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록
크라잉넛 한경록이 지난 1월 30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연습실에서 스포츠서울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조은별기자]2023년 2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이들에게 생일 축하를 받는 이를 꼽으라면 밴드 크라잉넛 베이시스트 한경록을 빼놓기 어려울 것이다.

유난히 사람을 좋아하고 술자리를 즐겼던 이 ‘작은 거인’은 자신의 생일을 크리스마스, 밸런타인데이와 더불어 젊음의 거리 홍대의 3대 명절로 만드는 배포와 기개를 보였다.

애초 ‘경록절’은 한경록의 생일인 2월 11일을 기념한 애칭이다. 그의 군 제대 직후인 2005년 2월, 지인들과 조촐한 술자리를 가진 게 시작이었다.

홍대의 마당발로 꼽혔던 한경록이 자신의 생일을 기념해 술을 산다는 소식에 인근에서 공연하거나 서식하던 선후배 뮤지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음악하는 이들이 다수다 보니 진창 술을 마시다 기타를 치고 노래 부르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해가 거듭할수록 그의 생일에 모이는 이들의 규모가 커져갔다. 언젠가부터 매년 2월 홍대에 모이는 이들은 ‘경록절’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경록절’은 한경록이 1년 동안 각종 페스티벌 출연료와 저작권료를 모은 돈으로 지인들에게 아낌없이 쏘는 날로 자리잡았다.

2015년부터는 홍대 인근 라이브 클럽 중 가장 큰 왓챠홀(구 무브홀)이 장소를 지원했다. 생일 잔치에 온 뮤지션들이 자신의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무대가 생겼다. 악기까지 마련하니 너도나도 무대 위로 뛰어들어 신명나는 공연을 펼쳤다. 잔치에 온 손님들을 맨입으로 보낼 수 없어 무작정 수제맥주집들을 찾아다니며 협찬을 받기 시작했다.

한경록은 “‘내 생일인데 왜 이렇게 힘들지?’라고 생각하면서도 기획을 하고 협찬을 받으러 다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경록절’은 한경록이 평소 쌓은 인간관계와 기획자로서의 역량을 마음껏 뽐내는 페스티벌로 승화했다.

한경록은 “‘경록절’에 참석한 최백호 선배님께 ‘한 곡 부탁드린다’고 즉석에서 정중히 청했을 때 터진 ‘낭만에 대하여’ 떼창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웃었다. 800여 뮤지션들이 마치 아이유의 노래를 따라 부르듯 떼창하니 당사자인 최백호마저 “젊은이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어르신들이 모였나”라며 깜짝 놀라 노래를 멈췄다 한다.

한경록은 “뮤지션들끼리 좋은 에너지를 받아가는 자리가 경록절의 의의”라고 강조했다.

한경록
크라잉넛 한경록이 지난 1월30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연습실에서 스포츠서울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3년만에 120팀 참여하는 대규모 대면 공연...음악·미술·과학·문학 망라하는 ‘마포 르네상스’

팬데믹으로 인한 ‘거리두기’ 기간에도 ‘경록절’은 계속됐다. 각자의 안방에서 녹화로, 생중계로 18시간 동안 약 100여팀이 참여했다. 가수 김창완은 아예 경록절 축가를 직접 만들어 선사하기도 했다. 감염병 사태에도 음악은 이어져야 한다는 뮤지션들의 간절한 염원이 온라인을 통해 전해졌다.

올해 ‘경록절’은 3년만에 대면공연으로 귀환한다. 내친 김에 몸집을 훌쩍 키웠다. 1차부터 7차까지 발표한 가수 라인업에는 크라잉넛, 김수철, 최백호, 김창완, 이적, 양파, 박창근, 몽니, 박태희(YB), 잔나비, 멜로망스, 강승원, 레이지본 등 내로라하는 가수 120여 팀이 참여한다.

홍대 왓챠홀, 마포아트센터 등 마포구 일대에서 온오프라인으로 5일간 대대적인 페스티벌이 열린다. 규모만 놓고 보면 과거 지산록페스티벌이나 펜타포트록페스티벌 못지않다.

행사에 참여하는 이들은 전원 노개런티로 무대에 오른다. 한경록은 “홍대의 무명 인디신이나 이제 갓 데뷔한 팀을 관객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며 “다른 가수분들도 이런 취지에 공감해 함께 해주셨다”고 설명했다. 박창근, 이적, 양파 등은 올해가 첫 참여다.

포스터_메인_SNS용 (1)
2023년 경록절 포스터 ‘마포 르네상스’ 제공 | 캡틴락컴퍼니

음악 외 미술, 문학, 과학, 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한다. 김상욱 카이스트 교수의 물리학 강의, 작사가 겸 싱어송라이터 조동희의 작사 강의, 시인 이병철의 시문학 강의, 노브레인 이성우와 한덕현 교수의 북토크가 12일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다.

8~12일 같은 장소 갤러리에서 열리는 ‘로큰롤 르네상스’에서는 김창완, 크라잉넛 이상면, 노브레인 보보, 권민지 작가의 그림이 전시된다.

대부분 음악계 동료나 한경록의 지인이지만 한경록의 간곡한 섭외에 응한 이도 있다. 한경록이 평소 팬을 자처했던 김상욱 교수는 지인에 지인을 통해 섭외한 케이스다. 한경록은 “어렵게 통화된 김교수님께 ‘형님 팬입니다’라고 했더니 교수님께서 ‘저도 팬이에요’라며 흔쾌히 함께 해주셨다”는 에피소드를 전했다.

올해 경록절의 부제는 ‘마포르네상스’. 흑사병의 유행이 끝나고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르네상스를 통해 문화예술이 부흥했듯 코로나19를 거친 대한민국에도 문화·예술이 꽃 피길 바라는 마음으로 붙인 이름이다.

한경록은 “말도 안 되는 징글징글한 경험이었지만 재미있다”라며 “도와준 친구들에게 1년 동안 벌어 술을 사는 동키호테같은 그 과정 자체가 록앤롤”이라며 활짝 웃었다.

mulgae@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