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스크린에서 굵직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배우들이 잇달아 드라마로 이동했다. 배우 이정재와 류승룡이 그 주인공이다. 같은 시기에 안방극장을 찾았지만, 두 작품의 분위기와 성적표는 뚜렷하게 다른 결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스타트 라인을 끊은 배우는 이정재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 이후 글로벌 스타로 자리 잡은 그가 택한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다.
이정재는 tvN 월화극 ‘얄미운 사랑’에서 임지연과 한 팀을 이루며 국민 배우 임현준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이정재는 망가짐을 활용한 슬랩스틱, 리듬감 있는 대사 타이밍, 이미지 소모를 전면적으로 드러내는 변신까지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이러한 연기적 변화가 분명한 장점으로 작용했음에도, 작품의 핵심이기도 한 임지현과 케미에서는 구조적 어려움이 동시에 드러났다. 가장 크게 지적되는 부분은 배우 간 나이 차로 생기는 화면의 온도 차다.
1972년생과 1990년생의 조합은 캐릭터 설정상 ‘극적 대비’를 노린 선택이지만, 로맨스라는 장르에서는 자연스러운 호흡을 만드는 데 장애물로 작동했다.
대립 구도에서는 톤이 잘 맞아떨어지지만, 감정의 진폭이 커지는 장면, 가까워지기 시작하는 표정 변화, 미묘한 거리감, 로맨스로 넘어가는 터닝 포인트에서는 일부 이질감이 남는다.
이정재가 장면마다 ‘변주’를 통해 톤을 올리고 내리는 방식이라면, 임지연은 현실적인 감정선을 기반으로 직선적인 호흡을 유지한다. 이러한 대비는 갈등 장면에서는 장점이 되지만, 로맨스로 전환되는 순간에는 두 리듬이 완전히 하나로 합쳐지지 않는다.
초반 시청 흐름도 양가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첫 방송은 5.5%로 산뜻하게 출발했지만 이후 4%대에서 정체되며, 관심과 고민이 뒤섞인 시청층의 평가가 그대로 반영됐다.

반면 류승룡이 그리는 JTBC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는 방향 자체가 달랐다. 스펙터클한 사건이나 화려한 로맨스보다, 한국의 중년이 마주하는 현실의 결을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
‘극한직업’ 이후 천만 배우가 된 류승룡은 이번 작품에서 성공과 회의, 자존심과 무력감이 뒤엉킨 김낙수를 섬세하게 그리며 시청자를 끌어당겼다.
낙수는 첫눈에 봐도 ‘성공한 중년’이지만 실상은 위태롭다. 승진에서 밀리고, 회사의 재편 속도에 따라잡히지 못하고, 오랜 시간 쌓아온 자리마저 흔들리는 순간 그는 허무와 불안을 동시에 마주한다.
좌천된 공장에서 들은 “너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일하는 기분만 내는 거다”라는 말 앞에서 툭 터져 나온 울분은 상황의 비애를 압축한 장면으로 남았다. 시청자들은 그 눈빛 한 번으로 압축된 수십 년의 서사를 읽어냈다.
여기에 ‘꼰대’로 보이는 그의 일상은 블랙코미디의 결을 덧씌우며 현실 풍자를 완성했다. 팀원의 외제차를 보며 괜한 허세를 부리거나, 소중한 티타임을 결국 잔소리로 끝내버리는 낡은 습관은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부장님’의 잔상을 떠올리게 한다.
그럼에도 류승룡은 인물을 밉지 않게, 오히려 짠한 인간으로 설계하며 드라마의 감정 축을 단단하게 잡아냈다. 웃기지만 아픈, 씁쓸하지만 따뜻한 ‘단짠 서사’가 여기에 형성됐다.
결국 두 작품의 반응을 갈라놓은 건 장르의 차이만이 아니다. 이정재가 스스로의 이미지를 벗고 전혀 새로운 톤의 코미디에 도전하며 ‘낯선 색’을 입혔다면, 류승룡은 중년의 감정과 현실을 깊이 있게 파고드는 ‘생활의 색’을 더했다.
한 배우는 프레임 밖에서 해방을 시도했고, 다른 배우는 프레임 안에서 현실을 투명하게 드러냈다. 도전의 방식이 달랐기에 결과도 달라지고 있다.
이정재는 색다른 변주를 택했고, 류승룡은 깊이 있는 현실주의를 선택했다. 두 항로가 어떤 결말로 향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khd998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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