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혁 모친 이인숙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이규혁의 모친 이인숙 국민생활체육전국스케이팅연합회장이 서울시 성북구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벽을 채운 아들의 사진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수기자 polaris@sportsseoul.com

“이제는 홀가분하지?”
“네. 이제는 홀가분해요.”
마지막 레이스가 끝난 후 고국에서 경기를 지켜본 어머니는 아들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냈다. 지나간 시간의 무게와 그동안 겪은 고생을 알고 있기에 다른 긴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이제는 홀가분하지?”라는 짧은 물음에 아들은 엄마의 마음을 느꼈다. “이제는 홀가분해요. 그동안 걱정해주고 배려해준 가족들 모두 고마워요. 사랑해”라고 답장을 보냈다. 서로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엄마와 아들은 그렇게 담담히 길었던 도전의 시간을 마무리했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을 지탱해 온 이규혁(36·서울시청)이 13일(한국시간)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열린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를 끝으로 스케이트를 벗고 20년의 올림픽 도전을 마쳤다. 1분10초049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전체 40명의 참가선수 가운데 21위에 올랐다. 그의 모친 이인숙(55) 국민생활체육전국스케이팅연합회장은 서울 성북구의 자택에서 아들의 마지막 레이스를 지켜보며 마음으로 함께 뛰었다.

이규혁
[스포츠서울] 스피드 스케이팅 대표팀 이규혁이 11일(현지 시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열린 스피드 스케이팅 500m 1차 레이스에서 힘찬 질주를 하고 있다. 2014.02.11. 소치 |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그동안 제대로 경기도 못봤는데…”
마지막 레이스를 앞두고 이규혁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마지막 경기인데 꼭 보라”고 신신당부했다. 이 회장은 그동안 떨리고 안타까운 마음 때문에 국내 대회는 물론이고 해외 대회의 중계방송조차 제대로 볼 수가 없었지만 이번은 달랐다. 긴장을 다스리며 마음을 편하게 갖고 경기를 지켜봤다. 그는 “경기 초반에 굉장이 빠르게 잘 나가더니 후반 들어 체력이 떨어지더라. 이를 악물고 악을 쓰는 모습이 보이는데 마음 아프고 안타까워서 눈물이 나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보다 운동선수로서 가졌을 아들의 생각을 공감할 수 있어 더 안쓰러웠다. 이 회장도 과거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와 지도자 생활을 했던 만큼 누구보다 그 기분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힘이 떨어진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한가닥 희망을 보고 갔던 길이다.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멋진 레이스를 보여줬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마무리지어 대견하다”고 말했다.
◇올림픽 6회 도전에도 메달 없어 잊혀질까
‘빙상 신동’으로 불렸던 이규혁은 15살이던 1993년 처음 국가대표가 된 이후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소치 대회까지 무려 6회 연속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국내에 전례가 없는 기록이다. 하지만 각종 세계대회에서 메달을 쓸어모으면서도 유독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아쉬움, 갈증, 무언가 부족한 듯한 느낌이 자꾸만 올림픽에 도전하게 만들었다. 이 회장은 “규혁이가 태릉 선수촌 웨이트 트레이닝장에 메달리스트의 사진이 걸려있다고 하더라. 그 얘길 하면서 ‘난 저기서부터 시작했는데 이만큼을 와도 내 사진이 없다. 세계적인 선수가 되도 올림픽 메달이 없어 쉽게 잊혀질까봐 두렵다’고 하더라.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빙상대표출신 가족이라 어릴 적부터 이규혁에게 살뜰하게 대하지 못하고 부담을 지운 것이 미안했다. “중학생 시절 독일로 전지훈련을 가서 편지를 썼는데 ‘가족 모두 국가대표 출신이라 자신도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감동스러우면서도 어린 나이에 부담을 갖고 있는 것이 안쓰러웠다”며 “운동선수들은 대회를 앞두고 상당히 예민해진다. ‘잘해라. 힘내라’하는 응원의 말도 모두 거슬리게 들리니까 그저 경기가 끝난 후 ‘잘했다. 고생했다’하고 말할 뿐이다. 정신적으로 편안하게 해주려고는 했지만 다른 집들처럼 살뜰하게 보살피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선수로서 마지막, 아직 태릉에서 할 일이 있다.
이규혁 본인도 1000m 경기를 마친 후 “다음 올림픽은 없다”며 은퇴를 공식화했다. 이 회장도 “귀국하면 현역 선수생활을 그만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하지만 이 회장은 아들이 아직 태릉에 남아 해야할 일이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평창 동계올림픽이 다가오고 있다. 규혁이는 많은 대회에서 활약했던 만큼 후배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잠깐이라도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후배들에게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해야 한다. 훌륭한 선수를 찾아 선수층을 두텁게하고 후배들을 돕는데 힘을 보태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로서 아들의 지도자 변신보다 더 기대되는 제2의 인생도 있다. “이제 선수생활 마무리 지었으니 부지런히 짝 찾아서 빨리 장가가야한다”면서 “운동하느라 깊이있게 누굴 만날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여지껏 정식으로 소개하고 인사시킨 사람이 없다”면서 웃었다. 이회장은 이규혁의 지난 날을 담은 자서전 성격의 책을 준비하고 있다며 출판기념회를 겸해 아들의 은퇴식을 화려하게 치러주고 싶다고 했다. 한국 빙속의 간판 이규혁. 얼음 위에서 보낸 선수로서의 인생은 막을 내렸지만 얼음 밖에서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고 있다.
이정수기자 polaris@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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