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류승룡이 전부가 아니다. 전쟁과 같은 인생 사이에서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 친 건 비단 김 부장(류승룡 분)만이 아니었다. 너도 나도 살기 위해 남을 이용하고, 구걸하고 싸웠다. 그 과정이 하이퍼 리얼리즘 수준에 도달했다. JTBC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이하 ‘김 부장 이야기’)에는 전쟁 영웅 급의 배우들이 즐비했다. 한 둘이 아니다.
그저 꼰대인 김 부장에게 서사를 부여한 건 아내 박하진(명세빈 분)이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밟고, 백정태(유승목 분) 상무에게 비굴하게 구는 이유가 박하진에게 있다. 누구보다 남편을 살뜰히 챙기고, 가족을 위하는 박하진과 아들을 지키기 위했다는 그의 말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명세빈은 절제를 넘어서서 크게 뭘하지 않는 연기에도 따뜻하고 인간적인 아내의 얼굴을 표현했다. 결국 마지막에 시청자의 마음을 잡아주는 건 박하진이다.

ACT 기업의 배우들은 대부분이 훌륭하다. 날카로운 눈으로 상대를 제압하면서 판 전체를 읽는 승부사 백정태는 묵직하다. 비록 김 부장의 등골을 빨아먹고 도와주지 않아 밉기는 하나, 김 부장이 미덥지 않는 업무 능력을 보이고 있어 그 판단이 쉽게 이해가 된다. 이를 그리는 유승목은 압권이었다. 선과 악, 어디에도 서지 않고 대기업 임원의 아우라를 그려냈다.
영업팀 송 과장(신동원 분)·정 대리(정순원 분)·권송희(하서윤 분)는 실제 직장인 수준의 향기를 풍겼다. 판을 읽고 치고 빠질 줄 아는 송 과장과 힘으로 밀어붙이는 정대리, 눈치를 살살 보면서 할 말은 하는 권송희 모두 ‘김 부장 이야기’에 빼놓을 수 없는 매력덩어리다.


최종 빌런에 가까운 ‘뱀 새끼’ 도진우 부장 역의 이신기나 무자비한 인사팀장 역의 이현균은 등장할 때마다 긴장을 불어넣었다. 묵직하게 김 부장을 내려 찍는 도진우의 얼굴에선 한기가 느껴졌고, “살 사람은 살자”며 냉혹하게 계산기를 두드린 이현균은 뜨거웠다. 결이 다른 성격이지만, 압도적인 서스펜스를 이끌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특별출연한 정은채는 드라마 중반부를 사로잡았다. ACT 공장 작업반장 역의 정은채는 시대가 원하는 모범적이고 소탈하면서, 할 말은 정확히 하는 리더의 얼굴로 극을 이끌었다. 김 부장이 조금씩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준 등대이기도 하다. 정은채의 품격 있는 얼굴 덕분에 ‘김 부장 이야기’의 서사가 한층 더 다채로워질 수 있었다.

아들 김수겸 역의 차강윤은 초반부 지나치게 울먹거리는 연기로 몰입을 해치는 감이 있었지만, 점차 적응했는지 후반부에는 감정을 싹 빼고 차분한 톤으로 아버지를 이해하는 아들의 얼굴을 그렸다. 어린애같은 김수겸에게 혜성처럼 나타나 주체적인 삶을 보여준 이한나 역의 이진이는 ‘김 부장 이야기’의 발굴이다. 차가운 듯 하면서 따스한 미소가 고루 섞여 있는 외모는 선과 악을 종잡을 수 없다. 연기도 매우 안정적이라 미래가 발전적이다.

이외에도 김 부장의 오랜 친구 허태환 역의 이서환과 박하진의 동생 박하영 역의 이세희, 든든한 버팀목이 된 김 부장의 형 김창수 역의 고창석, 아무리 욕을 해도 밉지 않은 놈팽이 역의 박수영까지, ‘김 부장 이야기’엔 좋은 배우들이 정말 많았다. 하나 같이 인생이란 전쟁에서 제 몫을 다하고 있는 ‘전쟁 영웅’이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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