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뜨거운 태양 아래 쏟아지던 고음과 강렬한 비트 대신, 편안하게 스며드는 ‘이지리스닝’이 올여름 가요계 트렌드로 굳어졌다. 제니의 나른한 얼터너티브 팝, 프로미스나인의 청량한 라틴 그루브,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오는 리센느까지, 저마다 감각적인 무기로 차트를 쪼개고 있다. 이 세련된 전장 한가운데, ‘원조 서머퀸’ 레드벨벳이 등판한다.
그룹 레드벨벳이 3일 새 미니앨범 ‘Velvet Summer(벨벳 서머)’로 돌아온다. 완전체 컴백은 2024년 6월 ‘Cosmic(코스믹)’ 이후 무려 2년 2개월 만이다. ‘빨간 맛’, ‘Power Up’, ‘음파음파’ 등으로 여름 흥행 공식을 썼던 이들의 귀환이다. 이름만으로도 판도가 출렁인다.

긴 공백 끝에 변주를 시도했다. 과거의 서머송들이 쨍한 ‘레드(Red)’의 색채였다면, 이번엔 앨범명 그대로 나른하고 고혹적인 ‘벨벳(Velvet)’을 여름에 입혔다. 타이틀곡 ‘서핀 보이(Surfin’ Boy)’는 트렌디한 하우스 그루브 위에 보사노바 기타와 레게 리듬을 얹었다. 에너제틱한 서머송의 문법을 비틀고 몽환적인 보컬 하모니를 엮어 한층 성숙한 바이브를 직조해 냈다.
화려한 크레딧 라인업은 앨범의 뼈대를 단단하게 지탱한다. 조이가 타이틀곡과 수록곡 ‘하이와이(Hawaii)’의 작사를 단독으로 이끌며 서사에 깊이를 더했다. 여기에 히트메이커 켄지가 팝 댄스곡 ‘핫 걸스 콜드 바이브(Hot Girls Cold Vibe)’를 매만졌고, 황현과 조윤경 등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작사진이 합세해 유기적인 트랙리스트를 완성했다.

2년 2개월의 긴 공백은 팬덤의 결속력을 오히려 단단하게 담금질했다. 지난달 31일부터 2일까지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에서 열린 팬콘서트 ‘A Day in Red & Velvet’은 티켓 오픈과 동시에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2일 마지막 공연에서 신곡 무대를 선공개하며 본격적인 예열을 마친 이들은 단독 리얼리티 ‘레벨업 프로젝트 시즌6’로 기세를 몰아간다.
데뷔 12년 차를 맞이한 그룹의 행보로는 꽤 의미심장하다.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음악이 환영받는 흐름 속에서, 레드벨벳은 억지로 자극을 좇아 튀려 하지 않았다. 대신 보사노바의 여유로움과 곱씹을수록 짙어지는 특유의 ‘웰메이드 감성’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트렌드의 변화를 영리하게 읽어내면서도 자신들만의 고유한 결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 연륜 있는 ‘서머퀸’의 진짜 무기다.

제니, 프로미스나인, 리센느, 아이오아이 등 쟁쟁한 후배들이 차트 상위권에 단단히 자리를 잡고 있다. 꽤 길었던 공백만큼이나 차트 진입 장벽은 높아졌지만, 레드벨벳만이 쌓아 올린 견고한 아성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뻔한 여름 공식을 영리하게 비틀고 돌아온 레드벨벳, 세련된 도발이 또 한 번 대중의 귀를 홀릴 시간이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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