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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황혜정기자]

골든글로브 시상식 TV드라마부문 여우주연상(2019), 미국 크리틱스 초이스 TV드라마부문 여우주연상(2019), 뉴욕 타임즈 영향력 있는 100인 선정, 미국 배우조합상 TV드라마부문 앙상블연기상(2007), 미국 배우조합상 여자 TV드라마부문 연기상(2006), 골든글로브 시상식 TV부문 여우조연상(2006), 미국 다문화영화협회 창조적 자유상(2005), 케이블 에이스 어워드 코미디 연기상(1996), 칸 국제 시청각프로그램 축제 여우주연상(1994).

이 모든 상이 한 명의 아시아계 여성에게서 나왔다. 한국계 캐나다 국적의 산드라 오(Sandra Oh·50)가 BBC 아메리카의 스릴러 ‘킬링 이브’에서 영국 MI5 요원으로 열연을 펼쳐 2018년 에미상 드라마 부문에 아시아계 배우로는 처음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주목받은 데 이어 골든글로브에서 결국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그런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 ‘엄마’(2022)와 인기 미국 드라마 ‘킬링이브’ 시리즈의 마지막인 시즌4가 지난달 11일 동시 개봉했다. 두 작품 모두 공통적으로 스릴러 기반의 여성 서사에다 실제 부모가 한국인인 캐나다 이민 2세대로서의 이민자 정체성을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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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골든글로브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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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참석한 산드라 오 부모. 산드라 오는 이날 시상식에서 수상소감 도중 한국어로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말했다.

먼저, 산드라 오에게 골든글로브와 크리틱스초이스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드라마 ‘킬링이브’는 당초 영국 원작 소설에서는 젊은 백인 여성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제작사 측이 산드라 오를 캐스팅하기로 결정하면서 드라마 속에선 한국계 여성으로 설정이 바뀌었다. 산드라 오는 한 인터뷰에서 “‘BBC 아메리카’가 나를 이브로 캐스팅한 것 자체가 분명한 변화”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이는 ‘여성’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2019년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에서 그는 수상소감으로 “‘킬링 이브’에 출연하게 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영광”이라며 “‘킬링 이브’는 ‘여성’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드리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킬링이브’는 산드라 오와 조디 코머 두 여배우가 공동 주연으로 극을 이끌고 MI6의 수장을 맡은 피오나 쇼유(‘해리포터’ 시리즈에서 해리포토의 이모 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와 시즌마다 주요 빌런으로 등장하는 이들도 모두 여성이다. 드라마를 총괄하는 프로듀서 역시 매 시즌 바뀌었지만 모두 여성이 맡았다. 산드라 오는 종종 “여성으로만 구성된 제작팀에서 영화나 드라마 촬영을 선호한다”고 말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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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이브’ 스틸컷.

이에 더해 ‘킬링이브 - 시즌3’(2020)의 첫 장면에서도 한국팬들에게 반가운 장면이 등장한다. 산드라 오가 맡은 배역 ‘이브’는 시즌2 마지막, 치명상을 입고 칩거한다. 칩거 장소는 극중 한국계라는 설정에 맞게 이브가 심리적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인 런던의 한인타운 ‘뉴몰든’이며, 그는 한식당에서 주방알바로 일한다.

이 장면도 당초 작가 수잔 히스코트는 이브가 어딘가 이국적인 공장에서 일하며 부상을 회복하는 모습을 구상했지만, 산드라 오 자신이 ‘이브가 어릴 때 먹었던 음식과 모국어가 있는 공간’을 역제안해 성사됐다고 알려졌다.

산드라 오가 캐스팅되며 한국계로 캐릭터가 바뀐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시즌10까지 에미상 후보에 다섯 차례 오른 의학 드라마 ‘그레이스 아나토미’(2005~2014)의 인기 캐릭터 크리스티나 양 역할도 원래는 금발의 백인 설정이었으나 그를 놓치기 싫었던 제작진이 한국계로 바꿔 캐스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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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엄마’ 스틸컷.

