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비 없어 돌아서는 환자에게 손 내밀어…매년 약 5억원 규모 의료비·복지자원 연계

장애인·암환자·외국인 노동자·북한이탈주민까지…병원 밖 의료 사각지대를 찾아서

외국인 근로자 3,850명에 7억2320여만원 지원…국적보다 생명을 먼저 생각한 의료복지

암환자 359명에 8억9500만원 지원…‘돈이 없어 치료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스포츠서울 l 전주=고봉석 기자] 병원에는 두 종류의 아픔이 있다.하나는 의사가 진단하는 병이다. 다른 하나는 검사 결과지에도, 엑스레이에도 좀처럼 찍히지 않는 아픔이다.

수술비가 없어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가장의 한숨, 말이 통하지 않아 병원 문턱 앞에서 서성이는 외국인 노동자의 두려움, 장애 때문에 진료실까지 가는 길 자체가 힘겨운 사람, 암 진단보다 당장 치료비 걱정부터 해야 하는 환자와 가족.

강종대 예수병원 사회사업과장은 지난 37년 동안 그 두 번째 아픔을 들여다봤다.의사가 환자의 몸에 난 상처를 치료한다면 그의 일은 그 환자가 다시 삶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끊어진 사회의 끈을 이어주는 것이었다.

1990년부터 예수병원 사회사업과에서 일해온 그의 기록에는 그래서 화려한 수식어보다 ‘사람’이 많다.

저소득 환자와 장애인,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암환자, 외국인 근로자, 결혼이민자, 북한이탈주민, 범죄피해 이주여성, 자해로 고통받는 청소년까지다.

서로 살아온 길은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도움이 절실할 때 혼자 힘으로는 병원과 세상의 높은 문턱을 넘기 어려웠던 사람들이다.

강 과장이 지난 세월 동안 해온 일은 어쩌면 단순하다.그 문턱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었다.

▲ “돈이 없어서 치료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병원에서 가장 안타까운 순간 가운데 하나는 치료할 수 있는데 돈이 없어 포기해야 할 때다.

강 과장은 의료사회복지 현장에서 이런 환자들을 숱하게 만났다. 그는 저소득 의료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매년 약 5억원 규모의 치료비와 공공·민간 복지자원을 연계해왔다.병원비 한 번을 대신 내주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환자가 어떤 복지제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찾고, 공공기관과 민간단체를 연결하고, 치료가 끝난 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방법까지 살폈다.

의료사회복지사는 흰 가운을 입고 수술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때로는 그가 찾아낸 몇백만원의 치료비가 수술대에 오를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한다.

한 장의 서류와 한 통의 전화가 누군가에게는 삶과 죽음 사이의 다리가 되기도 한다.그에게 ‘복지’는 책상 위 행정용어가 아니었다.사람을 다시 치료실로 돌아오게 만드는 일이었다.

▲ 암환자 359명에게 8억9500만원…절망 앞에서 붙잡은 손

암이라는 한 글자는 환자뿐 아니라 가족의 일상까지 뒤흔든다.더욱이 형편이 어려운 환자에게 암 진단은 질병과 경제적 파탄이라는 두려움을 동시에 안긴다.

강 과장은 2002년부터 2021년까지 사단법인 새힘암환자후원회와 함께 저소득 암환자의 치료비 지원사업을 추진했다. 359명의 암환자에게 모두 8억9500만원의 치료비가 지원됐다.

숫자로만 보면 359명이다.그러나 그 뒤에는 359개의 삶과 그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다.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를 포기하거나 중단할 위기에 놓인 환자를 발굴해 심사를 거쳐 치료비를 연결했다. 응급실과 중환자실에 입원했지만 곁에서 돌봐줄 사람이 없는 환자에게는 기저귀와 화장지, 물티슈 등 당장 필요한 물품과 의료기구까지 지원했다.거창한 지원만이 사람을 살리는 것은 아니다.

병상 옆에서 당장 필요한 작은 생필품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절실한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3,850명의 외국인 노동자…국적보다 먼저 본 것은 ‘아픈 사람’

강 과장의 활동에서 빼놓기 어려운 것이 외국인 의료지원이다.

낯선 나라에서 일하다 아프면 외국인 노동자에게 병원은 더욱 높은 벽이 된다. 건강보험과 비용 문제에 언어 장벽까지 겹치면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생긴다.

강 과장은 1996년부터 예수병원 협력부 총무와 병원협력부장 등으로 활동하며 의료취약계층과 외국인 근로자 지원에 참여했다.2003년부터는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등을 통해 치료비 지원과 의료사회복지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연결했다.

지원 규모는 외국인 근로자 3,850명, 치료비 7억2320만6780원이다. 그 안에는 숫자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연들이 있다.

신부전증으로 장기간 치료와 투석이 필요했던 카자흐스탄 국적 노동자에게 집중적인 의료지원을 제공하고, 건강을 회복한 뒤에는 대사관과 협력해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왔다.

