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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양현종이 27일(한국시간) 글로브라이프필드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LA 에인절스와 홈경기에 구원등판 해 역투하고 있다. 알링턴(미 텍사스주) | AFP연합뉴스

[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내가 어떤 투수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대투수’ 양현종(33·텍사스)이 인고의 시간을 버텨내고 24번째 한국인 메이저리거로 우뚝 섰다. 첫 발을 내디딘 만큼 남은 과제는 연착륙이다.

양현종은 27일(한국시간) 글로브라이프필드에서 열린 LA 에인절스와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홈경기에 구원투수로 빅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이날 오후 2시께 빅리그 승격을 통보 받은 양현종은 유니폼 넘버 36번을 달고 4-7로 뒤진 3회초 2사 2, 3루 위기에서 마운드에 올라 ‘대투수’의 진면목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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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양현종이 27일(한국시간) 글로브라이프필드에서 열린 LA에인절스와 홈경기를 통해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르고 있다. 알링턴(미 텍사스주) | USA투데이 연합뉴스

상대 4번타자 앤서니 랜던을 첫 타자로 맞이한 양현종은 2루수 플라이로 위기를 넘겨 홈 팬들의 박수를 받았다. 4회부터는 경기 흐름을 완벽히 자신의 페이스로 끌고 왔다. 재러드 월시의 직선타를 직접 잡아냈고, 알버트 푸홀스의 큼지막한 타구를 중견수 아돌리스 가르시아가 펜스에 부딪히며 잡아내는 등 야수들의 도움도 받았다. 양현종은 경기 후 4회초에 벌어진 두 가지 상황에 관한 질문을 받았는데 “수비는 내가 더 잘한 것 같다. 내 공이 빠르지 않기 때문에 수비로 전환할 시간이 충분했다”며 재치있는 소감을 남겼다.

6회 수비 시프트 탓에 내야 안타 두 개를 내주고 1실점한 양현종은 7회에도 솔로 홈런 한 방을 허용했지만 4.1이닝을 5안타(1홈런) 2실점으로 무난하게 막아내고 살떨리는 데뷔전을 마쳤다. 그는 경기 후 “택시 스쿼드에 있으면서 빅리그 경기를 많이 봤다. 덕분에 긴장을 덜한 것 같다”면서 “팬들 앞에서 오랜만에 던졌기 때문에 재미있었다. 에인절스가 강타선이지만, 상대 타자가 누군지 생각하지 않고 내 공을 던지는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KBO리그 베테랑 투수 다운 대범함이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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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 일 간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 양현종은 꿈의 무대에 올라 시원 시원하게 투구해 동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알링턴(미 텍사스주) | AP연합뉴스

지난 2월 스플릿 계약을 맺고 꿈의 무대에 도전장을 내민 만큼 지난 60여 일은 인고의 시간 그 자체였다. 양현종은 “어제까지도 별 얘기가 없어 마이너리그로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 대기하라는 얘기를 들었고, 오후 2시에 축하한다는 인사를 받았다”며 감격적인 순간을 떠올린 뒤 “한국에서 많은 이닝을 던지고 왔기 때문에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내가 어떤 선수인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르자 축하 메시지가 쇄도했다. 그는 “(류)현진이 형한테도 메시지가 두 개나 와 있더라. 승격 축하하고, 잘 던졌다고 얘기해줬다. 형이 빨리 부상에서 회복했으면 좋겠고, 나도 꿈의 무대에서 더 열심히, 더 많이 던지도록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말그대로 ‘꿈의 무대’를 밟은 양현종은 “한 번 마운드에 올라간 것에서 끝나지 않고 더 자주 던져서 팬 구단 선수들에게 좋은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며 “스프링캠프 때 투수 코치님들이 커브가 좋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오늘은 커브를 던지지 않았지만, 다음 등판 때에는 더 많은 구종을 던져 타자들이 어려워하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구상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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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양현종이 27일(한국시간) 글로브라이프필드에서 열린 LA에인절스와 홈경기에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르고 있다. 알링턴(미 텍사스주) | USA투데이연합뉴스

연착륙 시나리오는 틈이 생긴 불펜에서 자리 잡는 모습이다. 팀 선발진이 대체로 괜찮은 성적을 내고 있기 때문에 이날처럼 롱릴리프나 스토퍼 역할을 하면서 팀 내 비중을 늘릴 필요가 있다. 카일 깁슨과 아리하라 고헤이, 조던 라일스, 마이크 폴티네비치에 한국계 데인 더닝으로 꾸려진 선발진은 팀 평균자책점 4.29로 아메리칸리그 9위에 올라있다. 시즌 전 예상보다는 준수한 편이다. 그러나 불펜진은 5.24로 리그 14위, 전체 27위로 바닥권이다. 그나마 양현종이 이날 역투한 덕분에 5.42에서 크게 낮췄다.

코로나 확산과 연전 등 불확실성을 안고 시즌을 치르고 있어 불펜에서 제 역할을 하다보면 선발 등판 기회도 생긴다. 텍사스 크리스 우드워드 감독은 이날 양현종의 호투를 지켜본 뒤 “불펜에 여유가 없어 선발인 라일스를 최대한 길게 끌고 가고 싶었다. 양현종에게 위기 상황, 그것도 상대 중심타선과 대결이 데뷔전이 되기를 바랐던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 훌륭한 투구를 해줬다. 양현종에게 어떤 기대를 해야 할지 솔직히 몰랐다. 이렇게 던질 줄 알았다면 더 일찍 투입했을 것”이라며 칭찬과 자기 반성을 동시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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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크리스 우드워드 감독(왼쪽)이 진지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응시하고 있다. 알링턴(미 텍사스주) | AP연합뉴스

그러면서 “에인절스 타자들은 왼손 투수에 강하다. 홈런 한 개를 맞았지만, 이를 제외하면 너무도 훌륭한 투구를 해줬다”면서 “양현종 같은 베테랑이 클럽하우스에 있으면 우리 투수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로 그의 중용을 시사했다. 단 한 경기로 감독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셈이다.

정작 양현종은 팀에 미안함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내가 추가실점을 하지 않았더라면, 팀이 역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동료들은 잘했다고 칭찬을 해줬지만, 나는 미안했다”고 말했다. ‘대투수’의 진면목은 아직 공개되지도 않았다. 존재감만 아주 살짝 맛보인 수준이다. ‘꿈의 무대’에서 양현종이 써내려갈 새로운 역사가 오늘부터 쌓이기 시작했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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