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가족의 의미를 짚는 영화에서 남매로 출연한 배우들이 얼마나 닮았는가는 중요한 요소다. 영화 ‘고당도’는 누구나 봐도 남매처럼 보이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고당도’는 아버지의 부의금으로 조카의 의대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가족들이 ‘가짜 장례식’이라는 기막힌 비즈니스를 벌이는 내용을 담은 블랙코미디로, 오는 10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강말금은 병원에서 일하는 장녀 선영을, 봉태규는 빚쟁이에 쫓기는 동생 일회 역을 맡았다. 초반 등장만 보면 두 사람을 실제 남매로 착각할 만큼 닮았다. 그 비주얼 싱크로율이 곧 영화의 현실감을 높인다.
“감독님께 ‘예쁘게 찍어주세요’라고 농담처럼 말했어요. 그런데 봉태규는 역할을 위해 1.5㎏을 감량하고 주근깨까지 그렸더라고요. 그리고는 ‘나는 진짜 못생겼다, 근데 누나는 예쁘다’고 하더니…, 우리가 그렇게 닮았다니요(웃음).”

닮은꼴 남매이지만 삶의 무게는 다르다. 선영은 병원 업무로 지친 데다 사고를 치는 동생과 병상에 누운 아버지까지 책임져야 한다. 매 순간이 고단하다. 강말금은 특유의 건조한 표정과 생활 연기로 선영의 지친 일상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그 감정의 바탕에는 자신의 친언니가 있었다.
“선영은 저보다 언니에 가까워요. 장녀인 언니가 10년째 휠체어를 쓰시는 어머니 간병을 거의 도맡아 하고 있거든요. 촬영 내내 언니를 많이 떠올렸어요. 그야말로 ‘K-장녀’죠.”
동생 일회는 매일이 벼랑 끝이다. 빚을 피해 아내 효연(장리우 분), 아들 동호(정순범 분)와 떠돌이 생활을 한다. 그런 절박함 끝에 누나와 가짜 장례식을 꾸미게 된다. 황당한 설정이지만, 강말금의 생활력 넘치는 연기가 두 남매의 선택을 현실적이고 절박하게 만든다.
강말금은 “감독님이 선영이 애잔하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라며 “저는 슬픔보다 ‘웃픈’ 현실 코미디 톤으로 접근했어요. 그래야 공감이 생길 것 같았죠”라고 설명했다.

덕분에 ‘고당도’는 무거움과 애잔함, 그리고 웃음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 살아 있는 아버지를 ‘고인’으로 만들어야 할 만큼 극한 상황에 몰린 남매를 움직인 건 동호의 존재였다. 선영이 일회 부부에게는 냉담하지만, 조카에게만큼은 유독 다정한 이유다. 대물림되는 가난의 굴레를 끊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목 ‘고당도’ 역시 가족과 세대의 굴레와 연결된다. 권용재 감독은 제철 과일을 먹던 중 “인생에서 제철 과일을 맛볼 기회는 100번도 되지 않는다. 부모와의 인연도 결국 끝이 온다”는 생각을 떠올렸고, ‘죽음 또는 고향(故)에 당도한다’는 의미를 담아 제목을 완성했다.
강말금은 “집안의 서포트만 있었다면 선영도 의사가 되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동호만큼은 다른 길을 걷길 바란 거다. 반복되는 굴레를 조카에게만큼은 물려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촬영 내내 가족을 떠올렸다는 강말금은 “집에서 쉬다 보면 ‘우리 셋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걸 지켜준 사람이 언니죠. 저는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았지만 언니의 삶은 얼마나 외로웠을지…, 새삼 생각하게 됐죠”라고 털어놨다.
황당하게 들리는 ‘가짜 장례식’이지만, 현실과 맞닿은 가족 서사라는 점에서 숱한 공감대를 만든다. 그 중심에는 강말금이 있다. 어떤 캐릭터든 현실에 존재할 법하게 생기를 불어넣는 배우다. 선영 역시 우리 주변 어디엔가 있을 것처럼 살아 숨 쉰다.

“제가 선영처럼 인생의 무게를 짊어져본 적은 없지만, 그 인물을 통해 관객에게 상징성을 줄 수 있다고 믿어요. 제 연기가 도달해야 할 곳은 관객이니까요.”
마지막으로 강말금은 “이 영화는 어느 세대가 봐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며 “아버지·고모 세대, 선영·일회 세대, 동호 세대까지 모두 다르게 느낄 수 있는 깊은 영화”라고 관전 포인트를 짚었다. sjay0928@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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