손가락 절단과 교통사고, 뇌출혈, 암 등 중증질환과 산업재해를 입은 외국인들에게도 치료비와 의료서비스를 연결했다.

여권의 색깔과 국적은 달랐다.그러나 병상에서 고통받는 모습은 다르지 않았다.아픈 사람에게 국경은 없었다.

▲ 병원에서 마을로…장애인의 집 문턱을 넘다

강 과장의 시선은 병원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예수병원 고산장애인재활센터에서는 전북 완주군 북완주권역 7개 면과 1개 읍, 약 520㎢를 대상으로 지역사회중심재활사업(CBR)을 추진했다.

의료기관이 환자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로 직접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장애인 가정을 찾아 건강과 재활 욕구를 살피고, 휠체어 이동환경을 만들고, 화장실을 고치고, 침대를 지원하고, 경사로를 설치했다.

보조기기와 의료·복지서비스도 연결했다.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문턱 하나는 비장애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벽이다.경사로 하나, 손잡이 하나가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느냐를 좌우하기도 한다.

이 같은 지역사회중심재활 경험은 이후 전국적으로 관련 사업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현장 모델 가운데 하나로 활용됐다.

장수의료원과 장수노인·장애인복지관에서도 농촌 장애인과 노인을 위한 재활사업에 참여했다.병원이 기다리는 의료에서 사람을 찾아가는 의료로 영역을 넓힌 셈이다.

▲ 시설에서 지역사회로…장애인의 ‘내 삶’을 돕다

장애인 복지는 오랫동안 보호와 시설 중심으로 이뤄졌다.그러나 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보호받는 삶만은 아니다. 자신이 살 곳을 결정하고 지역사회에서 이웃과 함께 살아갈 권리도 중요하다.

강 과장은 장애인 탈시설과 지역사회 자립지원 정책에도 참여했다.전주시 평화동 장애인 자립정착마을 등을 중심으로 의료서비스와 주거환경 개선, 가족구조 상담, 보조기기 지원, 복지제도 안내 등을 연계했다.

그가 바라본 자립은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필요한 도움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 마음에 난 상처도 치료가 필요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도 있었다.재난과 자해, 중독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다.강 과장은 대한적십자사 재난심리지원 활동가와 심리사회적지지 강사로 활동하며 자연재해와 사회재난, 인적재난 피해자들의 심리회복을 지원했다.

재난 이후 찾아오는 우울과 불안, 외상후 스트레스뿐 아니라 알코올·흡연·약물 의존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예방교육과 상담에도 참여했다.

미국 NCC AP의 약물중독전문상담사 자격도 취득해 청소년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중독 예방과 상담 활동을 이어갔다.

청소년 자해 문제에도 손을 뻗었다.국제로타리3670지구 봉동로타리클럽, 완주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 등과 협력해 ‘청소년 자해 흉터 치료 지원사업’을 기획·추진했다.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중·고등학생과 대학생들에게 10회 이상의 치료를 지원하고 상담을 연계했다.

흉터를 없애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몸에 남은 흔적 뒤에 숨어 있는 마음의 상처를 함께 바라보고, 아이가 다시 학교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적이었다.

▲혈우병·북한이탈주민·범죄피해 이주여성…‘빈틈’을 찾아다녀

도움의 손길은 더욱 세밀한 곳으로 향했다.혈우병 환자와 가족에게 심리상담과 진로·학업 상담, 금연교육을 제공하고 치료비와 재활보조기기를 연계했다.

북한이탈주민에게는 응급실과 외래 치료비를 지원하고 복지서비스를 연결했다. 최근에는 하나센터 전북지부 자문위원으로 정착과 복지서비스 향상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범죄피해 이주여성도 있었다.언어와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범죄피해까지 입은 여성에게 사건이 끝났다고 고통까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강 과장은 전주완산경찰서 범죄피해 이주여성 보호·지원 협의체 활동을 통해 의료서비스와 심리상담, 사례관리를 연계했다.경찰과 지방자치단체, 의료기관과 복지기관이 함께 움직이는 사회안전망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탰다.

▲장애여성에게 산부인과 문턱을 낮추다

여성장애인의 산부인과 진료 역시 의료 사각지대 가운데 하나였다.강 과장은 장애친화산부인과 전담 의료사회복지사로 활동하며 장애로 이동이 어렵거나 진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여성들을 의료기관과 연결했다.

전북지역 장애인복지관과 장애인단체 등과 협력해 진료가 필요한 여성장애인을 발굴하고 외래와 입원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경제적으로 어려운 경우에는 의료급여와 복지제도를 안내하고 공공·민간 치료비 자원을 찾아 연결했다.누구에게는 평범한 병원 방문이 누군가에게는 큰 결심이 필요한 여정이다.그 거리를 조금이라도 좁혀주는 것이 의료사회복지사의 몫이었다.

