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정동석 기자] 올해 2월, 한화 이글스와 노시환이 맺은 11년 307억 원의 비FA 다년 계약은 KBO리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리그 역사상 최초로 300억 원대 벽을 깨뜨린 대형 계약인 만큼, 그에게 쏟아진 야구계의 기대와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는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그 찬란한 숫자는 곧바로 거대한 중압감으로 돌아왔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시작된 타격감 난조는 개막 이후까지 이어졌고, 팀 타선의 중심이어야 할 4번 타자의 방망이는 차갑게 식어갔다. 끝없는 침묵 끝에 4번 타순에서 밀려나고 4월 중순에는 2군행 통보까지 받는 굴욕을 겪었다. 거액의 다년 계약 직후 찾아온 극심한 슬럼프는 그 어떤 베테랑이라도 멘털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가혹한 시험대였다.

2군에서의 재정비와 반등, 코앞으로 다가온 ‘2년 연속 30홈런’

그러나 진정한 거포의 자질은 위기 대처 능력에서 드러났다. 퓨처스리그에서 타격 밸런스를 차분히 재정비한 노시환은 1군 복귀전이었던 4월 23일 잠실 경기에서 뒤늦은 시즌 마수걸이 홈런을 신고하며 반격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첫 단추를 꿰는 과정은 고통스러웠지만, 한 번 제 궤도를 찾은 스윙은 거침이 없었다. 특히 여름을 지나며 타격감은 절정에 달했다. 8월 3할2푼8리, 9월 3할3푼3리의 불방망이를 휘두르며 시즌 타율을 2할8푼대까지 끌어올렸고, 27홈런 89타점, OPS 0.870을 기록하며 중심 타자의 위용을 완벽히 회복했다. 특히 8월 4홈런에 이어 9월 들어 불과 6경기 만에 2개의 아치를 그리는 등 페이스가 심상찮다. 2023시즌 31홈런으로 홈런왕에 오르고 지난해 32홈런을 때려낸 데 이어, 이제 홈런 3개만 보태면 데뷔 첫 2년 연속 30홈런이라는 대기록 고지를 밟게 된다.

바닥을 치고 올라온 거포의 심리적 성숙과 파급력

노시환의 후반기 맹폭은 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타격 폼 수정과 심리적 압박감 속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내며 부진의 터널을 통과했다는 점은, 기술적인 완성을 넘어 선수의 정신적 내구성이 한 단계 도약했음을 증명한다. 한때 팀의 골칫거리로 전락할 뻔했던 대형 계약의 그림자를 실력으로 지워내면서, 소속팀 한화 타선 전체에도 묵직한 안정감을 불어넣고 있다. 중심에서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해주는 4번 타자의 존재는 상대 투수진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며, 타선의 상하위 연결고리까지 살려내는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다.

대표팀 ‘맏형 라인’의 묵직한 책임감, 가을의 찬란한 결실을 향해

노시환의 뜨거운 상승세는 다가오는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대한민국 야구대표팀 코칭스태프에게도 더없는 호재다. 세대교체의 중심축으로서 이번 대표팀 내 맏형 라인에 포진한 그는 단순한 중심 타자를 넘어 젊은 후배들을 이끌어야 하는 중책을 짊어지고 있다. 국제대회라는 특수한 단기전에서 클러치 능력을 갖춘 거포의 존재 유무는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변수다. 슬럼프를 극복하고 최정상의 타격감을 뽐내고 있는 지금의 흐름이라면, 경기장 안팎에서 대표팀의 타선을 지탱할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데뷔 첫 2년 연속 30홈런이라는 개인적인 금자탑과 대표팀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라는 두 가지 확실한 동기부여가 노시환의 방망이를 더욱 매섭게 돌려세우고 있다. 혹독했던 봄의 시련을 이겨낸 그가 가을의 찬란한 결실을 향해 당당히 걸음을 내딛고 있다. white21@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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