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 포기 위기, 선배들의 한마디에 극복

‘완벽주의’ 내려놓자 달라진 무대

관객에게 질문 던지는 나침반 같은 배우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뮤지컬 배우 유태율(37)은 최근 대학로에서 가장 주목받는 배우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하지만 그는 아직 ‘성공’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긴 공백과 실패를 딛고 다시 시작한 ‘성장 중인 배우’라고 표현한다.

유태율이 긴 공백기를 보낸 후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었던 전환점은 2022년이었다. 이름을 바꾸며 새로운 출발을 결심했고, 뮤지컬 ‘트레드밀’ 트라이아웃 무대를 통해 배우 인생의 두 번째 막을 열었다.

‘새 출발’을 의미하는 ‘태율’로 새롭게 태어난 그는 “과거를 지우거나 세탁하려는 의미는 전혀 아니었다”라며 “스스로 다시 태어난 마음으로 새로 시작하고 싶었다. 실제로 개명 후 배우 인생도 많이 바뀌었다”라고 말했다.

◇ 스스로 정점 찍은 뒤 다음 도전 실행

유태율에게 ‘트레드밀’은 단순한 작품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당시 주민진, 정동화, 반정모 등 대학로를 대표하는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 그는 누구보다 낮은 자세로 작품에 임했다. 유태율은 “나만 잘하자는 마음으로 연습했다. 선배들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많이 배웠다”라며 신인의 자세로 임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스페셜 커튼콜 당시 중고 신인이었던 자신을 외면한 관객들의 시선이 선배들에게만 집중되면서 무대 위 빈자리가 생기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 유태율은 “형들에게 괜히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더니 ‘전혀 걱정하지 마. 너 잘될 거야’라고 다독여주셨다”며 “그 한마디가 정말 큰 힘이 됐다. 선배들 덕분에 많은 사랑을 받았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었다”고 회상했다.

다시 대극장 진출에 대한 생각도 분명했다. 유태율은 “하나의 목표를 설정 후 다음으로 넘어가고 싶어 하는 성향”이라며 “학교 다닐 때도 동국대의 ‘톱(Top)’이 되어야 다른 학교의 ‘톱’과도 경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교내에서도 경쟁할 수 없는 상태에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운을 띄었다.

무조건 ‘큰’ 무대는 감사한 공간이지만, 아직 그의 관심 선상에 올라와 있지 않다. 유태율은 “대학로에서 스스로 정점을 찍었다고 느낄 때 다음 도전을 하고 싶다. 회피하듯 다른 무대로 옮기고 싶지 않다”라며 “도전을 생각했다면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 후 넘어가고 싶다. 그래야 나 자신에 대한 원동력이 생길 것 같다”라고 밝혔다.

◇ 대극장보다 대학로 ‘정상’ 향한 각오

최근 대학로에서 가장 핫(Hot)한 배우라는 평가에도 유태율은 여전히 자신을 증명해야 할 배우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팬들은 내 장점과 강점을 잘 알고 사랑해 주시지만, 아직 나를 잘 모르는 관객들이 훨씬 많다”라며 “나라는 배우가 호감이 되진 않을지언정 잘하는 배우라고 인정받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좋은 공연을 만들고, 좋은 공연에서 잘하는 것들을 모두 쏟아내서 ‘유태율은 잘하는 배우’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계속 노력 중이다”라고 전했다.

배우 생활을 이어오며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완벽주의에 자신을 가둬놓았던 시간이었다. 오래 전부터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뜨거운 배우’가 이상향이라는 유태율은 “예전에는 머리로만 이성적인 배우가 되고 싶었다. 어느 순간 이성이 너무 강해지니 완벽주의 성향이 드러나면서 스스로에 대한 필터링이 심해질 때가 있었다. 계산대로 안 되면 스트레스와 마음의 병이 생겼다. 실제로 2년 가까이 배우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할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라고 털어놨다.

자신을 내려놓자 무대를 대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계산보다 순간의 몰입을 더 믿게 되자,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생겼다. 이젠 말할 수 있다는 유태율은 “무대에서 살아 있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 집중하면서 편안해졌다”라며 “계획대로 안됐을 때 무대 위 공포와 트라우마를 알기에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다”라고 되새겼다.

◇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대신 배우로서의 철학은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유태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향하고 싶은 것은 ‘머리는 차갑되 가슴은 뜨겁자’라는 마음”이라며 “배우는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사람이다. 배우가 못하면 관객도 이해하지 못한다.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배우가 되기 위해 철학과 사회 분야에 관심이 많고 집중해서 보려고 한다”라고 전했다.

유태율은 “나침판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어떤 작품이든 물음표가 생긴다. 나라면 이런 상황에 부닥쳤 때 어떤 선택을 할지 관객의 입장에서도 인물을 분석한다”라며 “극 중 나보다 훨씬 힘든 인물이 하는 선택을 나에게 대입해서 선택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생각할 수 있는 꺼리를 던지고, 이를 통해 나라는 배우가 관객에게 작품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어 “관객들에게 삶의 정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건강하고 긍정적인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긍정적인 배우가 되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화려한 성공보다 실패와 공백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유태율. 자신을 아직도 ‘성장 중’이라고 말하는 그는 오늘도 대학로 무대 위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배우 인생을 써 내려가고 있다.

유태율의 진심이 담긴 무대는 오는 9월 6일까지 서울 대학로 링크아트센터 벅스홀에서 펼쳐지는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에서 확인할 수 있다. gioia@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