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극단 시작으로 대극장 앙상블, 마침내 첫 주연
뼈 있는 배우 철학 ‘기본 지키기’…‘Just 배우’로 가는 길
연극 ‘갈매기 날다’, 8월15~18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창작뮤지컬 ‘충분한 이별’, 9월3~6일 대학로 나온씨어터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뮤지컬에서 앙상블은 ‘무대의 꽃’이라 불린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연만큼 눈에 띄지는 않지만, 공연의 호흡과 완성도를 책임지는 중요한 존재다. 배우 배형빈(28)은 지난 10년 동안 바로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켜왔다. 그리고 이제 그는 무대 한가운데에 선다.
배형빈은 오는 15~1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갈매기 날다’에서 주인공 ‘보인’ 역을 맡는다. 공연은 3일간 총 4회로 짧지만, 2016년 뮤지컬 ‘율곡 이이’로 데뷔한 이후 10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시간이 만들어낸 첫 중극장 주연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어 9월 3~6일 서울 대학로 나온씨어터에서 공연되는 창작뮤지컬 ‘충분한 이별’에도 이름을 올렸다.

◇ ‘무대의 꽃’ 앙상블, 공연을 완성하는 강한 책임감
배형빈은 데뷔 이후 뮤지컬과 연극은 물론 드라마와 광고까지 다양한 장르를 경험했다. 특히 대극장 뮤지컬 ‘명성황후’ ‘몽유도원’에서는 앙상블 배우로 참여하며 공연의 중심을 묵묵히 받쳐왔다.
앙상블은 이름보다 장면으로 기억되는 자리다. 매 공연 주·조연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며 극의 몰입도를 높이고, 관객이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 수 있도록 공연 전체의 균형을 잡는다. 배형빈 역시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에 끝까지 집중하며 공연 관계자들 사이에서 신뢰받는 배우로 성장했다.
배우들 사이에서도 밝은 에너지로 통하는 배형빈은 직업에서만큼은 엄격했다. 그 역할이 앙상블일 때 더욱 냉철한 신념을 지녔다.
5일 스포츠서울과 만난 배형빈은 “배우는 기본자세와 인격, 실력을 모두 갖춰야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이 말이 자만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앙상블 중 한 명이라는 생각으로 무대에 서는 것은 관객 모독이자 무대와 동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라고 강조했다.
앙상블은 주·조연 배우를 돋보이게 한다기보다 함께 한 공연을 완성하는 역할이라는 것. 배형빈은 “장면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이 최선이자 최고의 역할인 것 같다. 나 하나쯤이라는 생각으로 에너지를 떨어뜨려서도 안 된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신념은 무대 경험 속에서 더욱 단단해졌다. 관객의 시선이 무대 위 주요 배역들에게 집중되더라도 역할의 중요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가짐이다. 배형빈은 “관객은 공연을 보면서 단 한 순간을 경험한다. 결국 배우가 하는 만큼 감동을 받는다”라며 “무대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긴장을 감추려다가 실수하지 않으려면 열심히 준비하고 연습해야 한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 단 2명의 관객 위한 최고의 선물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으로 객석에 단 두 명의 관객만 앉아 있던 소극장 무대를 꼽았다. 무대에는 배우는 세 명이 올랐다. 배형빈은 “솔직히 흔들렸다. 하지만 지금까지 만난 선생님들께 ‘관객이 한 명이라도 공연해야 한다’라고 배웠다”라며 “아빠와 딸이었는데, 두 분께 최고의 공연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날의 경험은 배우 배형빈을 더욱 성장하게 했다. 그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실력이 있느냐?’라고 묻는다면 내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답하고 싶다”라며 “현재에 안주하면 그 상태에 머무르게 되는 것 같다. 그러고 싶지 않기 때문에 부족하지만 계속해서 도전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관객의 시선이 무대 위 주요 배역들에게 집중되더라도 역할의 중요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태도다. 배형빈은 “관객은 공연을 단 한 번 경험한다. 배우가 준비한 만큼 감동도 전해진다”라며 “무대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긴장을 숨기려 하기보다 끝없이 연습하고 준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 무대서 이뤄내는 ‘무한한 힘’
배우로서의 성장에 대한 고민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배형빈은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대극장 앙상블 출연 제안을 받았지만, 이를 정중히 고사했다. 경제적인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그는 “배우에게 일이 끊긴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두려운 일”이라면서도 “생활에 대한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지금은 다음 단계로 성장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라고 털어놨다.
이 같은 결심에는 2년 전 출연했던 연극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배형빈은 표재순 연출과 함께 무대에 섰고, 배우 고(故) 이순재로부터 잊지 못할 조언을 들었다. 그때를 떠올리며 “‘배우는 연극에서 얻어가는 힘이 있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무대를 놓지 말고 더 늦기 전의 무대에서 배우는 힘을 키우라는 조언이 지금도 마음속에 남아 있다”라며 “선생님들의 말씀 덕분에 배우로서 포기하지 않는 용기와 도전 의식을 강하게 다질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절대 늦지 않았다는 것. 배형빈은 “20대 초반 대극장에 데뷔했더라면 좀 더 빨리 뭔가를 이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지난 시간이 없었으면 버티지 못했을 것 같다”라며 “배우 이전에 사람으로서, 그리고 배우로서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이 분명히 있었기에 지금의 마음가짐이 생긴 것 같다”라고 미소를 지었다.

◇ 10년 무명 견딘 배우의 첫 비상
중극장에서의 첫 주연 작품인 ‘갈매기 날다’는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홉의 대표작이자 4대 장막극 중 하나인 ‘갈매기(The Seagull)’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예술과 사랑, 삶의 본질을 담은 원작을 황미숙 연출이 오늘의 시선으로 새롭게 풀어냈다.
황 연출은 배형빈이 21세이던 시절 연극 ‘사흘만 볼 수 있다면’에서 함께 작업했던 인연을 바탕으로 이번 작품에 직접 그를 캐스팅했다. 극 중 배형빈은 믿었던 사람들에게 상실과 배신을 마주하며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는 ‘보인’을 연기한다.
작품 속 인물들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관계이기에 관객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우들에게 요구되는 사항이 많다. 특히 배형빈은 약 10분간 이어지는 독백 장면을 책임져야 하기에 쉽지 않은 도전이다.
현재 연습을 거듭하며 인물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 중이라는 배형빈은 “관객들에게 인물이 잘 보였으면 좋겠다”라며 “작품명처럼 ‘~ing(~중)’다. 원작처럼 상징적인 인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담았다”라며 “각자의 방식과 템포로 ‘날아간다(살아간다)’를 표현한다. 고난과 역경이 있어도 결국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라고 설명했다.
작품과 현재 배형빈의 상황과도 연결된다. 그가 바라는 목표는 거창하지 않았다. 그는 “각 인물이 모두 각자의 길을 가는 것처럼 어떤 방식이든 날아가야 한다(살아가야 한다)”라며 “어떤 배우라는 수식어나 형용사 말고 ‘Just 배우’라고 불리고 싶다. 배우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기본자세와 책임감, 그리고 진심을 모두 함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10년 동안 무대 가장자리에서 공연을 완성해 온 배우 배형빈. 이제 그는 첫 주연이라는 새로운 출발선 앞에서 또 다른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gioia@sportsseoul.com
기사추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