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쌈

[스포츠서울 정하은기자]안방에 다시 사극 열풍이 불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극은 방송 업계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장르였다. 역사 고증부터 세트, 의상, 장소 등 막대한 제작비와 사극 특성상 PPL이 어렵다는 점 등으로 제작환경이 악화하면서 차츰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러나 진부한 청춘 로맨스물과 반복되는 장르물들 속에서 시청률 부진을 맴돌던 방송사들은, 사극 열풍의 도화선이 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의 흥행 이후 다양한 소재의 사극들을 연달아 내놓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열풍은 올초부터 시작해 10% 높은 시청률로 종영한 tvN ‘철인왕후’와 KBS2 ‘암행어사 : 조선비밀수사단’, ‘달이 뜨는 강’을 통해 방증 되기도 했다.

눈에 띄는 점은 한동안 외면받던 대하사극들 역시 부활하고 있다는 점이다. KBS는 ‘장영실’ 이후 5년 만에 조선 태종 시기를 배경으로 한 32부작 대하사극을 선보인다. 이는 최근 대하사극에 대한 시청자의 요구가 다시 생기기 시작했다는 점과 동시에 KBS도 수신료 인상을 주장하면서 공영방송의 역할을 강화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기 때문. 이에대해 한 관계자는 “공영방송인 KBS가 대규모 정통 사극을 통해 수신료 가치를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에 대하사극의 부활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장영실
장영실 제공 | KBS

IHQ와 드라마 제작사 빅토리콘텐츠도 100부작 대하사극 ‘조선왕비열전’(가제)을 제작한다. 사랑과 치정을 아우르던 조선 왕비들의 일대기를 그린다. 최근 KBS가 연말 조선 태종 시대를 배경으로 한 대하사극을 선보이겠다고 공표한 데 이어 ‘조선왕비열전’ 제작 소식까지 알려지면서 다시 안방극장에 대하사극 전성시대가 도래할지 관심을 끈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전세계적인 K-콘텐츠 붐과 더불어 보기 힘들어진 대하사극에 대한 시청자들의 갈증이 다시 대하사극 제작에 물꼬를 트게 했다”며 “다만 막대한 제작비가 필요한 대하사극의 편수가 앞으로 늘어날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대하사극 외에도 올 한해는 퓨전 사극의 황금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작품들이 시청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생계형 보쌈꾼이 실수로 옹주를 보쌈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MBN ‘보쌈-운명을 훔치다’가 방영을 시작했고, 조선시대 유일한 여화공 홍천기의 이야기를 그린 SBS ‘홍천기’, ‘남장여자’ 왕을 다룬 KBS2 ‘연모’, 정조대왕의 못다한 로맨스로 그린 MBC ‘옷소매 붉은 끝동’, 암행어사와 기별부인을 소재로 한 tvN ‘어사조이뎐’, 조선 역사상 가장 강력한 금주령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로맨스 사극 KBS2 ‘꽃 피면 달 생각하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 시즌3 등이 준비 중이다.

조선구마사

사극을 하지 않는 방송사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극이 올해 공개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업계에선 오랜만에 다시 찾아온 사극 전성기에 기쁜 마음보단 우려 섞인 시선이 더 많다. 최근 일부 작품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중국 동북공정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난을 사며 큰 파장을 일으켰기 때문. ‘달이 뜨는 강’은 한자 고증 문제로 구설에 올랐고, 박계옥 작가는 ‘철인왕후’에 이어 300억 대작 SBS ‘조선구마사’까지 역사왜곡 논란이 일며 거센 항의를 받아, ‘조선구마사’는 단 2회 만에 막을 내리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과거 퓨전사극들에선 ‘픽션’이란 명목하에 인물과 사건의 각색이 자유로운 분위기였던 반면, 최근 잇따른 ‘고증 오류’ 문제로 인해 업계에선 실존인물과 역사적 배경에 대한 철저한 고증이 필수적임을 인지하고 이전보다 훨씬 조심스럽고 세심한 태도로 접근하고 있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앞선 선례들로 인해 방송을 앞둔 사극들은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실존 인물에 허구적 상상력을 더하는게 일반적이나, 역사 고증에 대한 이슈가 대두되면서 차라리 완전한 허구의 인물로 바꿔야 하는거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획사 관계자는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극을 이끌어가는 배우에게도 자신의 출연작이 역사 왜곡 논란은 겪는다면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미지 타격 역시 불가피하다”며 “이미 출연을 확정 짓고 촬영에 임하고 있는 배우들 역시 역사의 중요성과 무게에 대해 인지하며 촬영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jayee212@sportsseoul.com

사진 | KBS, SBS, M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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