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첫 등장부터 어딘가 꺼림칙하다. 지저분한 행색에 튀어나온 앞니, 느릿느릿한 충청도 사투리까지 영화 ‘호프’ 속 양배(음문석 분)는 화면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부터 관객의 경계심을 건드린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건 양배의 생김새가 아니다. “서울 가면 80만 원은 받겄쥬?” 그 소박한 욕심 하나가 호포항을 집어삼킬 거대한 참사의 도화선이 된다.
양배는 극 중반부 등장과 동시에 영화의 흐름을 바꿔놓는다. 외계 생명체와 처절한 사투를 벌인 범석(황정민 분)이 간신히 살아 돌아왔는데도, 그는 빙글빙글 웃으며 범석을 놀린다. 그러더니 아무 일 아니라는 듯 “그 놈, 즈이 집 냉동고에 있어유”라는 한마디를 툭 던진다. 그 짧은 대사 하나로 영화가 차곡차곡 쌓아온 긴장감은 단숨에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양배의 목적은 단 하나다. 돈. 외계 생명체를 사냥한 이유도, 위험을 감수한 이유도 모두 거기서 출발한다. 그래서 그는 ‘호프’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다. 범석과 성애(정호연 분), 성기(조인성 분)가 목숨을 걸고 마을을 지키려 애쓰는 동안 양배는 오직 자신의 욕망을 좇는다.

양배는 세상을 망치려는 악인은 아니다. 물론 그래서 더 섬뜩하다. 별것 아닌 욕심 하나, 무심코 내린 선택 하나가 결국 호포항 전체를 재앙으로 몰아넣는다. 거대한 비극이 거창한 악의가 아니라 인간의 작은 욕망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양배는 외계 생명체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땅에 발을 붙일 수 있도록 지탱하는 인물이다.
양배를 둘러싼 공기 역시 심상치 않다. 집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성 마네킹들이 즐비하고, 목수라는 직업조차 어딘가 수상하게 느껴진다. 누군가를 해칠 듯하다가도 엉뚱한 행동을 하고, 어리숙해 보이다가도 속내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특히 성기와 얽힌 사고는 끝까지 물음표를 남긴다. 양배는 “고양이 때문에 핸들을 꺾었다”고 말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란 쉽지 않다. 정말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성기를 향한 질투가 만든 선택이었을까. 그 빈틈 덕분에 관객은 양배의 모든 행동을 의심하게 되고, 그 의심은 긴장감을 더욱 증폭시킨다.

이처럼 속내를 알 수 없는 양배를 설득력 있게 완성한 건 배우 음문석이다. SBS ‘열혈사제’, 영화 ‘범죄도시2’ 등에서 코믹한 매력과 강렬한 빌런을 오가며 존재감을 보여준 음문석은 이번 작품에선 불길한 존재로 극을 이끌었다.
‘호프’ 속 음문석은 웃기지도, 노골적인 악역도 아니다. 대신 음침하고, 꼬질꼬질하며, 금방이라도 퀴퀴한 냄새가 풍길 것 같은 생활감을 표현한다. 말투와 시선, 걸음걸이 하나까지 인물 안에 스며들며 양배라는 사람을 살아 숨 쉬게 만든다. 과장 대신 디테일을 택한 연기 덕분에 관객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를 쉽게 경계심에서 놓아주지 못한다.
본래 가수와 댄서로 출발한 음문석은 이제 장르를 가리지 않는 배우가 됐다. 코미디와 액션, 빌런을 오가던 음문석은 이번 ‘호프’에선 양배의 기묘한 불안감을 완성했다. 또 하나의 인상적인 캐릭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음문석은 장르를 넘나드는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변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행보가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얼굴로 이어질지 궁금해진다. sjay0928@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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