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크 일부 고쳐달랬더니 길 전체 뜯었다”…낙산공원 두 달 폐쇄
-외국인도 시민도 공사장 앞에서 ‘유턴’…공원길 막은 서울시 탁상행정


[스포츠서울 | 배우근 기자] 데크가 덜컹거려 위험하다는 민원이 제기됐다. 필요한 건 신속한 보수였다. 그러나 서울시는 해당 구간을 모두 뜯어내고 다시 설치하는 방식을 택했다.
공사 기간은 6월 22일부터 9월 19일까지다. 시민과 관광객이 자주 이용하는 서울 종로구 혜화문~낙산공원 한양성곽길 초입이 사실상 두 달 넘게 막혔다.
현장에서는 길을 찾지 못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다 발길을 돌리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공사 사실을 모르고 찾아온 시민들도 막힌 길 앞에서 한동안 주변을 살핀 뒤 되돌아간다.
우회로는 있다. 문제는 현장을 잘 아는 주민이 아니면 찾기 쉽지 않고 이동 거리도 상당히 늘어난다는 점이다.
이 구간은 평소 통행량이 많다. 낙산공원과 한양도성 성곽길을 찾는 시민과 관광객이 집중되는 길목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관련 명소로 이어지는 동선까지 겹치며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도 늘었다.
그런 길을 장기간 폐쇄하면서 서울시가 충분한 안내와 대안을 마련했는지 의문이다.

이번 공사의 출발점은 안전 문제였다.
현장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데크가 흔들리고 덜컹거린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부분 교체와 보수를 요구하는 민원도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서울시 중부공원여가센터 시설과는 데크만 교체하는 대신 철골 구조물 대부분을 해체한 뒤 다시 설치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서울시는 시설 노후화로 철제 자재가 부식했고, 설계자 등과 현장을 조사한 결과 단순 데크재 교체만으로는 시설물 안전성과 유지관리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일부 기초부만 남기고 구조물을 다시 설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물론 안전 확보는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다. 그러나 ‘전면 해체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면 그 판단 근거부터 구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어느 철골이 얼마나 부식됐는지, 구조 안전성에 어떤 문제가 확인됐는지, 부분 교체와 전면 교체를 비교한 전문가 조사 결과는 무엇인지 시민에게 설명할 책임이 있다.
민원인이 관련 조사 자료를 요청했지만 충분한 답을 받지 못했다면 문제는 더 커진다.
서울시가 내세운 ‘설계자 등과 현장조사’라는 표현만으로는 전면 철거의 타당성을 입증하기 어렵다. 설계자는 구조 안전진단을 내리는 독립적인 전문기관과 역할이 다를 수 있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조사했고, 어떤 기준에 따라 전면 재설치를 결정했는지 밝혀야 한다.
무엇보다, 부분 보수로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다면 이번 공사는 과잉 정비다.
철골 일부가 부식했다면 해당 부재만 교체하고, 손상된 데크를 새로 깔아 공사 기간과 비용을 줄이는 방안을 먼저 검토했어야 한다.
일부 노후화를 이유로 시설 전체를 뜯어내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전면 철거는 공사 기간을 늘리고 시민 불편을 키운다. 해당 구간은 단순한 동네 산책로가 아니다.
혜화문에서 낙산공원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대표 성곽 관광 동선이다. 주민의 생활길이면서 국내외 방문객이 이용하는 공공 보행로다.
이 길을 두 달 넘게 폐쇄하면서 발생하는 불편과 관광 동선 훼손도 사업 비용에 포함해 판단해야 한다.

차량 통행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공사 구간 인근 도로는 도심에서 성북구와 강북구 방면으로 이어지는 주요 통행로다.
공사 차량이 한 차로를 점유하면서 차량 정체가 가중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행로 정비가 보행자뿐 아니라 운전자에게까지 장기간 불편을 주는 상황이다.
백번 양보해서, 서울시가 전면 재설치를 고수한다면 최소한 결과물은 이전보다 나아야 한다. 기존과 유사한 계단식 구조를 다시 놓는 데 그친다면 전면 철거의 명분은 더욱 약해진다.
공사현장에서 낙산공원 암문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계단 없이 이동할 수 있는 공원길이다.
서울시가 여러 공원에 무장애 보행로를 확대하는 흐름을 고려하면 이번 정비도 계단 중심 구조를 답습할 게 아니라, 노약자와 장애인, 유아차 이용자까지 접근할 수 있는 무계단·무장애 길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전면 철거와 장기 폐쇄를 감수할 정도의 공사라면 시설을 원상 복제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접근성을 높이고 이용자 불편을 줄이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그나마 공사 이유를 납득할 수 있다.
서울시는 이번 사업을 다시 살펴야 한다. 전면 철거가 실제로 불가피한지 독립적인 안전진단 결과를 공개하고, 부분 보수 가능성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

공사를 계속한다면 공정 단축 방안과 명확한 우회 동선, 다국어 안내판도 즉시 보완해야 한다.
시민이 요구한 것은 안전한 길이었다. 그 답이 반드시 두 달 넘는 폐쇄와 전면 철거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설득력이 떨어지는 과잉 공사는 안전행정이 아니라 탁상행정으로 비칠 뿐이다.
혈세와 시간을 들여 길을 다시 놓는다면 시민의 발걸음을 막는 길이 아니라, 누구나 편하게 오를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
kenn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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