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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김효원 대중문화부장]올 초 아랍에미리트 문화수도 샤르자의 마라야아트센터에 유현미, 홍순명, 김주연 등 한국 미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아랍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랍지역의 국공립미술기관에서 한국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이 본격 소개된 것은 처음이어서 아랍인들의 큰 반응을 이끌었다.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독립큐레이터 구정원(41)씨가 기획한 ‘아나: 잠시만 눈을 감아보세요’(ana: Please keep your eyes closed for a moment)전이다. 구정원씨는 독립큐레이터로 한국 작가들을 해외 소개하는 것은 물론 아랍 작가들을 한국에 알리는 다리 역할을 하며 문화적 교류에 앞장서고 있다. 구정원씨가 한국미술의 현주소와 세계화에 관한 소감을 들려줬다.

-‘아나:잠시만 눈을 감아보세요’전은 아랍권 국공립미술기관에서 최초로 한국 현대미술을 소개한 전시로 화제를 모았다. 어떤 전시였나?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아랍권 미술을 리서치하고 아랍 미술 관계자들과 교류하면서 아랍에 한국 현대미술을 공유하고 싶어 기획한 전시였다. 아랍의 국공립미술기관 최초로 한국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자리여서 의미가 있었다. 김아영, 김인근, 김주연, 유현미, 이수경, 이수진, 전가영, 전소정, 정효진, 차학경, 홍순명, 홍영인&가하다 다 등 12팀의 작가가 전시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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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자의 마라야아트센터에서 열린 한국작가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를 감상하고 있다.

-전시 후 현지에서 한국 미술에 대한 반응은 어땠나

전시가 열린 샤르자는 아랍의 문화수도로 불리는 곳이다. 2012년 이 전시의 기획을 처음 시작할 당시만 해도 이 곳에서 지금까지 동아시아쪽 작품이 소개된 적이 거의 없었다. 당연히 한국미술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 전시 후 아랍 지역 미술인들과 관람객들의 긍정적인 피드백이 이어졌다. 영국의 국제 아트저널인 아트뉴스페이퍼에 전시 리뷰를 올렸고, 아부다비 NYU대학의 미술사학과 교수이자 평론가인 살와 막다디 교수가 “최근 본 전시 중 가장 밀도가 높고 아름다운 전시였다”고 평했다. 또 전시를 본 관람객들이 자신들의 SNS에 전시 감상을 꾸준히 올려줬다. 이런 피드백에 기획자로써 큰 보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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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원 독립큐레이터. 김효원기자 eggroll@sportsseoul.com

-전시를 준비하며 에피소드가 많았을 것 같다

전시 준비를 위해 세심한 리서치가 필요했다. 그때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진행하는 ‘프로젝트 비아’를 통해 지원을 받아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로 건너가 리서치를 할 수 있었다. ‘프로젝트 비아’는 한국 현대미술의 해외진출과 국제교류를 위해 지난 2013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시각예술 분야 기획자 지원 프로그램이다. 이 지원을 통해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는 전세계 미술관 관계자들의 모임인 CiMAM 인터내셔널 컨퍼런스를 참관했고 샤르자, 두바이, 아부다비의 미술의 현장 등을 방문해 깊이있는 전시를 준비할 수 있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프로젝트 비아’는 전시 기획자의 리서치 트립 지원, 큐레이터 워크숍 지원 등을 실시하고 있다. 흔히 아티스트에 대한 지원은 많지만 기획자에 대한 지원은 드물다. 기획자에 대한 지원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시각예술 기획자에 대한 지원제도가 무척 중요하다. 지금은 아티스트로서의 큐레이터 시대라고 생각한다. 아티스트로서의 큐레이터는 작가들에게 플랫폼을 열어주고 전시를 같이 만들어간다. 작가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시각을 생각해볼 수 있게 자극해주고 함께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티스트로서의 큐레이터다. 이를 통해 작품이 더욱 풍요로워진다. 큐레이터가 문화은행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큐레이터가 그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프로젝트 비아’ 같은 지원이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프로젝트 비아’는 공모로 참가자를 선정한다. 올해는 7월 첫주 자유 리서치, 큐레이터 토리얼 워크숍 참가자를 모집하는 걸로 알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도전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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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 잠시만 눈을 감아보세요’ 전시 전경.