영화 ‘엄마’(Umma)는 그런 산드라 오의 행보에 연장선 격이다. ‘엄마’는 죽어서도 끊어낼 수 없는 엄마와 딸을 다룬 스릴러다. 한국계 미국인 감독인 ‘아이리스 K. 심’이 연출을 맡았다. 그는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산드라 오를 염두에 두고 작업했다고 한다. 산드라 오 역시 여성 감독인 아이리스와 작업해서 즐거웠다는 소감을 밝혔다.

‘엄마’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영화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한국의 정서다. 한국에서 죽은 엄마의 유골, 유골함과 함께 도착한 한복과 탈, 자개로 만든 오르골 등의 유품과 미국에 살고 있는 모녀가 함께 한복을 입고 제사를 지내거나, 아만다가 욕조에서 때밀이를 사용하고, 크리스가 친구와 실뜨기 놀이를 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영화는 한편으로 ‘엄마’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서도 다룬다. 지난달 미국 신문 ‘L.A.타임즈’(Los Angeles Times)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산드라 오는 “아시아 문화에서는 자녀가 부모를 실망시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실망시키는 것은 아시아인들만의 특별한 투쟁이다”라고 전했다. 또한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며 “이 영화를 통해 내 뿌리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어서 기쁘다. 이 영화를 통해 내 뿌리와 조상이 결코 우리와 동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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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방송국의 인기 의학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 시리즈 속 산드라 오. 그는 이 드라마로 큰 인지도를 얻었다.

산드라 오가 바비인형 같이 마르면서도 볼륨있고 주먹만한 얼굴을 가진 체형이 아님에도, 그리고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주연을 맡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레이 아나토미’와 ‘킬링 이브’ 방영 당시 각종 주요 시상식에 단골 후보로 올라 수상에도 성공한 그의 뛰어난 연기력이 단연 꼽힌다. 두 개의 여우주연상을 안긴 ‘킬링 이브’에서 산드라 오는 허당미 넘치는 푼수 같으면서도 여성 사이코패스에 묘한 집착을 보이며 집요하게 수사하는 수사관의 이중적인 면모를 자연스럽게 연기했다.

또한 스릴러 장르답게 미묘한 심경의 변화를 세밀한 주름 하나하나로 표현,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가 맡은 배역인 이브가 영국의 비밀 수사기관인 MI5 요원임에도 어딘가에 살아 숨쉴 것 같은 실존 인물로 느끼게 만들었다.

영화 ‘엄마’에 대한 해외평 역시 흥행에는 실패했으나 산드라 오의 연기는 훌륭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미국의 영화 전문 매체 ‘라이브 포 필름’(Live for Films)은 “연기는 좋았지만 공포를 이루는 요소들은 진부했다”고 평가했다.

외모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산드라 오는 지난해 10월 미국의 유명 라디오쇼인 테리 그로스의 ‘프레시 에어’(Fresh air)에 출연해 과거 에이전트로부터 성형 제안을 받았음을 언급했다.

그는 “90년대 중반 즈음 에이전트로부터 ‘당신은 주연급이 아니며, 충분히 예쁘지도 않다’며 성형을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도 “아무것도 나를 막을 수 없었다. 나는 단지 연기를 계속하려고 했고, 배우가 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연기력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겠다는 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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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27일(현지시간) 열린 제28회 미국 배우조합상 시상식에 참석한 산드라 오. AP연합뉴스.. 이날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정호연, 이정재가 각각 주연상을 수상하자 산드라 오는 한달음에 달려와 두 사람을 격려했다.

2019년, 아시아계 사상 처음 골든글로브 사회자로 나서며 “변화의 순간을 목격하고 싶다”고 했던 산드라 오는 지난해 미국에 아시아계 혐오 범죄가 일자 거리로 나와 확성기를 들고 혐오 범죄 반대 시위에 나섰다.

지난 201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과 2022년 미국 배우조합상 시상식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수상하자 기립박수로 격한 축하를 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9년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난 직후에는 트위터를 통해 ‘기생충’팀을 태그하며 “한국인인 게 정말 자랑스럽다”는 말과 태극기 이모티콘을 덧붙이기도 했다.

산드라 오는 동양인 이민 2세 배우에서 연기 잘하는 배우, 그리고 이제는 할리우드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et1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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