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은 광주, 소부장은 전남…전북 몫은 어디 있나
이름만 ‘호남 반도체’…전북 정치권은 무엇을 했나
‘호남’ 필요할 때만 전북 찾지 마라…전북이 그렇게 만만한가

정부가 추진하는 반도체 산업을 두고 ‘호남 반도체’, ‘호남권 반도체’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있다.
기자는 이 이름부터 묻고 싶다. 도대체 무엇이 ‘호남 반도체’인가.
호남은 광주와 전남만을 일컫는 지명이 아니다. 전북 역시 엄연한 호남이다. 그런데 현재 구체화된 반도체 생산시설의 중심은 광주다. 광주 군공항이 이전하면 그 부지에 대규모 반도체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것이 사업의 핵심이다.
군공항 이전 후보지는 전남 무안이다. 무안에는 별도의 국가산단을 조성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와 물류 등 연관 산업을 끌어들이는 구상도 추진되고 있다.
광주에는 생산시설, 전남에는 이를 뒷받침할 산업기반이 그려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묻자. 전북의 몫은 어디에 있는가.
현재까지 전북에 이에 상응하는 반도체 생산시설이 들어온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확인되지 않는다. 연구개발시설이나 대규모 소부장 거점 역시 전북의 몫으로 확정됐다고 할 만한 청사진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름은 ‘호남 반도체’다. 이 대목에서 기자는 불편하다.
전북의 구체적인 몫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호남’이라는 큰 이름부터 붙이는 순간, 국민에게는 광주·전남·전북이 함께 참여하고 함께 혜택을 누리는 대형 프로젝트처럼 비칠 수 있다.
정말 그렇다면 좋겠다. 광주에 생산시설이 들어서고 전남에 소부장과 물류 기반이 구축되는 것처럼 전북에도 연구개발이든 소부장이든 후공정이든 인재양성이든 분명한 역할이 주어진다면 ‘호남 반도체’라는 이름에 누가 시비를 걸겠는가.
문제는 이름은 호남인데 전북의 몫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반도체는 공장 몇 동의 문제가 아니다.
수조 원, 수십조 원의 투자가 움직이고 기업과 연구기관, 대학과 인재가 따라가는 미래 산업이다. 협력업체가 생기고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도로와 철도, 전력과 용수 같은 기반시설도 움직인다. 한 도시의 산업지도를 넘어 지역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사업이다.
그 거대한 미래 먹거리에서 전북은 도대체 무엇을 가져오는가.이 질문에 전북 정치권이 답해야 한다.
선거 때만 전북을 찾고 표를 달라고 읍소할 것인가.
도민들이 국회의원을 뽑아 서울로 보내는 이유는 명함에 ‘국회의원’이라는 네 글자를 새겨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중앙정부와 싸울 때 싸우고, 협상할 때 협상하고, 전북의 예산과 기업과 산업과 일자리를 가져오라고 권한을 맡긴 것이다.
광주에 반도체 생산시설이 들어가는 것을 반대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전남이 발전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광주도 잘되고 전남도 잘돼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전북의 몫이 없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생산시설을 가져오지 못했다면 이유를 물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생산시설을 추가로 요구할 수 있는지 따져야 한다. 어렵다면 연구개발시설을 요구해야 한다. 그것도 어렵다면 소부장 기업을 가져와야 한다. 후공정과 시험·인증시설, 반도체 인력양성기관 가운데 무엇을 전북에 구축할 것인지 정부에 답을 요구해야 한다.
그런데 전북 정치권은 너무 조용하다. 대형 국책사업에서 전북이 빠질 때마다 유감 표명 몇 줄 내고, “건의하겠다”, “검토를 요청하겠다”, “노력하겠다”고 말한 뒤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잊혀지는 모습을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
이제는 그런 말로는 안 된다.
무엇을 요구했고, 누구를 만났으며, 정부로부터 무엇을 받아냈는지 결과로 말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청와대를 찾아가라. 국회를 움직여라. 정부 부처의 문턱이 닳도록 찾아가라.
여당과 야당을 따질 이유도 없다.반도체 앞에 여야가 따로 있고 전북의 미래 앞에 당색이 따로 있는가.
전북특별자치도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가 정해주기만 기다려서는 안 된다. 전북이 반도체 산업에서 무엇을 가장 잘할 수 있는지 스스로 제시하고 기업을 설득해야 한다. 새만금이든 전주·완주든 익산·군산이든 산업과 연구기반을 따져 전북만의 반도체 전략을 내놓아야 한다.
“우리도 달라”는 요구만으로는 부족하다.“이것을 전북에 달라”고 찍어서 요구해야 한다.
도민들도 물어야 한다.
왜 전북에는 없는가.왜 전북의 몫은 아직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는가.전북 국회의원들은 무엇을 했는가.
전북도는 무엇을 요구했는가.정부는 전북을 반도체 산업의 한 축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요구하지 않는 지역에 돌아오는 것은 없다. 침묵하는 지역의 몫을 누군가 선물처럼 챙겨주는 일도 없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호남’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그대로 받아 적는 것으로 언론의 역할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생산시설이 실제 어디에 들어가는지, 연구개발시설은 어디에 배치되는지, 소부장 기업은 어느 지역으로 가는지 따져 독자에게 알려야 한다. 특히 전북권 언론은 따져 묻고 반도체공장의 미래를 전북도민들에게도 정확히 알려야 한다.
광주가 중심이면 ‘광주 반도체’라고 쓰면 된다. 광주·전남이 중심이면 ‘광주·전남 반도체’라고 쓰면 된다.
전북의 실질적인 참여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호남’이라는 이름을 먼저 씌워 전북까지 이미 한몫을 받은 것처럼 만들어서는 안 된다.
명칭 하나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름은 인식을 만들고 인식은 정책의 명분이 된다. ‘호남 반도체’라는 이름이 굳어지고 나면 훗날 전북이 몫을 요구할 때 “이미 호남에 대규모 반도체 투자를 하지 않았느냐”는 말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그래서 지금 따져야 한다.
전북 정치권에 묻는다. 전북은 들러리인가.
다른 지역에 대형 국책사업과 미래 산업이 들어설 때 박수만 치다가 선거철이면 다시 전북 발전을 외칠 것인가.
이제 전북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정부에 요구하고 국회에 따지고 기업을 설득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청와대 앞에 서서라도 전북의 몫을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에도 분명히 말하고 싶다. ‘호남’이라는 이름이 필요할 때만 전북을 끌어들이지 마라.
호남 반도체라고 부르려면 전북에도 그 이름에 걸맞은 생산·연구·소부장 산업의 실질적인 몫을 내놓아라.
그럴 것이 아니라면 명칭부터 정확하게 쓰라. 전북은 ‘호남’이라는 이름을 완성하기 위해 갖다 붙이는 들러리가 아니다.
kobs@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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