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희
롯데 자이언츠 한동희가 9일 창원 NC전에서 타격하고있다. (스포츠서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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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롯데가 허문회 감독을 경질한 것은 마냥 ‘윈 나우’를 지향할 때가 아니라는 의지 표현이다. 후임으로 래리 서튼 퓨처스 감독을 1군 사령탑에 앉힌 것도 궤를 같이한다. 서튼 감독은 성민규 단장이 2019년 겨울부터 감독 후보군으로 접촉해 심층 인터뷰를 했던 인물이다. 처음부터 롯데의 방향성은 윈 나우가 아닌 육성에 기반한 색깔 만들기였다.

성 단장이 취임 초기 강조한 ‘리모델링’이나 서튼 감독이 1군 취임 첫날 강조한 ‘리스타트’는 지향점이 같다. 애초 구단 방향성이 리모델링이었으니, 계약한 432경기(3년) 중 174경기(40%)를 치른 상황이지만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다. 재건과 개보수 혹은 증축은 기본 골격을 남겨두느냐 여부가 핵심이다. 경쟁력 있는 베테랑이 많은 팀이기 때문에 한화처럼 재창단 수준의 재건을 하기 어려운 현실도 있다. 구도(球都) 부산의 자존심이라는 상징성도 롯데가 포기할 수 없는 기본 골격이다. 열정적이고 화끈한 성향인 부산 시민들의 헤리티지를 ‘팀 자이언츠’로 구현해내는 것이 리모델링의 근간이다.

[포토] 롯데 허문회 감독, 씁쓸한 퇴장...
롯데 자이언츠 허문회 감독이 9일 창원 NC전에서 4-2로 앞선 9회 박민우의 2루타 판정에 대한 비디오 판독 결과 이후 심판진에 항의해 퇴장 당하고있다. (스포츠서울DB)

롯데는 전성기를 구가하던 1990년대 ‘소총부대’로 통했다. 전준호 김응국 박정태 이종운 등 젊고 빠른 선수들이 그라운드를 활보하면 윤학길 박동희 염종석 주형광 등 투수들이 상대 타선을 봉쇄하는 전략으로 구도의 팬심을 사로잡았다. 걸출한 홈런 타자는 없었지만, 끈끈함과 몸을 사리지 않는 근성 등 롯데만의 색깔로 1990년대를 풍미했다.

이후 롯데는 ‘대포만 추가하면 장기집권이 가능하다’는 욕심이 생겨 이도저도 아닌 팀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마해영, 호세 펠릭스, 이대호 등이 중심 타선에 포진했지만 전준호 김응국 같은 대도와 교타자 육성에는 사실상 실패했다. 마운드도 기존 선수들이 부상과 노쇠화로 기량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 대체자원 찾기에 실패해 이른바 암흑기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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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래리 서튼 신임 감독 | 롯데 자이언츠 제공

제리 로이스터 감독에 대한 롯데 팬들의 환희가 남아있는 것은 1980~90년대 롯데 팀 색깔에 카림 가르시아-이대호-홍성흔-강민호 등으로 이어지는 중장거리 타자들이 조화를 이뤄 재미있는 야구를 했기 때문이다. 손아섭 전준우 등 당시로는 신인급 선수들이 기동력과 악바리 근성으로 공격 선봉에 나서면, 가르시아와 이대호 등 중심 타선이 2루타 이상 장타로 불러들이는 다이내믹한 야구를 했다.

사직구장을 전세계에서 가장 큰 노래방으로 탈바꿈시킨 것도 따지고 보면 롯데 특유의 다이내믹한 플레이 스타일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3연속시즌 포스트시즌 진출은 롯데가 가야할 방향성과 가져야 할 색깔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포토] 롯데 김준태의 홈런포, 따라붙는다!
롯데 자이언츠 김준태가 4일 인천SSG랜더스필드에서 진행된 SSG와의 경기에서 1-3으로 뒤진 5회 솔로 홈런을 쳐내고있다. (스포츠서울 DB)

서튼 감독의 지향점도 이 부분과 닿아있어야 한다. 지속적으로 젊은 선수를 기용하고, 몸을 사리지 않는 수비, 주눅들지 않는 투구로 청량감을 주는 야구를 해야 한다. 노련함만으로 풀어내기 쉽지 않은 숙제다. 빠른 야구는 ‘홈런의 시대’에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

롯데에는 빠른 야구를 할 수 있는 젊은 후보들이 많다. 올해 시범경기에서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젊은 백업들이 1군에서 부딪히고 넘어지며 주전으로 도약할 시간이 필요하다. 허문회 감독이 경질된 진짜 이유도 활어처럼 파닥거리는 젊은 선수를 등한시한 게 결정적이었다. ‘로이스터 감독의 유물’이 여전히 굳건히 주전 자리를 꿰차고 있으니 이들이 중심을 잡고 있을 때 육성을 해야만 한다. 물론 후보가 주전으로 당선할 확률은 10% 미만이기는 하다.

야구단을 대하는 롯데 그룹의 인내심이 매우 약하다는 인상이 짙다. 리모델링이든 리스타트든 궤도에 오를 때까지는 지속적인 투자와 인내가 필요하다. 야구단을 통한 유통전쟁을 선포한 SSG 정용진 구단주의 도발 수위를 고려할 때 과연 그룹이 구단이 정한 방향을 실현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롯데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은 1992년이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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