-독립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가장 보람 느낄 때는 어느 순간인가

새로운 프로덕션이 잘 만들어졌을 때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또 내가 기획한 전시를 통해 작가분들에게 새로운 전시 기회가 연결됐을 때 기쁘다.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 전시 철학이 있을 것 같다

나는 전시를 기획하며 어떤 담론을 만들어내고 싶지 않다. 오히려 담론을 깨고 싶은 마음이다. 담론 보다는 작가 한 명 한 명, 작품 하나 하나에 포커스를 맞추고 싶다. 그래서 담론을 다 내려놓고 예술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제공하고 싶다.

-한국미술의 미래에 관한 전망을 해본다면?

한국 현대미술작가들의 작품은 무척 밀도가 높다. 해외 미술관계자들이 모두 놀란다. 작품 자체가 작가의 인생의 일부인 작품은 나 뿐 아니라 전세계 큐레이터 모두 똑같이 공감하고 감동한다. 작품과 인생은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작가들의 작품을 수면위로 드러내는 것이 내 역할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는 트렌드에 너무 민감하다. 국제 무대에 누구 한 사람이 뜨면 그 사람에게 모든 조명이 쏟아진다. 이같은 쏠림현상이 없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그렇기에 기획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나 기획자가 작가 발굴을 잘 한다해도 지원이 없으면 전시로 이어지기 어렵다. 결국 장기적 안목으로 기획자를 발굴, 성장시키는 환경이 필요하다.

-앞으로 활동 방향과 목표는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아시안 디아스포라에 관심이 많다. 오는 9월 초 광주 아시아 문화의전당에서 ‘큐레이팅 인터네셔널 디아스포라: 큐레이터는 문화정체성의 대리인 혹은 이중간첩인가?’를 주제로 심포지움을 연다. 인도주의가 난제에 봉착하고 문화적 다양성이 위협받는 이 시기에 큐레이터가 할 일은 무엇인가 등을 생각해보자는 자리다. 런던에서 아시안 디아스포라를 연구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다.

eggroll@sportsseou.com

<구정원 프로필>

1975년생. 이화여대 서양화과 졸업. 영국 런던 시티대학 문화정책대학원 산하의 미술관·박물관 경영학과에서 현대미술 큐레이팅으로 석사학위 취득.

2009년 부터 비영리 큐레토리얼 연구소 ‘JWSTELLA Arts Collectives’ 디렉터이자 ‘상하이 두어룬 시립 미술관’(Shanghai Duolun Museum of Modern Art)의 ‘국제협력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현 아랍에미레이트 마라야아트센터의 객원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2004년에서 2008년까지 런던을 기점으로 리버풀 비엔날레(2008), 덴마크 왕립 미술원(2006), 영국 아시아 하우스(2006), 주영한국문화원(2008) 등과 협업으로 한국과 유럽을 연계하는 현대미술 프로젝트 기획에 참여했다.

2009년 부터 제주도립미술관 개관기념 국제전 ‘숨비소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기획전 ‘USB’ 기획을 시작으로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중앙대학교 문화예술연구센터 연구원으로서 ‘인천 여성 비엔날레 중장기 발전 방안’ 등 연구 프로젝트 참가.

2010년 상하이월드 엑스포에서 사우디 아라비아 국가관이 주관하는 공식 문화 프로젝트의 큐레이터로 초청을 받아 사우디 현대미술전 ‘나밧:존재의 사유’를 기획해 상하이 두어룬 현대미술관에서 개최. 서울아트가이드 중동 통신원으로 활동 중이며 아트인 컬처, 퍼블릭아트, 아트나우, 아트인아시아, 캔버스 매거진에 기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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