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관학교 통합, 과거의 명예보다 대한민국의 미래 안보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경험은 존중하되 변화의 길을 막아서는 안 된다…다음 세대에 길을 열어주는 것이 진정한 어른의 역할

[스포츠서울 | 이상배 전문기자] 한 사회의 품격은 변화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느냐 없느냐로 결정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생각이 충돌할 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방식으로 더 나은 답을 찾아가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성숙도가 드러난다.

최근 사관학교 통합을 둘러싼 공청회를 보며 우리 사회가 다시 한번 생각해볼 대목도 바로 여기에 있다.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합은 단순한 조직 개편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 군사력과 장교 양성체계, 나아가 국가안보의 방향과 맞닿아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그렇기에 찬성과 반대가 팽팽하게 맞서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통합에 대한 우려 역시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 각 사관학교가 오랜 세월 쌓아온 역사와 전통, 각 군의 전문성과 정체성, 교육체계의 차이 등은 가볍게 다룰 수 없는 문제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소중한 가치가 훼손되는 일이 없는지 꼼꼼히 살펴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국가적 중대사를 논의하는 자리일수록 더욱 필요한 것은 절제와 이성이다.

자기 생각과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해서 고성과 욕설, 공론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언행으로 상대의 목소리를 막아서는 안 된다. 반대의 강도가 클수록 오히려 논리는 더욱 정교해야 하고, 우려가 클수록 대안은 더욱더 구체적이어야 한다.

공론의 장은 누가 더 큰 목소리를 내느냐를 겨루는 자리가 아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드러내고 검증하면서 공동체가 감당할 수 있는 가장 나은 선택을 찾아가는 자리다.

특히 군의 미래를 논하는 자리라면 더욱 그러해야 한다.

군은 전통과 역사를 중시하는 조직이다. 전통은 조직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구성원들에게 자긍심을 부여한다. 그러나 전통이 미래를 위한 자산이 되기 위해서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살아 움직여야 한다.

오늘날의 안보환경은 과거와 다르다.

인공지능과 무인체계가 전장의 모습을 바꾸고 있고, 우주와 사이버, 전자전 영역은 국가안보의 핵심 전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병력자원의 감소 역시 우리 군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 앞에서 장교를 어떻게 양성할 것인지, 군별 전문성과 합동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따라서 사관학교 통합 문제 역시 과거의 관점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렇게 해왔다”라는 사실은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미래의 답이 될 수는 없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오히려 단순하다.

“앞으로 30년 뒤 대한민국 군에는 어떤 장교가 필요한가.”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면 통합이든 유지든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어느 제도가 미래의 안보환경에 더욱 적합한지, 장교들의 전문성과 합동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지, 국가가 제한된 자원을 어떻게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를 차분하게 따져야 한다.

여기에서 기성세대의 경험은 매우 소중하다.

오늘의 대한민국 군을 만들어온 선배들의 헌신과 희생, 그리고 그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을 존중하지 않는 개혁은 지속되기 어렵다. 과거의 시행착오와 성공의 경험은 미래를 설계하는 데 중요한 나침반이 될 수 있다.

다만 나침반이 목적지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경험은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어야지, 미래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붙잡는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어른의 역할은 자기 경험을 다음 세대에게 그대로 물려주는 데 있지 않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세대가 자신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데 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어제의 정답이 오늘의 질문이 될 수도 있고, 과거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기술이 미래의 전장을 결정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이가 들수록 필요한 것은 자기 생각을 더욱 굳히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현실을 이해하려는 노력인지도 모른다.

“내가 살아봐서 안다”라는 말보다 “지금은 세상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먼저 묻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은 결코 과거를 부정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경험을 더 가치 있게 만드는 방법이다.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어른도 그런 모습이어야 한다.

자신의 명예보다 국가의 미래를 먼저 생각하고, 자신의 조직보다 국민을 먼저 생각하며, 자신이 살아온 시대의 기준보다 다음 세대가 살아갈 시대의 조건을 고민하는 어른이다.

그런 어른은 개혁에 무조건 찬성하지 않는다. 오히려 누구보다 엄격하게 개혁의 허점을 살핀다. 그러나 그 반대에는 감정이 아니라 논리가 있고, 비판에는 대안이 있으며, 무엇보다 국가와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이 있다.

그것이야말로 보수의 중요한 가치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것과 바꿔야 할 것을 바꾸는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만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

전통을 존중한다는 것은 전통의 외형을 영원히 보존하는 것이 아니다. 그 전통이 만들어진 이유와 정신을 이해하고, 시대가 달라졌다면 그 정신을 새로운 방식으로 계승하는 것이다.

사관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통합이 반드시 옳다고 단정할 수도 없고, 현재의 체제가 영원히 최선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 안보라는 가장 본질적인 기준 앞에서 충분히 검증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 지켜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토론의 품격이다.

국가의 미래를 논하는 공청회에서 서로 다른 의견이 충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상대의 발언을 막는 순간 토론은 사라진다. 자신의 주장만 남고, 공동체가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도 사라진다.

강한 반대는 필요하다. 그러나 강한 반대일수록 품격이 있어야 한다.

오랜 세월 국가와 군을 위해 헌신해온 분들의 목소리는 존중받아야 한다.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살아갈 젊은 세대의 목소리 역시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

어느 한쪽의 경험만으로 미래를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배 세대가 후배들에게 경험을 전하고, 후배 세대가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이야기하며, 서로의 생각을 경청할 때 비로소 세대 간 단절이 아닌 계승이 가능해진다.

젊음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다.

자기 생각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사실 앞에서 판단을 바꿀 수 있으며, 자신보다 어린 세대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젊음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단순히 ‘젊은 사람’이 아니라 젊은 생각을 가진 어른이다.

국가를 위해 평생 헌신해온 어른들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가혹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오랜 경험과 권위를 가진 사람일수록 자신의 목소리가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때로는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이 후퇴가 아니라 더 큰 책임일 수 있다. 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역시 권위를 내려놓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길을 열어주는 가장 성숙한 리더십일 수 있다.

대한민국 군의 미래는 과거와의 단절 위에서 만들어져서도 안 되고, 과거에 대한 집착 속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 우리가 지켜온 소중한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군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험과 혁신이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해야 한다.

이번 사관학교 통합 논쟁이 그런 성숙한 논의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통합이냐? 유지냐의 단순한 선택을 넘어, 대한민국은 어떤 군을 필요로 하는지, 미래의 장교는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하는지,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어떤 안보환경을 물려줘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어른들이 보여주었으면 한다.

과거를 자랑하는 어른보다 과거에서 배워 미래를 준비하는 어른의 모습을.

자기 경험을 앞세우는 어른보다 후배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어른의 모습을.

변화를 두려워하는 어른보다 변화의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 어른의 모습을.

진정한 어른의 권위는 목소리의 크기에서 나오지 않는다. 자신이 틀릴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용기에서 나온다.

그런 어른들이 많아질 때 우리 사회의 전통은 더욱 단단해지고, 대한민국의 미래 역시 더욱 든든해질 것이다.

sangbae0302@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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