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위수정 기자] 스마트폰 시장의 오랜 경쟁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더 빠른 프로세서, 더 선명한 카메라, 더 많은 인공지능(AI) 기능을 앞세운 고스펙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정반대로 기능을 의도적으로 덜어낸 ‘디톡스폰(미니멀폰)’이 새로운 틈새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소셜미디어(SNS)와 숏폼 등 중독성이 강한 기능은 제한하되, 지도·메신저·결제 등 일상에 꼭 필요한 기능만 남기는 방식이다.

◇ 열광하는 소비자들…펀딩 목표액 초과 달성 릴레이

최근 해외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디지털 피로도와 스마트폰 과몰입을 줄이기 위한 디톡스폰 출시가 잇따르고 있다. 통화와 문자만 가능했던 과거의 피처폰과 달리, 필수 스마트폰 기능을 선별적으로 제공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소비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미니멀컴퍼니의 ‘미니멀 폰 2’는 크라우드 펀딩 시작 보름 만에 약 2,400명의 후원자를 모으며, 당초 목표액(10만 달러)을 훌쩍 넘긴 160만 달러 모금에 성공했다. 최신 기능 추가에 혈안이 된 기존 시장과 달리, ‘덜 쓰기 위한 휴대전화’에 소비자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고 있는 것이다.

영국 심플 폰스의 ‘덤버 미니’ 역시 2차 생산분 예약만 1000대에 달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덤버 미니는 2.8인치 터치스크린에 물리 키패드를 결합해 장시간 영상 시청이나 SNS 이용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안드로이드 OS를 기반으로 왓츠앱, 구글 지도, 은행 및 대중교통 앱, NFC 결제 등 필수 편의 기능은 모두 지원한다. 사용자가 특정 앱을 직접 차단할 수 있는 기능도 갖췄다.

◇ 전자종이 화면부터 터치스크린 제거까지…과감해지는 덜어내기

기능을 더욱 과감하게 줄인 제품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미국 라이트가 공개한 ‘라이트 플립’은 5G 통신과 지도, 메모, 카메라 등을 지원하면서도 터치스크린과 외부 화면을 아예 없앴다. 폴란드 스타트업 무디타의 ‘무디타 콤팍트’는 앱 장터 자체를 없애고 전자종이(E-ink) 화면을 채택했다. 이 제품 역시 킥스타터 펀딩에서 불과 3시간 30분 만에 목표액을 달성했다.

복고풍 피처폰도 디지털 디톡스 흐름을 타고 젊은 층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스마트폰 제조사 HMD가 올해 선보인 ‘바비 폰’은 미국과 영국 출시 직후 품절 대란을 빚었다. 복고풍 디자인에 디톡스 개념을 결합해 단순한 통신 기기를 넘어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평가다.

물론 신생 업체가 주도하는 시장인 만큼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일부 초기 제품에서 터치 불량이나 화면 꺼짐 현상 등이 발생한 바 있어, 안정적인 양산 능력과 철저한 사후 지원(AS) 확보가 성패의 관건으로 꼽힌다.

◇ ‘단절’이 아닌 ‘선택적 사용’으로 진화하는 디지털 디톡스

최근 디톡스폰 트렌드에서 주목할 점은 과거의 단순한 ‘덤폰(Dumb phone)’과 달리 갈수록 똑똑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아예 쓰지 않는 극단적 단절에서 벗어나, ‘필요한 만큼만 쓰는 것’으로 디지털 디톡스의 방향성이 진화했다. 무한 스크롤과 같은 과몰입 요소는 차단하되, 현대인의 일상에 필수적인 편의성은 유지하려는 소비자의 니즈를 정확히 파고든 것이다.

국내 시장에서도 디톡스폰의 성장 가능성은 긍정적이다. ‘도파민 디톡스’를 향한 대중의 관심이 실제 소비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에 따르면, 지난해 폴더폰 거래 건수는 4,677건으로 2020년 대비 약 15배 급증했다. 스마트폰을 일정 시간 물리적으로 가두는 ‘잠금 상자’ 펀딩에 9000명 이상이 참여하기도 했다.

아직 국내 주류 시장에 안착한 단계는 아니지만, 편의성은 남기고 과몰입은 줄인 제품이 출시된다면 세컨드폰이나 디톡스용 단말기를 찾는 수요를 중심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wsj0114@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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