가 진행될수록 해가 홈베이스 뒤쪽으로 넘어간다. 그러면 관중은 햇빛을 피하며 경기를 관전할 수 있다. 대신 수비하는 선수들이 해를 바라보고 경기했다. 선수보다 관중위주로 야구장이 세워졌다.
오래된 구장 뿐 아니라 2000년에 개장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AT&T 파크, 2009년에 개장한 뉴욕 양키스의 양키스타디움도 마찬가지 방위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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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국내구장은 홈베이스가 서쪽이 아닌 북쪽에 자리잡는다. 외야가 남쪽으로 열려있다. 잠실, 문학, 사직, 대전, 수원, 마산, 포항, 제주오라 구장의 방위가 그렇다. 앞서 열거한 구장에서 왼손투수가 투구하면 사우스포가 아니라 웨스트포가 된다.
KBO가 펴낸 ‘야구장 건립 매뉴얼’을 보면 ‘햇빛의 방향을 고려해야 하고 레프트 파울라인이 정북을 향하는게 이상적이고 그렇지 못할 경우 동쪽을 향하는 것도 괜찮다’고 되어 있다. 그렇게 지으면 사우스포가 나온다. 그럼에도 국내구장의 방위는 야구장 건립 메뉴얼과 다르다. 풍수지리(?)에 따라 남향집으로 지었나 싶기도 하다.
북반구 한국에서 집은 남향이 좋지만, 야구장은 불편하다.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관중은 광합성을 계속 해야 한다. 더 이상한 방위의 구장도 있다. 대구시민구장과 서울 목동구장인데, 이곳에선 투수가 북에서 남쪽을 바라보고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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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도 곤혹스럽다. 동쪽의 1루측 관중은 해가 질 때까지 햇볕에 시달리며 야구를 봐야 한다. 과거 삼성, 넥센이 더그아웃을 일반적인 1루가 아닌 3루쪽에 잡은 이유가 해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야구는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주요 자산이다. 이왕 지으려면 제대로 잘 지어야 한다. 방향도 잘 잡아야 한다. 다행히 라이온즈파크는 건립 메뉴얼을 충실히 따랐다.
삼성이 비록 1위 결정전에서 KT에 패했지만, 홈구장 경기가 아직 남아있다. 오는 9일 플레이오프 1차전을 홈구장에서 치르게 된다. 그날 사우스포의 등장을 기대해 본다. 국내에 사우스포를 볼 수 있는 관중 친화적인 구장은 라이온즈 파크와 광주 챔피언스 필드가 있다.
그나저나 호잉은 미국출신이다. 그곳 야구장에선 대개 선수가 태양을 마주하고 경기한다. 가장 햇발에 익숙한 선수가 미국식으로 지은 야구장에서 실수를 하다니, 그것도 아이러니다.
kenn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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