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아이돌의 시계가 달라졌다. 데뷔 10년 차를 맞은 베테랑 그룹도 이제야 겨우 ‘정규 2집’을 낸다. 과거에는 데뷔 초반부터 정규앨범을 촘촘히 발표하며 전성기를 이끌었지만, 지금은 정규 음반 한 장을 손에 쥐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 K팝 디스코그래피의 공식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SF9(에스에프나인)은 지난 26일 정규 2집 ‘터내서티(TENACITY)’를 발매했다. 데뷔 10주년에 맞춰 내놓은 신보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도약을 다짐하는 앨범이라는 점에서, 일회성 컴백을 넘어 팀의 지난 10년을 총정리하는 성격을 띤다.
주목할 부분은 ‘정규 2집’이라는 숫자다. 2016년 데뷔해 올해 데뷔 10년 차를 맞았지만 정규앨범은 이제 두 번째다. 활동 기간만 놓고 보면 의외로 적은 숫자다. 최근 가요계 전반에서 정규앨범 발매 간격이 눈에 띄게 길어지는 현상이 뚜렷하다.
엔플라잉 역시 데뷔 10주년을 맞은 지난해에야 정규 2집을 냈고, 혼성그룹 카드는 데뷔 9년 만인 지난 7월 첫 정규앨범을 예고했다. 걸그룹 빌리 또한 데뷔 4년 반 만인 지난 5월 첫 정규앨범을 선보였다. 신인 시절 정규앨범을 정례 코스처럼 발표하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지난 세대를 대표하는 아이돌의 흐름은 전혀 달랐다. 소녀시대는 2007년 데뷔와 동시에 정규 1집을 발표한 뒤 2010년 정규 2집 ‘오!(Oh!)’를 냈고, 슈퍼주니어는 데뷔 5년 차인 2010년에 이미 정규 4집 ‘미인아’에 도달했다. 당시 정규앨범은 팀의 활동기를 집대성하는 기본 단위였다. 타이틀곡 외에도 앨범을 꽉 채운 수록곡은 콘셉트와 팬덤 확장까지 염두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K팝 시장은 정규앨범을 과거와는 다르게 활용한다. 대규모 트랙을 묶어내는 것보다 싱글과 미니앨범을 짧은 주기로 쪼개 발매하는 방식이 주류로 자리 잡았다. 숏폼 챌린지와 음악방송, 팬사인회, 자체 예능 콘텐츠를 1년 내내 쉼 없이 가동하며 팬덤의 이탈을 막는 ‘초단기 순환 구조’가 정착된 탓이다.
음반 한 장의 소비 수명이 짧아진 점도 결정적이다. 과거에는 정규앨범 한 장으로 수개월간 후속곡 활동까지 이어갔지만, 지금은 컴백 첫 주 초동 판매량과 온라인 화제성으로 승부가 판가름 난다.

한 가요 관계자는 “10곡 안팎의 곡 수급부터 비주얼, 뮤직비디오, 수록곡 안무까지 챙겨야 하는 정규앨범은 제작비와 시간 부담이 막대하다”며 “반면 4~6곡짜리 미니앨범은 팀의 색깔을 빠르게 보여줄 수 있고, 컴백 주기를 단축해 팬덤 소통뿐 아니라 매출 구조에도 훨씬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실패 시 떠안아야 할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전략적 선택인 셈이다.
여기에 군백기와 개인 활동, 해외 투어로 아이돌의 수명 주기가 7년 징크스를 넘어 10년 이상으로 길어진 환경도 한몫한다. 이제 정규앨범은 초반 성과를 과시하는 수단이 아니라, 긴 활동 여정 속에서 팀의 결속을 다지고 다음 챕터를 여는 거대한 ‘분기점’으로 기능하고 있다.
데뷔 10년 차에 정규 2집을 내놓는 시대. 겉으로 보기엔 늦은 발걸음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제작비 효율화, 리스크 분산, 숏폼 중심의 빠른 플랫폼 환경에 기민하게 적응한 K팝 산업의 고도화된 생존 전략이 맞물려 있다. khd998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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