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적 웰빙의 함정을 넘어 유데모니아로

[편집자 주]

더 높은 연봉, 더 큰 성공, 더 많은 인정. 우리는 그것을 얻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그 행복의 기준은 정말 내가 만든 것일까. 윤정구 교수는 ‘얼마나 만족하는가’를 넘어 ‘무엇을 행복이라고 믿고 있는가’를 묻는다. 이번 칼럼은 주관적 웰빙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유데모니아를 통해 행복의 기준을 다시 생각해본다.

내가 원하는 행복은 정말 나의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을 찾아 살아간다. 파랑새를 찾아 숲을 헤매듯 기쁨과 쾌락, 성공을 쫓는다. 더 높은 연봉을 받고, 더 좋은 집에 살고, 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으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대 심리학에서 ‘주관적 웰빙(Subjective Well-being)’은 개인이 경험하는 긍정적·부정적 정서와 삶에 대한 만족 등을 통해 행복을 설명한다.

평가하는 사람이 ‘나’라는 점에서는 분명 주관적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필요하다.

“내가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나의 행복인가?”

우리가 자신의 삶을 평가하는 기준은 사회와 완전히 분리되어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회적 성공, 높은 연봉, 외적 평판, 소비 수준처럼 사회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기준을 자신도 모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다면 평가는 내가 하고 있지만, 평가의 기준은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주관적 웰빙의 ‘주관’이 어떤 준거틀(Frame of Reference) 위에서 만들어졌는지를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남의 각본을 내 삶이라고 믿는다면

사회가 만들어놓은 성공과 행복의 기준을 무비판적으로 내면화하면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게 된다.

남의 각본을 연기하면서도 그것이 내가 원하는 삶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만족이 외적 인정과 비교에 크게 의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높은 연봉을 얻으면 그보다 더 높은 연봉이 보이고, 어느 정도 성공하면 나보다 더 성공한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도 끝이 없다.

뇌의 보상체계도 이러한 반복과 관련되어 있다. 중변연계 도파민 보상 경로는 보상을 기대하고 추구하는 동기와 학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원하는 것을 얻어도 인간은 곧 새로운 상태에 익숙해진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이다. 성취가 새로운 기준이 되고 다시 다음 보상을 원한다.

결국 남이 만들어놓은 행복의 기준을 따라가면서 계속 ‘더 많은 것(more)’을 원한다면 만족은 잠시이고 결핍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유데모니아는 질문부터 다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유데모니아(Eudaimonia)’는 행복에 대해 다른 질문을 던진다.

“나는 지금 얼마나 만족하는가?”를 넘어

“나는 지금 내 존재목적에 대한 약속을 살아가고 있는가?”

유데모니아는 단순히 좋은 감정을 오래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삶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가능성을 실현하며 자신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되어감(becoming)’이다.

되어감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거나 더 많은 것을 성취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의 존재목적에 대한 약속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되어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결과적 성취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진정성의 근력’이 축적되는 체험이다.

행복은 삶에 흔들리지 않는 힘이다

진정성의 근력이 쌓이면 삶을 받아들이는 힘도 달라진다.

우리의 감정은 계속 변한다. 삶에는 성공과 실패가 있고 기쁨과 슬픔, 만남과 이별이 있다. 모든 상황을 우리가 선택할 수도 없다.

행복을 좋은 감정이 계속되는 상태라고 생각한다면 불편함과 고통은 행복을 방해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유데모니아적 행복은 삶의 흐름 속에서 만나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것 역시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며 그 순간을 충만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진정성의 근력이 쌓일수록 주변의 상황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할 수 있는 용기도 생긴다.

행복은 항상 웃고 즐거운 상태가 아니다.

좋은 일이 생겼다고 나를 잃지 않고, 힘든 일이 찾아왔다고 삶 전체가 무너지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존재목적에 대한 약속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행복의 기준을 다시 나에게로

나는 이런 행복을 ‘조복(造福)’이라고 부르고 싶다.

행복의 기준을 남에게서 가져와 그 기준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목적에 대한 약속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에 대해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어쩌면 이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행복한가?”가 아니라

“내가 행복이라고 믿는 것은 정말 나의 것인가?”

그 질문을 통과하고 나면 다시 물을 수 있다.

“나는 지금 내 존재목적에 대한 약속을 살아가고 있는가?”

남의 각본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할 때 행복을 바라보는 기준도 달라진다.

그때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파랑새는 더 이상 쫓아가야 할 대상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는 사람의 어깨 위에 어느 순간 조용히 내려앉는 것이 행복이다.


필자 윤정구 교수는 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 명예교수로서 조직이론과 리더십을 연구하며 진성리더십과 목적경영을 중심으로 리더와 조직의 존재 이유를 탐구해왔다. 『복권사회의 정의』『진성리더십』『기업시민』『급진거북이: 진성리더의 변화전략』『황금수도꼭지: 목적경영이 이끄는 기적』등의 저서를 통해 한국 사회에 새로운 리더십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압축성장의 후유증으로 국민 대부분이 고기능 우울증을 진단받은 대한민국을 치유하는 웰니스 프로젝트인 <한방병원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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