▲금연·뇌졸중 예방·헌혈…아프기 전에 지키는 생명

시간이 흐르면서 활동은 치료에서 예방으로 넓어졌다.2004년부터 중·고등학생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흡연 예방과 금연교육을 이어갔다. 학교별 흡연 실태를 조사·분석하고 결과를 제공해 현장에 맞는 교육과 정책 수립을 지원했다.지역주민을 대상으로 뇌졸중과 심뇌혈관질환 예방교육, 정밀검진과 치료·재활 지원사업도 추진했다.헌혈증을 기증받아 필요한 환자에게 연결하는 ‘헌혈증은행’도 운영했다.

수혈이 필요한 소아암 환자와 중증질환자에게 헌혈증을 지원하고 학교와 지역사회의 자발적인 헌혈 참여를 이끌었다.생명을 살리는 일이 반드시 거대한 결단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었다.누군가 내민 헌혈증 한 장도 다른 사람에게는 다시 살아갈 기회가 됐다.

▲고향 그리운 결혼이민자에게 건넨 ‘비행기표’

의료사회복지라고 해서 병원비만 지원한 것은 아니다.결혼이민자에게는 고향 방문을 지원했다.경제적인 사정 때문에 오랫동안 부모와 형제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항공권을 지원해 가족을 만날 기회를 만들었다.중도입국 자녀에게도 고향 방문 기회를 제공했다.

외국인 유학생에게는 장학금을 지원했고, 한식문화 체험과 우리말 말하기 경연, 독립기념관 역사문화 체험 등을 통해 한국사회를 이해하고 이웃과 어울릴 수 있도록 했다.

사람이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병이 없는 상태만을 뜻하지 않는다.그리운 가족을 만나고, 공부를 계속하고,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는 것 역시 건강한 삶의 일부다.강 과장의 활동이 의료에서 사회통합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된 이유다.

▲ 37년, 결국 남은 것은 ‘사람’

강종대 과장은 매년 약 5억원의 치료비 지원과 자원 연계, 암환자 359명에게 8억9500만원, 외국인 근로자 3,850명에게 7억2320만6780원의 의료비 지원 등 그 숫자는 그의 활동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강 과장이 37년 동안 걸어온 길은 바로 그 질문을 따라간 시간이었다.그에게 의료사회복지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었다.

돈이 없어 돌아서는 환자를 다시 병원 안으로 불러들이고, 장애 때문에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사람에게 길을 만들어주고,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치료받을 방법을 찾아주고, 마음에 상처 입은 아이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는 일이었다.

때로는 치료비였고, 때로는 휠체어가 다닐 경사로였으며, 때로는 헌혈증 한 장이었다.또 어떤 날에는 고향으로 가는 비행기표였고 병원 로비에 흐르는 피아노 선율이었다.형태는 달라도 향한 곳은 같았다.사람이었다.

37년 동안 그가 지켜온 의료사회복지의 현장에는 그래서 소독약 냄새만 나는 것이 아니다.그곳에는 아픈 사람의 손을 잡는 사람 냄새가 난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사회가 가장 아픈 순간에 필요한 의료도 바로 그런 것인지 모른다.병만 보지 않고, 그 병을 안고 살아가는 한 사람의 삶까지 바라보는 것.그것이 37년 동안 한 의료사회복지사가 병원과 세상의 경계를 오가며 남긴 가장 오래된 처방전이다.

▲ 신앙을 삶으로 옮긴 37년…“병원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

강종대 과장의 오랜 의료사회복지 활동 뒤에는 신앙도 자리하고 있다. 전주남성교회 장로인 그는 성경의 사랑과 나눔을 말에 머물게 하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의 삶 속에서 실천하려 노력해왔다.

환자의 국적이나 경제적 형편, 장애 여부를 가리지 않고 가장 어려운 순간에 손을 내밀어 온 것도 이러한 삶의 자세와 맞닿아 있다. 그에게 신앙은 드러내기 위한 이름표라기보다 아픈 사람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는 삶의 기준에 가까웠다.

1990년부터 예수병원 의료사회복지 현장을 지켜온 세월도 어느덧 37년에 이른다. 환자와 의료진, 복지기관과 후원자를 연결하며 병원 안팎의 수많은 문제를 해결해온 그를 두고 주변에서는 “예수병원 의료사회복지 현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성경에서 배운 사랑을 병원이라는 삶의 현장에서 묵묵히 실천해온 37년, 그것이 강 과장의 발자취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모습이다.

강종대 전주예수병원 사회사업과장은 “예수병원 의료사회복지 현장을 지켜온 세월도 어느덧 37년에 이른다. 환자와 의료진, 복지기관과 후원자를 연결하며 병원 안팎의 수많은 문제를 해결했다” 며 “ 의료사각지대를 찾아서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 환자와 저소득층 등에 더욱 신속하게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국적을 불문하고 따뜻한 손을 내밀겠다” 고 밝혔다.

kobs@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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