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5차 IOC총회 참석한 이건희 회장<YONHAP NO-1866>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 2013년 제125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 제공=삼성그룹연합뉴스

[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삼성 스포츠단은 다시 일어설수 있을까.

스포츠 사랑이 남달랐던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25일 78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고(故) 이 회장은 현대와 함께 한국 스포츠를 양분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발전을 도모해왔다. 육상과 탁구, 레슬링, 배드민턴 등 기초종목에는 오히려 현대보다 통 큰 투자로 한국을 스포츠 강국으로 끌어 올리는데 큰 공헌을 한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스포츠를 사랑한 이 회장의 별세 소식은 자연스레 몰락 중인 삼성 스포츠단으로 눈길을 쏠리게 한다.

사실상 삼성전자가 운영하던 삼성 스포츠단은 2014년부터 종합 광고 대행사인 제일기획으로 경영 주체가 이관되기 시작했다. 2014년 3월 K리그1 소속이던 수원 삼성 축구단이 제일기획으로 가장 먼저 이관됐고 그해 8월 프로농구 서울 삼성과 여자프로농구 용인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2015년에는 프로배구 삼성화재가 그해 12월에는 삼성 라이온즈가 제일기획으로 이관됐다.

[포토] 삼성 라이온즈, SK전 12-2 대승!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이 20일 문학 SK전에서 12-2로 승리한 뒤 기쁨을 나누고있다.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삼성그룹이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에 깊숙히 연루된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그룹차원에서 ‘스포츠단 운영에 손을 떼겠다’는 얘기가 흘러 나오던 터라, 삼성이 스포츠단 지원에 지갑을 닫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실제로 삼성 스포츠단 소속 프로구단은 제일기획이 경영권을 확보한 이후 나락으로 떨어졌다. 프로 원년부터 전통의 명문구단으로, 2011년부터 KBO리그 최초로 5연속시즌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한 라이온즈는 2016년부터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프로축구 수원 삼성 역시 지난해 K리그 상위 스플릿에 오르지 못했고, 올시즌에도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프로농구 서울 삼성은 빈약한 선수 구성 탓에 개막 4연패에 빠지는 등 최하위에 머물러 있고, 프로배구 대전 삼성화재는 ‘선수를 키워서 다른 구단에 팔 방법을 강구하라는 주문이 구단 수뇌부로부터 현장에 전달됐다’는 루머까지 도는 상황이다.

[포토]패스 시도하는 FC서울 기성용
FC서울 기성용(오른쪽)이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20 FC서울과 수원 삼성의 경기에서 수원 김태환의 수비를 피해 동료에게 패스를 하고 있다.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삼성이 지갑을 닫자 프로스포츠는 투자 위축과 경기력 저하라는 두 가지 위기가 동시에 찾아왔다. 돈으로 성적을 산다는 비난도 있었지만, 삼성이 주도한 각종 프로스포츠 개혁 방안은 시류를 바꿔놓는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우승을 하려면 삼성만큼 투자해야 한다는 단순한 자본논리도 최근 몇 년간 찾아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글로벌 넘버1 기업’으로 우뚝 선 삼성 그룹의 위상을 스포츠단이 깎아 내리고 있다는 비아냥까지 듣는 신세로 전락했다. 올 겨울부터 야구단을 시작으로 삼성 그룹이 지갑을 열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 있게 나오는 배경도 ‘더는 자존심 상하는 얘기를 듣기 싫다’는 그룹 고위층의 의중이 반영된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한국 스포츠 생태계를 바꿔 놓은 삼성은 이른바 이재용 체제에서 또 한 번 개혁을 단행할 가능성도 있다. 몇 해전 가벼운 논의 형태로 거론된 ‘독립법인 삼성 스포츠단’ 탄생을 기대할 수 있다. 삼성은 프로스포츠 종목만 5개를 가진 매머드 스포츠단이다. 탁구와 배드민턴, 레슬링, 태권도, 육상 등 한국 스포츠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이끄는 기초종목도 다수 보유 중이다. 이들 스포츠단으로 구성한 독립 법인을 출범해 스포츠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가능성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논의된 적이 있다.

[포토] 삼성, 전자랜드 5연승 저지하며 개막 첫 승
‘2020-2021 프로농구’ 서울 삼성과 인천 전자랜드의 경기가 20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렸다. 삼성 선수들이 경기 후 환호하고 있다.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글로벌 스포츠산업이 창출하는 부가가치 등을 고려하면, 삼성의 사회공헌과 새로운 가치 창출 측면에서도 업계를 선도할 수 있다. 삼성이 스포츠단을 하나의 계열그룹으로 묶어 출범하면, 현대와 LG, SK 등 대기업간 경쟁구도가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미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나 메이저리그 등에 기업 광고를 통한 가치창출을 경험한 대기업이 보다 주도적으로 스포츠산업을 이끌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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