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도 뚫었다. 윤가은 감독의 6년 만의 신작 ‘세계의 주인’이 제대로 입소문 탔다. “올해의 한국 영화”라는 찬사가 붙고 있다.
‘세계의 주인’은 인싸와 관종 사이, 열여덟 여고생 이주인(서수빈 분)이 전교생이 참여한 서명운동을 홀로 거부한 뒤 의문의 쪽지를 받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아무 정보 없이 봐야 하는 영화”가 주된 후기다. 모르고 봐야 영화의 진가를 안다는 의미다. 이로 인해 ‘無스포 챌린지’도 실천 중이다. 엄청난 반전이나 커다란 갈등이 있지 않음에도 나오는 리뷰다. 주인공 이주인이 살고 있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길 바라는 윤가은 감독의 의도를 깨우친 관객들의 배려다.

‘세계의 주인’은 두 가지 의미를 담는다. ‘이 세계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의미와 동시에 이주인의 삶을 뜻한다. 이는 영화를 바라볼 때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동시에 이 또한 나의 이야기일 수 있음을 알려준다.
10대 성장물의 외피를 지녔지만, 모든 세대의 관객을 관통하는 이야기다. 주인의 엄마 태선(장혜진 분)이 꾹꾹 참아왔던 아픔을 토로하며 “응, 아프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특히 울림을 준다. 누군가의 엄마, 혹은 어린이집 원장님 같은 수식어로 점철된 존재가 아닌 태선 역시 하나의 세계를 가진 ‘주인’임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른을 위한 동화 같기도 하다.
중반부를 넘어가며 주인의 세계가 펼쳐지고, 관객은 작품 속 메시지인 ‘나다움’이 무엇인지 떠올리게 된다. 풍파를 만나고, 꺾여 넘어져도 결국 본질 그 자체인 ‘나 자신’을 잃지 않음으로써 더욱 견고해진다는 의미다. 이는 곧 각자의 삶에 용기와 희망으로 이어진다.
영화를 보고 나면 주인의 성장과 동시에 관객의 성장이 된다. 주인공과 관객의 ‘쌍방 구원 서사’ 혹은 ‘쌍방 성장 서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애틋해진다.

누구나 살면서 겪어봤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잘 만든 영화는 국적의 경계선도 넘었다. 전 세계가 앞다퉈 ‘세계의 주인’을 찾고 있다.
국내 정식 개봉 전부터 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인 플랫폼(Platform) 부문에 한국 영화로는 최초이자 유일한 작품으로 초청됐다. 제9회 핑야오국제영화제에서 2관왕을 휩쓸고, 제41회 바르샤바국제영화제, 제69회 BFI런던영화제, 제49회 상파울루국제영화제, 제70회 코크영화제 등 해외 유수 영화제에 연이어 초청됐다.
무엇보다 중국 베테랑 배급사 라이트 필름스 리미티드(Light Films Limited)에 판매되며 중국 현지 배급을 확정했다. 현재 중국 시장 내 한국 영화 진출이 얼어붙은 상황임에도, 영화제 공개 직후 현지 관객들의 열렬한 찬사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성사됐다는 점이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동료 영화인들의 지원도 전폭적이다. 오랜만에 나온 좋은 영화를 빛내고자 하는 마음이 모이고 있다. 방송인 송은이를 비롯해 배우 김혜수, 김태리, 김의성, 배성우, 류현경, 고아성, 박정민 등이 릴레이 상영회를 개최했다. 이는 영화를 관람한 배우들이 상영관 전석 티켓을 구매해 관객들을 초대하는 방식이다. GV 행사에선 김은희 작가, 봉준호 감독, 박시영 디자이너 등이 함께한다.
박스오피스도 1위를 차지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27일 기준 ‘세계의 주인’은 개봉 이후 6일 연속 한국 독립영화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누적 관객수 3만 명을 돌파했다. 비록 큰 수치는 아니지만, 작품이 지닌 가치를 아는 사람들의 입소문 덕에 개싸라기 흥행이 예상된다.
이러한 영화가 탄생하길 애타게 기다린 온 영화인이 돕는다. 한국 영화 위기 속에서 피어난 걸작이다. ‘세계의 주인’이 과연 ‘한국 영화의 주인’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sjay0928@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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