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한국 영화계를 대표해온 거장들이 극장 밖으로 향하고 있다. 이창동 감독은 8년 만의 신작을 넷플릭스와 함께 선보이고, 이준익 감독은 처음으로 숏드라마 연출에 도전했다. 무엇보다 한국 스크린을 대표하는 거장들의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우선 거장들의 변화의 중심엔 달라진 콘텐츠 산업 환경이 있다. 극장 관객은 줄어들고 제작 환경은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 반면 OTT는 전 세계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창구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관객들 역시 짧은 호흡의 콘텐츠를 선호하는 소비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 극장과 플랫폼의 경계가 흐려지는 가운데 한국 영화계의 거장들도 새로운 선택지 앞에 섰다.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은 그 변화를 상징하는 작품이다. 이 감독이 8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와 그의 아내, 다큐멘터리 감독과 그녀의 남편 등 두 부부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계기로 만나 서로 다른 삶과 숨겨진 욕망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버닝’(2018) 이후 오랜 시간 신작을 기다려온 이창동 감독의 복귀작이다. ‘가능한 사랑’은 오는 9월 23일 일부 극장에서 먼저 개봉한 뒤 11월 6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다. 넷플릭스로는 이례적으로 극장과 OTT를 순차적으로 활용한다.
이창동 감독 역시 극장가의 현실과 한국 영화의 위기 속 OTT행을 선택했다는 일각의 서늘한 시선을 인지하고 있다. 이창동 감독은 ‘가능한 사랑’ 제작보고회 당시 “제가 이 영화를 넷플릭스 투자로 제작해야겠다고 결심할 무렵이 지난해 전반기였다”며 “그때가 한국 영화 산업이 가장 약화됐던 시기였다. 앞으로 얼마나 회복이 될 건지 의구심이 있던 시기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가 계속 돼야 한다는 것이 이창동 감독의 신념이었다. “극장용 영화와 스트리밍 서비스에 의한 과정까지 영화 매체의 변화를 결국 우리는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넷플릭스 역시 그런 이창동 감독의 뜻을 존중해 제작 단계부터 극장 개봉을 약속했다는 후문이다.

이준익 감독도 변화한 콘텐츠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동안 ‘왕의 남자’ ‘동주, ‘자산어보’ 등 굵직한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연출 세계를 구축해온 이준익 감독은 숏드라마 ‘아버지의 집밥’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아버지의 집밥’은 고리타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평생 누군가가 차려준 밥을 받아왔던 아버지가 직접 한 끼를 준비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준익 감독에겐 첫 숏드라마 연출이다. 더불어 이창동 감독과 마찬가지로 숏폼 형식의 콘텐츠로 선보이는 동시에 ‘세로형 시네마’라는 새로운 장르로 스크린 개봉까지 두 마리 토끼 잡기에 나선다.
이와 관련해 이준익 감독은 “한국 영화의 진입 장벽이 높아지면서 창작자들이 숏폼으로라도 피어날 수 있도록 뒤에서 많이 응원했다”며 “적은 제작비로 숏폼을 찍더라. 근데 주변에서 ‘당신은 왜 안하냐’는 농담으로 부추김을 당해서 떠밀리다시피 하게 됐다. 결과적으로는 잘했다 싶다”고 말했다.
두 감독의 행보는 더 이상 영화감독의 무대가 극장 스크린 하나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들이 극장을 벗어나 OTT와 새로운 형식의 콘텐츠로 향하는 것을 두고 아쉬움을 드러내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극장 산업이 침체를 겪는 상황에서 거장들마저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현상은 영화관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키울 수 있다.
반대로 이는 영화 산업이 살아남기 위한 자연스러운 변화라는 시각도 있다. 제작비와 투자 환경이 달라지고 관객의 콘텐츠 소비 방식까지 바뀐 상황에서 감독들이 새로운 플랫폼을 선택하는 것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창동 감독이 말했듯 변화하는 산업 구조를 거스를 수 없다면, 결국 필요한 것은 공존의 방법을 찾는 일이다. 극장과 OTT는 더이상 경쟁 구도가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해낼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sjay0928@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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