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최근 몇 년간 대한민국 경제에서 가장 가슴 벅찬 단어 중 하나는 단연 ‘K-푸드’였다. 미국 대형 마트 매대를 점령한 한국산 만두와 아시아·유럽의 식탁에 오르는 K-소스는 단순한 수출 실적을 넘어 문화적 자부심으로 다가왔다. 그 최전선에서 시장을 개척해 온 선봉장이 바로 CJ제일제당이다. 하지만 최근 공개된 올해 2분기 성적표와 일련의 사업 재편 움직임을 들여다보면, K-푸드의 눈부신 외형 뒤에 감춰진 뼈아픈 성장통과 기업의 무거운 고민을 동시에 마주하게 된다.
CJ제일제당의 2분기 실적(대한통운 제외)에 따르면, 매출액은 4조 195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2% 증가했다. 겉보기엔 탄탄한 성장을 이어간 듯하지만, 영업이익은 1619억 원으로 18.4%나 감소했고 당기순이익은 239억 원의 손실을 기록하며 적자로 돌아섰다. 특히 회사의 심장인 식품 사업 부문은 매출이 늘었음에도 영업이익은 무려 21.3% 급감했다.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한 고유가 물류비와 포장비 증가 등 글로벌 비즈니스의 막대한 비용 청구서가 발목을 잡은 탓이다.

그러나 진짜 뼈아픈 대목은 기업의 든든한 버팀목이어야 할 국내 안방 시장에서 벌어진 신뢰의 위기다. 고환율과 고물가로 서민들의 지갑이 얇아진 가운데, 지난 7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전분당 등 가격 담합 혐의로 1000억 원의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받은 사건은 치명적이었다. 시장을 선도해야 할 1등 기업이 뒤로는 짬짜미로 폭리를 취했다는 사실은 소비자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겼고, 결국 이는 내수 실적 정체와 기업 이미지 훼손이라는 거대한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이중고에 직면한 회사가 꺼내 든 카드는 결국 고강도 사업구조 개편, 이른바 ‘리밸런싱(Rebalancing)’이다. “우리에게 적당한 내일은 없다”며 지난해 취임한 윤석환 대표의 진두지휘 아래, CJ제일제당은 비주력 사업을 도려내는 파괴적 혁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가격 담합의 진원지였던 전분당 사업 부문의 매각이다. 서민들의 밥상에 오르는 요리당과 물엿, 그리고 각종 음료와 과자의 핵심 원료를 만드는 알짜 인프라를 떼어내는 셈이다.

주목할 점은 그 매각 희망가다. 최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은 전분당 사업부의 매각 희망가를 시장 평가액인 3000억 원보다 무려 1000억 원이나 낮은 2000억 원 수준으로 책정했다. 몸값을 대폭 낮춰서라도 팔 수 있을 때 빠르게 정리하겠다는 절박함이 읽힌다. 연 매출 1000억 원 규모로 전체 식품 매출의 1% 수준이자 업계 4위(점유율 약 10%)에 머물고 있는 비핵심 사업을 과감히 떼어내고, 과징금 부과 등 향후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는 리스크를 조기에 차단하겠다는 현실적인 셈법이다.
과거의 향수에 젖어 문어발식 외형 확장에만 매달렸다면 내릴 수 없는 결단이다.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단행하는 이번 전분당 사업부 할인 매각은, 무분별한 팽창주의를 멈추고 수익성 중심의 내실을 다지겠다는 경영진의 분명한 의지로 평가할 만하다. 확보된 실탄은 신시장 개척과 고부가가치 바이오 사업 등 미래 혁신 동력에 집중 투입될 것이다.
K-푸드는 이제 화려한 1막을 지나 냉정한 2막 앞에 서 있다. 2막의 주인공은 단순히 덩치가 큰 기업이 아니라, 기초 체력이 튼튼하고 시장의 신뢰를 받는 기업이다. 치밀한 수익성 관리, 뼈를 깎는 비용 구조 혁신, 그리고 공정한 시장 윤리를 지키는 일. CJ제일제당이 마신 뼈아픈 실적의 쓴잔과 몸값을 낮춘 매각의 뼈를 깎는 노력이 대한민국 식품 산업 전반에 건강한 자극제가 되기를 기대한다. 위기를 성찰과 혁신의 동력으로 삼을 때, K-푸드 신화는 더욱 단단한 내실 위에서 다시 쓰일 수 있다. socoo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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