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이승록 기자]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를 둘러싼 반응이 뜨겁게 엇갈린다. 156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핵심적인 인과관계를 생략한 이야기의 공백은 관객에게 짙은 당혹감을 안긴다. 극의 몰입을 방해하는 일부 CG의 한계, 감독 특유의 강도 높은 폭력성이 주는 시각적 피로감까지 더해진다. ‘호프’의 작품적 완결성에 비판이 잇따르는 이유다.

하지만 이러한 뚜렷한 단점들과 호불호 속에서도 ‘호프’는 극장에서 직접 확인해야 할 가치를 지닌 작품이다. 아쉬움을 덮고도 남을 압도적인 영화적 체험이 있다. 특히 한국 영화사에서 전에 없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한국 SF 영화의 궤도를 이탈해, 미지의 영역에 진입하다”

그간 국내에서 시도됐던 SF 장르물은 주로 디스토피아적 미래나 우주 개척 등 할리우드와 유사한 배경을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호프’는 다르다. ‘호포항’이라는 지극히 한국적이고 현실적인 공간에 불명의 존재를 충돌시키며,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기괴한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겉모습을 좇던 기존의 궤도에서 과감히 이탈해, 비무장지대 인근이라는 특수한 고립감과 가장 한국적인 정서가 공존하는 시골 마을 한가운데로 낯설고 충격적인 존재를 착륙시킨 셈이다.

“완결성의 아쉬움을 집어삼키는, 거대하고 파괴적인 에너지”

비록 인물들의 행동 동기나 사건의 발생 이유를 해명하는 데 명백한 빈틈이 존재하지만, 스크린을 장악하는 연출력은 폭발적이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극장을 덮치는 공포감, 그리고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잔혹한 시퀀스는 마치 불시에 습격받은 호포항 주민들처럼, 관객을 나홍진 감독이 창조한 재앙의 세계로 강제로 몰아넣는다.

특히 극 중 인물들이 불명의 존재를 죽이기 위해 맹렬히 뒤쫓다가도, 총탄조차 통하지 않는 절망적인 괴력 앞에 혼비백산하며 달아나는 묘사는 무척 흥미롭다. 사냥꾼과 사냥감의 위치가 순식간에 뒤바뀌며, 추격과 도망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파괴적인 동선이다. ‘호프’가 내뿜는 두려움의 근원이자, 나홍진 감독이 전작들의 기법에서 한 단계 진화했음을 증명하는 지점이다.

“한국 영화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힌 나홍진의 욕망”

단점 없는 작품은 결코 아니다. 나홍진 감독의 완벽주의적 성향에 비춰보면 아쉬움을 남긴다. 대신 ‘호프’는 기성 한국 SF 영화와는 선을 긋고, 독창적인 세계를 창조하겠다는 욕망을 끝까지 밀어붙인 감독의 집요한 폭주에 가깝다. 완성도에 흠결이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호프’를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분명하다. 나홍진 감독의 무모하리만치 거대한 야심이 결과적으로 한국 SF 영화가 나아갈 수 있는 스펙트럼을 획기적으로 넓혀놓았기 때문이다.

‘호프’는 관람 후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영화다. 명확한 해답을 쥐여주지는 않는다. 다만, 한국 영화가 새롭게 열어젖힌 광활한 미지의 세계에 직접 발을 내딛는 것만으로도 기꺼이 극장행을 택할 이유는 충분하다. roku@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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