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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도쿄=배우근기자] 격리 2일째. 코로나19에 감염된 임산부 뉴스가 계속 흘러나온다. 임신 29주차 30대 여성이 병원을 헤매다 받아주는 곳이 없어 집에서 출산했고, 아이는 결국 숨졌다는 내용이다. 관련 후속보도와 전문가 인터뷰가 이어진다.
일본에선 현재 코로나19가 폭발하고 있다. 아이를 잃은 안타까운 산모의 사례처럼 일본의 의료시스템은 한계에 봉착했다. TV뉴스에서 병상부족으로 재택요양중인 중증의 코로나19 환자를 방문 치료하는 의료진의 모습도 보여준다.
하지만 일본내 확진자가 2만 5000명을 넘고 재택중인 중증환자수가 2000여명에 달한다는 자막이 불안한 의료 현실을 더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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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전 2020도쿄패럴림픽 취재를 위해 일본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을 때, 그리고 현지 숙소에 도착한 뒤, 일본 방역시스템의 허술함부터 눈에 들어왔다. 전세계에서 종이서류가 가장 넘쳐나는 나라답게 효과보다 형식이 우선했다. 쓸데 없는데 에너지를 소비하는 모습이었다.
첫 인상인 공항내 검역시스템부터 비효율적이었다. 사실 일본땅을 밟으며 마음의 준비는 해둔 상태였다. 패럴림픽에 앞서 올림픽에 참가한 취재진으로부터 익히 악명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리타 공항을 빠져나오는데만 7시간 이상 걸렸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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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15분 인천공항에서 날아오른 비행기는 오후 1시 40분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 패럴림픽 선수단과 취재진은 비행기에서 내린 뒤, 안내에 따라 두 줄로 길게 늘어뜨린 철제 의자에 차례대로 앉았다. 의자간 거리는 약 1미터. 우리 앞에 어림잡아 200여명 정도가 이미 앉아 있었다. 일어서서 봐도 끝이 안보였다. 들은대로 7시간은 걸리겠구나 싶었다.
우선 화장실에 가서 몸을 가볍게 했다. 돌아와 창문 밖을 내다보며 조바심도 내려놓았다. 활주로 위로 펼쳐진 하늘은 푸르고 흰구름도 뭉게뭉게 피어 올라있었다. 3시간 전 인천에서 본 하늘과 다를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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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유승민 IOC 선수위원처럼 되는건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스친다. 유 위원은 지난 17일 나리타 공항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일본에서 14일간 자가격리됐다.
그러나 올림픽 선수단에서 코로나19 양성반응은 유 위원이 유일했다. 일본 입국을 위해선 96시간전, 그리고 72시간 전 두차례에 걸쳐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백신 접종도 필수다. 그만큼 공항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을 가능성은 지극히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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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제 의자에 착석한지 1시간 쯤 지나자 앞 열의 사람들이 확 빠졌다. 생각보다 진행속도가 빨랐다. 일본내 방역 애플리케이션인 오차(OCHA)를 활성화 한 우리를 기다린 건 타액검사였다. 신원을 확인하고 손가락 크기만한 용기를 내주며 침을 담으라고 했다. 약 1.5㎝ 정도를 채워야 했다. 두세번 침을 뱉으니 금세 찼다.
