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배우근 기자] 박위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수위가 거세다.
KTX 낙상 사고 CCTV 공개로 시작했다. 과거 유튜브 영상이 하나둘 소환됐고, 고액 강연료 논란까지 붙었다. 예정된 일정이 취소되고 서울시 홍보대사 자리에서도 물러났다.
이른바 ‘파묘’가 한창이다. 잘못한 부분은 비판받아야 한다.
박위는 KTX에서 휠체어로 하차하다 자신을 돕던 사회복무요원의 발에 걸려 넘어졌다. 낙상은 실제였다. 놀랐을 것이고 화가 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을 돕던 근무자의 실수가 대형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됐고, 그가 현장에서 정중하게 사과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여론은 돌아섰다.
박위도 결국 영상을 내렸다. 여기까지는 과(過)다. 그런데 지금은 그 전까지 박위가 해온 활동 전체가 한꺼번에 심판대에 올라간 모양새다.
여기선 한 번 구분할 필요가 있다. 박위는 ‘위라클’을 통해 휠체어 이용자의 일상을 카메라 앞으로 가져왔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이용했다. KTX를 타고 여행했다. 연애하고 결혼하고 일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비장애인에게는 별 생각 없이 지나가는 일상이 박위에게는 하나의 콘텐츠가 됐다.
버스에 휠체어가 올라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열차 한번 타고 내리는 데 왜 직원의 도움과 경사로가 필요한지, 지하철 엘리베이터 하나가 이동권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직접 보여줬다. 그 효과는 작지 않았다.
저상버스는 장애인만 편해진 게 아니라 유아차를 끄는 부모와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도 편리하다. 지하철 엘리베이터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로 이동약자를 위해 만든 시설은 장애인만 사용하는 ‘특혜’가 아니다. 아이를 태운 유아차도 오른다. 목발을 짚은 사람도 탄다. 무거운 짐을 든 사람도 이용한다. 나이가 들어 계단이 버거워진 사람에게도 필요하다.
오늘의 비장애인이 내일도 반드시 비장애인이라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 장애인의 이동권은 누군가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의 안전망과 접근성을 갖추느냐의 문제다.
우리가 지금 자연스럽게 이용하는 저상버스와 엘리베이터, 경사로와 장애인 화장실 상당수는 처음부터 당연하게 놓여 있던 게 아니다. 줄기차게 불편하다고 말했고, 요구했고, 사회가 조금씩 바꿨다.
박위 콘텐츠의 긍정적인 역할도 이 지점에 있다. 장애인의 이동이 왜 힘든지를 설명문이 아니라 실제 장면으로 보여줬다. 휠체어 이용자를 ‘도움을 받는 사람’으로만 그리지 않고 여행하고 사랑하고 일하는 평범한 일상의 주체로 보여준 것도 의미가 있다.
그렇다고 과거 콘텐츠에 문제가 없었다는 얘기도 아니다. 다시 보면 아쉬운 장면이 분명하다. 좋은 목적이 모든 전달 방식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5년 전 버스 콘텐츠가 대표적이다. 박위가 휠체어 공간을 요청하자 해당 자리에 있던 승객은 자리를 옮겼다. 기사는 운전석에서 나와 의자를 접고 공간을 마련했다. 그런데 영상에는 ‘이제야 오신 기사님’이라는 자막이 등장했다.
하차 때는 버스 기사가 정류장에 서 있던 택시 때문에 차량을 충분히 붙이지 못하자 다른 승객에게 먼저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승객들은 기사의 안내에 따라 내렸다. 그런데 화면에는 ‘쌩’, ‘같은 상황 너무 다른 느낌’이라는 자막이 붙었다. 이어 오스트리아에서 외국인 승객들이 박위의 하차를 돕는 장면과 대비했다. 한국 승객은 외면했고 외국인은 손을 내밀었다는 그림으로 읽힐 수 있다. 하지만 먼저 내린 승객들은 박위를 모른 척하고 지나간 게 아니라 기사의 요청을 따랐다.
이 차이는 작지 않다. 장애인의 불편을 보여주는 것과 다른 사람을 무심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지하철 영상에서도 어르신들이 박위를 먼저 태우려고 양보했고 박위가 이를 사양한 장면이 있었지만, 썸네일만 보면 휠체어 이용자를 남겨두고 엘리베이터를 차지한 사람들로 오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렇다고 이를 곧바로 ‘악의적 편집’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편집자의 속마음까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실제 상황보다 갈등을 증폭하는 방향으로 읽힐 수 있는 편집, 상대의 선의를 충분히 담지 못한 구성이 있었다면 돌아봐야 한다.
특히 상대가 유명인이 아닌 버스 기사와 승객, 역무원, 사회복무요원 같은 평범한 시민이라면 더욱 그렇다. 영향력이 커질수록 카메라는 더 공정해야 한다.
최근 박위를 향한 기사와 비난도 들여다보면, 지금의 논란에 맞는 장면만 골라 전체를 재구성하는 측면이 존재한다. 그것 역시, 맥락을 잘라내는 또 다른 ‘증폭’ 편집이 될 수 있다.
갈등을 키우지 않아도 장애인의 불편은 충분히 불편하다.
kenn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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