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 한 자루가 전쟁 위기 불러온 1976년 판문점…작은 충돌도 확전될 수 있다는 역사적 경고.

핵·미사일 시대의 한반도, 강력한 억제력과 냉정한 위기관리로 우발적 충돌 막아야...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화에는 유연하게…‘충돌 방지→확전 방지→대화→평화공존’ 단계적 접근 필요...

[스포츠서울 | 이상배 전문기자]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발생한 ‘8·18 도끼만행 사건’이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당시 유엔군 경비병들이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중 북한군의 기습 공격을 받아 미군 장교 아서 보니파스 대위와 마크 배럿 중위가 목숨을 잃었다. 평범한 나무 한 그루를 둘러싼 충돌이 한반도를 전면전 직전까지 몰고 간 것이다.

50년이 지난 지금 이 사건을 다시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과거의 희생을 추모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8·18 사건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작은 충돌과 오판 하나가 어떻게 대규모 군사적 위기로 비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경고이기 때문이다.

△ 작은 충돌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8·18 사건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명확하다. 군사적 긴장이 높은 곳에서는 사소해 보이는 사건도 결코 사소하지 않다.

당시 판문점은 남북한과 유엔군이 직접 대치하던 최전선이었다. 미루나무 가지치기라는 일상적인 작업이 북한군의 무력행동으로 이어졌고, 결국 양측의 군사적 긴장이 전면전 위기로 치달았다.

이 사건 이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경비체계와 구조가 크게 변화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우발적인 충돌을 예방하고, 충돌이 발생하더라도 확전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결과였다.

문제는 오늘날의 한반도가 당시보다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점이다. 50년 전 위협의 주요 수단이 도끼와 소총이었다면 지금은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무인기, 사이버 공격 등 훨씬 다양하고 파괴적인 수단이 존재한다. 따라서 오늘날의 평화전략은 과거보다 훨씬 정교해야 한다.

△ 평화는 의지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평화를 말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평화를 원한다는 선언만으로 평화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이 무력도발을 선택했을 때 이를 억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능력과 의지가 있어야 한다. 강력한 억제력이야말로 전쟁을 막기 위한 첫 번째 안전판이다.

특히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고도화된 상황에서는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 확장억제와 확고한 대비태세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한다. 강한 국방이 곧 대화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강력한 억제력이 있어야 상대방과 보다 안정적으로 대화할 수 있다. 반대로 대화가 있어야 군사적 오판이나 우발적 충돌을 관리할 수 있다. 강한 국방과 대화는 서로 충돌하는 선택지가 아니라 평화를 지탱하는 두 개의 축이다.

△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현실도 직시해야

현재 남북관계를 바라볼 때 과거와 달라진 북한의 대남 인식을 냉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노동당 제9차 당대회를 통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한국을 적대적 대상으로 명확하게 규정했다. 핵무기를 포함한 무력 대응 가능성까지 거론하면서 과거의 ‘하나의 민족’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 그것도 적대적인 관계로 재정의하고 있다.

이 현실을 외면한 채 과거의 남북관계 인식만으로 현재를 설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북한의 적대적 정책을 인정한다고 해서 우리까지 모든 대화와 교류의 문을 닫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북한의 위협은 위협대로 정확하게 관리하면서, 긴장 완화와 평화공존을 위한 소통의 통로는 유지하는 것이 현실적인 접근이다. 상대를 믿기 때문에 대화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믿기 어렵기 때문에 대화해야 한다.

△ 가장 위험한 것은 ‘오판’이다

한반도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의도적인 도발만이 아니다. 더 위험한 것은 우발적인 충돌과 오판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번지는 것이다. 8·18 사건이 바로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오늘날에는 무인기와 미사일, 군사분계선 주변의 각종 군사활동 등 새로운 형태의 긴장 요인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접경지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우발적 충돌을 사전에 관리하고, 상황 발생 시 즉각 소통할 수 있는 군사·정치적 채널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쟁은 언제나 최고지도자가 전쟁을 결심하는 순간에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현장의 작은 충돌, 잘못된 판단, 잘못 전달된 정보가 연쇄적으로 확대되면서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억제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위기관리 능력이다.

△ 북한 정권과 주민은 구분해야 한다

대북정책에서 놓쳐서는 안 될 또 하나의 원칙은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을 구분하는 것이다. 북한 정권의 핵·미사일 개발과 군사적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 주민 전체를 적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인도적 지원과 이산가족 문제, 재난·보건 분야 협력 등 정치·군사적 이해관계와 상대적으로 거리가 있는 영역에서는 교류와 협력의 가능성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 북한 정권의 적대정책 때문에 우리가 평화의 가능성까지 스스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 지금 필요한 것은 ‘통일’보다 ‘충돌 방지’다

통일은 대한민국이 포기할 수 없는 장기적 국가 목표일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남북관계에서 가장 시급한 목표는 통일 이전에 전쟁을 막는 것이다.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를 공식화한 상황에서 당장 통일만을 전면에 내세운다면 현실적인 대화 공간은 오히려 좁아질 수 있다. 따라서 남북관계도 단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먼저 충돌하지 않는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충돌이 발생하더라도 확전하지 않는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필요할 때는 대화할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평화공존을 제도화하는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안정적인 토대가 마련된 뒤에야 통일이라는 더 큰 미래를 논의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8·18 도끼만행 사건 50주년은 과거를 추억하는 기념일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당시 희생된 보니파스 대위와 배럿 중위를 기억하는 동시에, 한반도가 얼마나 쉽게 전쟁의 문턱까지 다가갈 수 있는지를 되새기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50년 전 판문점에는 도끼와 소총이 있었다. 오늘날 한반도에는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50년 전 사건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더욱 분명하다. 평화를 원한다면 안보를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강력한 억제력으로 전쟁을 막고, 냉정한 위기관리로 우발적 충돌을 통제하며, 대화의 문을 열어 긴장을 낮춰야 한다.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되 대화에는 유연해야 한다. 북한의 위협은 정확하게 평가하되 북한 주민 전체를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그리고 현재의 긴장을 관리하면서 장기적으로 평화공존의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8·18 도끼만행 사건 50주년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현실적인 메시지다. 평화는 약해서 지키는 것이 아니다. 싸울 필요가 없도록 만들 만큼 강해야 지킬 수 있다.

50년 전 도끼 한 자루가 한반도를 전쟁의 문턱으로 몰고 갔다.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날의 도끼가 아니라, 그 도끼가 다시는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만드는 국가의 힘과 지혜다.

결국 우리가 지향해야 할 평화는 ‘싸우지 않겠다는 평화’가 아니라 ‘싸울 필요가 없도록 만드는 강한 평화’여야 한다.

sangbae0302@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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