이게 끝인가 싶었는데 다시 자리를 옮겨 대기가 시작됐다. 역시 금방 끝나는게 아니었다. 이동중에 거리두기는 없었고 이번에 안내받은 곳은 공항 라운지로 쓰던 곳이었다. 쿠션 좋은 의자에 숫자가 붙어있다. 타액검사 후 받은 내 번호는 150번. 그 자리에 앉으니 도열해있는 ANA(All Nippon Airways) 비행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끔 다른 비행기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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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기다리는 사이, 대한장애인체육회 관계자가 대기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취재진의 프레스 카드를 직접 수령해 나눠줬다. 1시간 반 정도 지나자, 일본 조직위 관계자가 한국취재단 전원 코로나19 음성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알려줬다. 나리타 공항에 도착한지 3시간만이었다. 이전 올림픽 취재진에 비하면 소요시간이 절반도 안 걸린 것. 가벼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이제 수화물을 찾으러 가면 된다. 그런데 좀 전에 우리의 신원을 확인한 관계자가 또 신원을 확인한다. ‘어라. 왜 또 하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침 뱉을때부터 신원검사만 서너번 한거 같다. 그것도 한두명이 수십명을 확인하느라 시간이 늘어진다. 결국 1시간이 더 걸려 공항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곳에 원스톱 서비스 개념은 없다. 한국같으면 첫 착석한 곳에서 이동없이 신원조회, 타액검사, 프레스카드 발급 등을 전부 처리하지 않았을까 싶다. 한국이 복잡한걸 단순화 하는데 뛰어나다면 ‘일본은 단순한걸 복잡하게 한다’는 우스갯 소리가 맞는거 같기도 하다. 산업화 시대엔 분업화 된 자리에서 완벽을 추구하는 일본시스템이 효율적이다. 그러나 유연성과 창의성이 필요한 오늘날엔 적합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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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비효율적 형식미는 공항을 떠난 다음에 더 확연하게 드러났다. 우리는 TM(미디어버스)을 타고 도쿄 시내로 향했다. 빈자리가 거의 없을만큼 취재진을 가득 태운 버스가 향한 곳은 대중교통 환승터미널이었다. 그곳에서 취재진은 1명씩 전용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하게 된다.
그런데 한국 취재진이 패럴림픽 기간에 머무는 숙소는 같은 호텔이다. 자연스럽게 이 버스로 숙소까지 가자는 얘기가 나왔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버스는 50분을 달려 환승터미널 3층에 도착했다.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오후 6시 40분. 우리는 금방 택시를 탈 거라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일렬로 죽 늘어선 우리는 다시 한명씩 신분 확인을 했고 엘리베이터를 통해 1층 택시 탑승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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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점은 취재진 수십명을 버스 한 대에 태워 여기까지 왔는데, 택시 탑승장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엔 1명씩만 태워 내려보내는게 아닌가. 코로나19 감염 방지를 위한 프로토콜인건 알겠는데, 이건 앞뒤가 맞지 않아 헛웃음이 나왔다. 게다가 한국 취재진은 불과 1시간 전에 전원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았다.
어느새 하늘은 거뭇해졌고 우린 오후 8시쯤 일본 도쿄의 숙소에 마침내 도착할 수 있었다. 그나마 마지막으로 탄 1인 1택시는 편했다. 하지만 백발의 운전기사가 간간이 기침을 했는데, 그가 코로나19 검사를 했는지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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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격리는 다음날부터 시작됐다. 입국일은 ‘0’으로 간주하기에 실제론 4일 격리다. 그런데 격리중이라 외부출입이 힘들줄 알았는데 호텔로비에 있는 기록지에 방번호와 출발시간을 적으면 그때부터 1시간 외출이 가능했다. 올림픽 당시 15분 외출에 비해 4배가 시간이 늘었다.
특이한 건 보안요원이 제대로 확인하지 않을 뿐더러, 1시간 외출이 무제한이라는 점이다. 식료품을 사러 다녀온 뒤, 다시 기록지를 작성하면 또 1시간 동안 마트나 편의점에 다녀올 수 있다. 즉 1시간마다 기록지에 쓰기만 하면 하루종일 왔다갔다가 가능하다.
잠시 혼란이 왔지만, 형식미 가득한 방역시스템이 허술하다는 걱정과 일본이 이전에 알던 일본은 아닌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어느 시점부터 정체된 일본의 한 단면을 본 것 같다.
kenny@sportsseoul.com 사진제공|대한장애인체육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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