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시청 정구팀
이천시청 남자소프트테니스 선수들. 제공=이천시청 선수단

[순창=스포츠서울 김경무전문기자] “느닷없는 팀 해체 통보를 받았을 땐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일주일 뒤에는 죽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요.”(정상원)

22일 전북 순창군 순창공설운동장내 실내다목적돔구장에서 계속된 제41회 회장기 전국소프트테니스대회. 지난 8월 이천시청측으로부터 일방적으로 팀의 연말해체 통보를 받고 실직위기에 몰린 이천시청 남자 정구팀 선수들은 여전히 그날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앞으로 선수생활을 하지 못하고 사지로 몰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도 이명구(52) 감독 지도 아래 이번 대회에 출전해 투혼을 발휘한 7명의 선수들의 표정엔 비정함도 묻어났다. 이들은 이날 남자일반부 단식 결승에서 이요한(30)이 아쉽게 김태민(창녕군청)한테 2-4로 져 우승은 놓쳤지만, 단체전 3위, 복식 3위(지용민-배환성) 등 좋은 성적을 올리며 대회를 마무리했다.

이날 저녁 대회를 마무리하는 회식 자리에서 선수들은 소주 몇잔씩 기울이며 서로를 격려했다. 앞으로 연말까지 문경 동아일보 대회 등 2개 대회가 더 남아 있는 만큼 더욱 열심히 해 35년 전통의 정구명가의 저력을 다시한번 보여주겠다고 다짐하는 분위기도 엿보였다.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혼합복식 금메달리스트인 팀 주장 지용민(39)은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팀이 해체되는 것을 지켜봐야 하니 선수생활의 끝맺음이 안 좋은 것 같다”면서 “아들만 11살, 9살, 8개월 등 셋인데, 초등학교 때부터 정구만 해서 다른 것은 별로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최악의 경우 막노동이라도 해서 먹고 살아야 할 것 같다”고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인 첫째는 ‘아빠 팀이 해체돼?’라고 묻는다. 그 의미를 아는 것 같다”고 했다.

실업선수 4년차로 미혼이라는 이현권(25)은 “저희는 그렇지만 형들은 자식들도 있으니 큰일”이라며 “작년부터 이천시청측에서 호봉제에서 연봉제로 하도록 조례를 바꿔 이를 받아들였는데, 팀 해체 결정까지 내려 몹씨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그는 이어 “시를 위해 우리들이 열심히 한 건데 결과가 이렇다. 힘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다니…. 속 마음으로는 계급장 떼고 한번 붙어보고 싶은데, 그럴 수는 없지 않느냐”고 하소연했다.

팀 막내인 정상원(24)은 “저는 애초 이천시청팀을 목표로 들어왔고, 여기까지 달려왔다. 그런데 팀이 해체된다니 앞도 안보이고 죽고 싶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2년 더 선수생활을 하고 군대를 가려했는데 이제 대책없이 군에 가게 생겼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이런 상황인데도 (엄태준) 시장하고는 한번도 면담할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이천시청 남자정구팀은 1985년에 창단돼 35년 된 전통의 팀으로 현재 소속 선수 7명 중 4명이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이다. 지난 1994년 이천시청에 입단해 1999년부터 선수들을 이끌어온 이명구 감독도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남자복식에서 유영동(현재 NH농협은행 여자팀 감독)과 금메달을 땄다. 이 감독은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땐 대표팀 사령탑을 맡기도 했다.

팀의 1년 운영비는 감독과 선수 연봉 포함해 8억원 정도 든다고 한다. 국내 프로축구 K리그에서 잘나가는 스타플레이어 1명의 연봉이 10억원도 훌쩍 넘는 것을 감안하면 그것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런데도 이천시청측은 35년이나 된 팀을 하루아침에 없앤다고 선수단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으니, 갑질도 이런 갑질이 없다.

이명구 감독은 “팀이 해체되는 감독이라는 불명예를 떠안고 싶지 않다. 반드시 팀 해체를 막아낼 것”이라며 “이번대회에서 팀 해체 위기 와중에 선수들이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내줘 고맙다”고 했다.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팀 하나 없애기는 쉽다. 그러나 그로 인해 많은 선수들의 생존권이 위협받는다는 생각을 털끝 만큼이라도 한다면 함부로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것은 열심히 자기 일을 해온 사람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운동선수들도 노동자들이다. 그들을 해고할 때도 적법한 절차를 따라야 한다.

스포츠라고, 운동선수라고 막 대해서는 안되는 법이다. “정구는 짱구”, “정구는 파리채 비슷한 기구로 하는 놀이”이라고 비하한 이천시청 권○○ 체육센터소장의 말이 아직도 분노하게 만든다. kkm100@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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